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저가수주에 실적 발목 잡혀.. 수주 늘려도 부실 부메랑
“단순 하청 시공 아닌 기술력 확보한 종합 건설사로 발돋움해야”
삼성물산은 말레이시아 국영 투자기관인 PNB 자회사가 발주한 ‘KL118 타워 프로젝트’를 최근 수주했다. 시공액이 총 8억4,200만달러 규모지만 삼성 몫은 60%(5억500만달러)정도고 나머진 함께 컨소시엄을 구성한 현지 시공사인 UEM사에게 돌아간다. 삼성물산은 이번 수주에서 설계, 조달 등 공사 일체를 담당한 게 아니라 시공만 맡았다. 7월에 수주한 카타르 ‘퍼실리티 D 프로젝트 복합 화력발전소’시공 역시 전체 공사 계약을 담당한 일본 미쓰비시 상사 밑에서 일부 시공만 담당한다.
올 들어 부진의 늪에서 허덕이던 국내 건설사들의 해외건설 수주물량이 하반기 들어 조금씩 늘면서 전년 대비 70% 수준을 회복했다. 하지만 여전히 해외건설은 건설사들의 발목을 잡는 모양새다. 저유가 탓에 발주물량 자체도 부족하지만, 과거 저가 수주 탓에 공사가 진행될수록 수익 급감의 직격탄이 되고 있는 것이다. 해외건설 물량은 건설사들의 차기 실적을 미리 확보한다는 측면이 있지만, 기술력 부재 시 수익 낮은 단순 시공만 담당하기에 마냥 수주를 반길 수만은 없는 처지다.
2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국내 주택 경기가 최근 몇 년 만에 대호황을 맞고 있지만 건설사들이 받아드는 성적표는 별로 신통치 않다. 국내 주택시장에서 번 돈으로 해외에서 난 부실을 메우고 있는 탓이다. 업계 1위인 삼성물산의 올 상반기 영업이익(1,244억원)이 작년 대비 반토막이 난 것이 대표적. 삼성물산은 합병 이후 첫 실적인 3분기에도 건설부문의 경우 해외사업 차질로 2,960억원에 달하는 영업손실을 봤다. 삼성엔지니어링 역시 3분기 1조5,127억원의 영업손실을 냈다. 사우디아라비아 발전시설 프로젝트와 아랍에미리트 CBDC정유 시설 등 3개 공사에서만 1조원 이상의 손실이 났기 때문이다. 대우건설의 경우 3분기 영업이익이 전년동기 대비 24.1% 오른 1,209억원을 기록했지만, 해외 매출(7,860억원)은 오히려 7.4% 감소해 이익을 낮췄다.
이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악화된 국내 건설 경기를 타개하는 방법으로 해외 수주를 선택한 데 있다. 실제 2007년 398억달러였던 수주물량은 2010년(716억달러)에는 2배 가까이 불어는데, 이런 과당경쟁은 저가수주로 이어지면서 해외건설 수익률 하락을 초래했다. 나이스신용평가에 따르면 현대건설은 해외진출이 크게 늘어난 2009년부터 2013년까지 해외매출 총이익률이 평균 8.6%였지만 지난해에는 6.2%로 줄었고, 포스코건설도 같은 기간 2.5%에서 0.3%로 급감했다. 대우건설(-3.2%)과 대림산업(-6.9%)의 지난해 해외부문 영업이익률은 마이너스로 추락했다. 하지인 한국기업평가 연구원은 “과거 원가율을 85% 이하로 맞추던 기업들도 수주물량을 확보하기 위해 기준선을 90%대로 높이다 보니 시공 중 생기는 리스크를 감당하지 못하게 돼 결국 손실로 이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러다 보니 건설사들 입장에선 해외 수주를 마냥 늘리기도, 그렇다고 손을 놓기도 어려운 딜레마에 빠져있다. 올 들어 이날 현재 계약한 해외 수주금액은 총 377억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526억달러) 대비 71.6%에 달하는 상황. 저유가 여파 등으로 해외 물량 확보가 쉽지 않은 상황에서 하반기 들어 상당 부분 만회한 성적표이지만 문제는 저가수주로 늘린 물량은 또다시 몇 년 뒤에 부메랑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실제 올해 해외건설수주 가운데 주로 부문별 공사만 맡는 발주처 도급형사업이 364억달러로, 전체 물량의 96.5%를 차지했다. 80%대에 머물렀던 지난해(86.9%)와 2013년(79.4%)에 비해 10%포인트 이상 늘어난 규모다. 도급형사업은 입찰과정에서 가격경쟁력 중심으로 평가받기 때문에 수익성이 떨어질 수 밖에 없다.
전문가들은 국내 건설사들이 해외수주로 살아남기 위해서는 지금처럼 저가수주에 매달리지 않을 수 있도록 종합적인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세계 시장은 파이낸싱과 함께 건설의 각 분야를 묶어 단일 상품화하는 추세라 종합적인 능력이 더욱 요구되고 있다”며 “건설사 개별적으로 극복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고, 정부에서 전문화된 인력양성부터 시작한 체계적이고 종합적인 육성책을 내놓아야 국내 건설업계도 경쟁력을 그나마 갖출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관규기자 ac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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