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낙년 동국대 교수가 최근 발표한 논문 ‘한국의 부(富)의 불평등: 2000~2013’은 많은 이들이 파편적 정보를 통해 심증을 굳히고 있던 우리 사회 경제불평등의 전체 윤곽을 그려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앞서 국세청의 소득세 과세 자료를 활용해 반세기 소득불평등 실태를 생생히 드러냈던 김 교수는 이번엔 상속세 자료에 접근, 예의 실증적 자세로 부(재산)의 불균등 분포 상황을 분석했다. 상속세를 통해 죽은 자들이 보유했던 재산 규모를 파악한 뒤, 이를 역산해 사회 전체 부의 분포를 추정하는 것이 논문의 기본적 아이디어다.
김 교수의 논문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결론은 상위계층이 차지한 부의 비율이 소득의 경우보다 높다는 점, 이러한 ‘부의 집중도’가 갈수록 심화하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2010~2013년 상위 0.5% 및 1%에 집중된 부의 비중은 각각 19.3%와 25.9%로, 같은 기준의 소득 집중도(8.6%, 12.1%)의 두 배 수준이다. 이러한 부의 집중도는 2000~2007년에 비해 상위 0.5%에선 0.9%포인트, 상위 1%에선 1.7%포인트 각각 상승한 수치다. 자신의 노동력을 제공해 벌어들이는 소득은 보유 재산의 총체인 부의 일부분이므로, 부의 불평등도가 소득 불평등보다 우위라는 것은 재산 형성에 소득보다 중요한 요소가 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거칠게 말해 ‘부자’가 되는 데 있어 ‘번 돈’ 이상으로 ‘원래 있던(물려받은) 돈’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 김 교수와 연구 주제 및 방법론을 공유하고 있는 토마 피케티 파리경제대 교수가 세계적 베스트셀러 ‘21세기 자본’을 통해 주장한 핵심 명제가 한국 상황에도 고스란히 적용되는 셈이다.
실제 부의 편중도는 이번 논문에서 도출된 수치 이상일 가능성이 크다. 김 교수 지적처럼 부동산에 대한 상속세 산정 기준이 실거래가보다 낮은 공시지가라는 점은 비근한 근거 중 하나다. 상속인이 물려받은 부동산의 시가는 과세 자료상 가치보다 34%가량 높다. 과세망을 피해가는 음성적 상속 행위 또한 부의 불평등을 과소평가하게 하는 요소다. 시중에 풀려 좀처럼 회수되지 않는 5만원권이 이러한 불법 상속에 동원되고 있을 것이란 추측도 많다. 금융권 고위관계자가 전한, 최근 부유층의 세대간 자산이동 풍속은 이렇다. “자식은 자기 소득을 모조리 제 명의의 계좌로 저축한다. 그러곤 생활비를 비롯한 일체의 돈을 부모한테 현금으로 타서 쓴다더라.”
r(자본수익률)>g(성장률)이라는 피케티의 부등식이 실현되는 사회, 그러니까 돈이 돈을, 그것도 소득증가율(성장률과 연동) 이상으로 벌어들이는 사회에선 경제불평등이 더욱 고착화될 수밖에 없다. 노력을 통해 몸값(소득)을 높이는 것만으론 신분 상승을 이루기 어렵다는 좌절감은 경제적 차원을 넘어 정치ㆍ사회ㆍ문화적 문제로 비화할 수 있다. 특히 개선의 여지도 없이 심각한 취업난을 감당하고 있는 지금의 청년층이 ‘사다리를 걷어채었다’는 절망감을 체화할 경우 사회 전체에 미칠 부작용은 상상하기 힘들다.
불평등은 성장 저해 요인이기도 하다. 부의 분배가 부익부 빈익빈 식으로 진행된다면 ‘중하층의 구매력 약화→내수 부진→성장 저하’라는 파국적 흐름이 가속화될 수 있다. 박경돈 한국교통대 교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을 대상으로 지니계수로 측정된 소득불평등이 1% 증가할 때마다 1인당 국내총생산(GDP)는 0.3~0.9% 하락한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기도 했다. 물론 피케티의 지적대로 성장률 하락은 소득상승률과 자본수익률의 격차를 벌려 불평등을 키우는 요인이다. 불평등과 성장 간의 이러한 악순환 고리는 한국 경제의 저성장 국면 진입으로 더욱 강화될 공산이 크다. 세계적 경제학자 조지프 스티글리츠 컬럼비아대 교수가 경고한 ‘불평등의 대가’를 치르고 싶지 않다면, 부의 불평등 문제를 심각히 여길 때가 온 듯하다.
이훈성 경제부 기자 hs0213@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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