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8만9,000원, 4월 10만3,000원, 5월 11만9,000원….
12년째 대리운전을 하는 박구용(58)씨의 대리운전 보험료는 올해 3월부터 꾸준히 올랐다. 하지만 보험의 주요 담보 내용은 그대로였다. 박씨가 모르는 사이 보험회사도 바뀌었다. 그는 “보험 미가입자는 대리운전을 할 수 없어 업체에 울며 겨자 먹기로 보험료를 낼 수 밖에 없다”고 하소연했다. 접촉 사고 한 번 낸 적 없는 박씨의 보험료는 왜 다달이 오른 것일까.
업체 대리기사 보험료 떼먹기 일쑤
현행 대리운전 보험은 대리기사가 속한 업체가 보험사와 계약을 하고, 대리기사는 소속 업체에 매달 보험료를 내는 형태다. 업체는 사고율, 연령 등으로 그룹을 지어 단체보험을 가입하는데 같은 회사에 속해 있어도 기사들이 내는 보험료는 제 각각이다. 4월 갑자기 박씨의 보험료가 오른 것은 월 납입 보험금이 10만3,000원인 단체보험그룹의 가입자 중 한 명이 퇴직하자, 회사가 적은 보험료를 내던 박씨를 임의로 끼워 넣었기 때문이다. 추가로 낸 1만4,000원의 차익은 대리운전업체와 보험대리점이 나눠 가졌다. 하지만 이런 ‘보험 갈아타기’는 위법이라고 대리운전 기사들은 주장한다. 보험업법 제97조는 이미 성립된 보험계약을 부당하게 소멸시키고 새로 보험계약을 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기사들은 대리운전업체가 ‘돌려막기’ 방식으로도 보험료를 빼돌린다고 지적한다. 경기 부천에서 대리운전을 하는 박모(55)씨는 올해 3월 고객의 차량을 주차하던 중 접촉사고를 냈다. 보험회사에 전화했으나 보험사에서는 “보험 가입이 안 돼 있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매달 9만원의 보험료를 냈던 그가 업체에 문의를 하자 “가입과정에서 누락됐다”는 말만 되풀이 하고 자세한 설명을 해주지 않았다. 박씨는 그가 속한 업체의 대리기사의 80%정도만 보험에 가입됐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대리기사가 100명이라면 100명에게서 보험료를 다 받지만, 80명만 보험에 가입시켜 놓은 뒤 나머지 20명이 내는 보험료는 업체가 챙긴다는 얘기다. 보험 가입이 돼 있지 않은 대리기사가 사고를 내면 보험에 가입된 대리기사가 사고 낸 것처럼 위장해 보험처리를 한다. 김주환 서울노동권익센터 공동연구원은 “대리운전업체에서 보험료가 올해 70% 올랐다고 설명한 삼성화재의 경우 실제 인상률은 57%였다”며 “보험료를 과도하게 인상해 나머지 차액을 업체가 챙기는 수법도 있다”고 말했다.
최고 30%에 이르는 중개수수료…대리기사 생계 압박
대리운전기사들을 실제로 압박하는 것은 과도한 수수료다. 대리운전 건당 중개수수료는 서울 20%, 수원 등 경기 남부 25~30% 수준이다. 수도권에서 대리운전을 하고 3만원을 받았다면 4,000~9,000원을 업체가 떼간다. 김주환 연구원은 “직업안정법에 따르면 건설일용직은 임금의 10%를 초과한 소개비를 직업소개소가 받을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며 “여기에 견주어 봐도 대리기사업체의 중개수수료 20~30%는 매우 높은 수치”라고 지적했다.
이런저런 명목으로 업체가 떼가는 돈도 만만찮다. 배차 요청이 왔음을 알려주는 휴대전화 프로그램 사용료(프로그램 개당 1만5,000원), 이동비 등이 고정적으로 빠진다. 배차요청을 취소하면 건당 벌금 1,000원이 부과된다. 서울노동권익센터에 따르면 대리운전 기사의 월평균 총수입은 236만원, 순수입은 189만원으로 조사됐다. 중개수수료, 프로그램 사용료, 보험료, 통신비, 이동비 등으로 47만원(총수입의 19.9%)이 빠진 것이다. 전국대리운전노조 서울지부가 올해 3월 대리기사 104명을 조사한 ‘수도권 대리기사 실태조사’에서 42명(40.38%)은 월 순수입이 150만원이고, 12명(11.53%)이 100만원 이하라고 답했다. 절반 이상의 기사들의 수입이 월 150만원에도 못 미치는 것이다. 지난해 국토교통부의 ‘자가용자동차 대리운전 실태조사 및 정책 연구’에서 대리운전기사들은 문제점으로‘업체의 불공정 계약’(30.4%), ‘수수료 과다’(29.3%), ‘인권 문제’(20.3%) 등을 꼽았다. 이에 대해 대리운전업체들은 시장포화로 가격경쟁 치열해져 별로 남는 것이 없다고 주장한다. 전국대리운전연합회는“콜센터 운영비와 야간 인건비, 광고비 등을 제외하면 배차요청 한 건 당 업체가 갖은 순수익은 300원 남짓”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지난해 기준 전국적으로 3,851개의 대리운전업체에서 8만7,000명의 대리기사가 일하고 있다.
정부 뒷북 대책… 한계도 여전
2003년 무렵 처음 등장한 대리운전은, 현재 하루 평균 48만 명이 이용하고 시장규모는 3조원에 이를 정도로 커졌다. 그러나 대리운전기사를 보호하는 법안은 전무하다. 2012년 이후 4건의 관련 법안이 제출됐으나 국회에서 잠자고 있다. 정부도 수수방관했다. 지난 달 금융감독원이 대리운전자가 보험계약 확인시스템을 통해 자신이 납부한 보험료 내용을 확인할 수 있는 시스템을 도입한 것이 고작이다.
고용노동부는 뒤늦게 대책 마련에 나섰다. 고용부는 2일 대리운전기사가 산재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고용부는 대리기사들이 개인사업자이지만 사업주에 종속된 특수고용직으로 보고 산재보험 혜택을 받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실효성에 대한 의문도 제기된다. 특정 업체에 속해 전속성이 강한 대리운전기사는 당연가입 자격을 얻어 보험료를 사업주와 기사가 절반씩 부담하도록 했다. 하지만 전체 기사의 절반에 달하는 비전속대리운전기사들은 여러 회사에서 동시에 배차요청을 받기 때문에 보험료 전액을 본인이 부담해야 한다. 보험료 부담 때문에 가입에 소극적일 것이라고 노동계는 예상한다. 노사가 보험료를 분당하는 특수고용직 43만5,186명 중 4만2,387명(9.7%ㆍ2013년 기준)만 산재보험에 가입한 것을 감안하면 보험료를 모두 부담해야 하는 비전속대리운전기사들이 산재보험에 가입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이성종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정책실장은 “산재보험 혜택을 확대하려면 정부가 특수고용직 노동자 개인이 부담하는 산재보험금을 보조하는 방법도 고려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올해 1월 국가인권위원회도 “특수고용직은 산재보험 적용범위가 제한돼 있고 임의가입 규정으로 실질적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다”며 “모든 특수고용직에 대한 산재보험을 적용하고, 노동자가 내는 보험료를 면제하거나 국가가 지원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고용부 실태조사에 따르면 전체 특수고용직 규모는 40개 직종 128만 명에 달한다. 변태섭기자 liberta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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