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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겉절이

입력
2015.11.03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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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절이가 좋다. 잘만 버무리면 열 반찬이 부럽지 않다. 대충 양념만 넣고 쓱쓱 무치는데 그 시원하고 상큼한 맛이 가히 일품이다. 물론 잘 숙성된 김치에 비해도 전혀 못하지 않다. 겉절이를 잘하는 식당을 가면 금세 기분이 좋아져서 단골이 된다. 칼국수 집도 있고 추어탕집도 있다. 드물게는 닭갈비집도 있다. 그 식당들은 내가 아니더라도 언제나 문전성시다. 나나 남이나 입맛은 거기서 거기인 모양.

연극도 겉절이처럼 무쳐야 제 맛일 때가 있다. 깊이 숙성해야 비로소 빛나는 작품만 있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거칠고 단순하게 접근했을 때 오히려 윤이 나기도 한다. 정밀묘사보다는 크로키에 더 끌린다고 할까. 갈수록 그래진다. 그러다 보니 언제부턴가 열심히 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결론에 다다랐다. 열심히 해야만 성취된다는 말은 틀리다, 라는 것을 괜히 증명하고 싶은 거다. 그런데 막상 해보니 열심히 하는 것만큼이나 열심히 하지 않기도 어렵다.

연습 과정에서 만나는 배우와 스태프들은 그들만의 스타일과 노하우가 따로 있다. 인물을 접근하는 방식과 연극을 대하는 태도도 다들 독특하다. 마치 고대 유물을 발굴하듯이 한 인물의 전사(前事)와 가계 족보를 죄다 논리적으로 추론하여 꼼꼼하게 준비하는 배우도 있고, 또 어떤 스태프는 배우와 극적 상황의 여러 가지를 일일이 궁구, 고증하여 소품이나 의상, 장신구의 색깔과 디자인을 근사하게 창조해낸다. 그들의 공통점은 논리가 정연하다는 것. 연출인 내가 전혀 모르거나 간과하는 부분까지도 섬세하게 짚어낸다. 나는 그들의 노력과 집중력에 찬사를 보내기 바쁘다.

그런데 가끔 상충될 때 난감하다. 겉절이를 원하는데 상대가 숙성김치를 담그려고 할 때다. 별 거 아닌 것 같지만 꽤 첨예한 갈등이 되어 작품을 풀어 가는데 부담이 되기도 한다. 대개는 설득을 하고 수긍이 되면 그만이지만 공연 날이 가까워질수록 상대방도 예민해지기 마련. 애초에 겉절이를 담자는 데 동의는 했으나 쉽게 체화가 되지 않아 요요 현상처럼 숙성김치로 슬슬 회귀하는 경우가 그렇다. 깊고 풍부한 유산균의 맛이 자꾸 떠오르니 그 아니 유혹적일까.

사실 연출에게 이 문제는 작품의 스타일과 템포, 더 나아가 전체적인 통일감에 관한 것이기 때문에 포기하기가 곤란하다. 상대의 입장을 양해하여 더 좋아진다면 모르겠으나 그러기도 쉽지 않다. 처음부터 짜놓은 얼개가 있어서다. 중심이 흔들려서 부화뇌동하면 전혀 다른 그림이 되어버린다. 협업이라서 절충이 불가피하기는 하다. 그래도 독하게 마음먹고 그 수위를 조절해야만 하는 것이 연출이다. 마음이 물러져서 하나 둘 양보하고 포기하다 보면 어느 새 겉절이는 멀어지고 어정쩡한 스타일의 김치로 둔갑되어 있다. 그것은 모두가 원하던 애초의 목표가 아니다.

일단 대충하자는 원칙이면 모두가 대충대충 해야 한다. 그래야만 비로소 대충이 안 된다. 겉절이는 대충 무치는 것이다. 어느 누가 열심히 무쳐버리면 본질이 다치거나 풋내가 난다. 마치 로댕이 자신의 조각품에서 팔 한쪽이 실감난다는 말을 듣고 균형이 깨졌다며 한쪽 팔을 잘라버린 일과 별반 다르지 않다. 여기서의 대충은 그냥 대충이 아니다. 전체의 균형감을 위한 대충이자 전체를 위한 중요한 컨셉트다. 그렇다면 이 룰은 지켜져야 한다. 열심히 해버리면 도리어 열심히 하지 않은 작품이 되고 말기 때문이다.

연극도 인생도 잘 무친 겉절이 같다면 오죽 좋을까. 대충한 듯 보이지만 그 안에 본래의 맛과 향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고도의 경지 말이다. 인고의 세월을 견뎌야 하는 의무감도, 인위적으로 조작을 짜내는 고심도, 그럴싸하게 보이려는 코팅도 없는, 지금 이 순간 팔딱팔딱 살아있는 현재적 유희 말이다. 그 자연스러움에 무슨 수사가 필요하겠나. 가만 보면 너무들 열심이다. 프로기사의 한 수처럼 멀찍이에 탁 내려놓은 날 것 같은 한 수, 근사하잖은가.

고선웅 연극 연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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