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감독이 택시 운전대를 잡는다. 한국관객에게는 낯선 이름이나 서구에는 널리 알려진 유명 감독이다. 택시 안에는 소형 카메라가 설치돼 승객의 면면과 발언이 촬영된다. 감독이 운전하는 택시인 줄 아는 모양인지, 이채로운 사람들이 연달아 택시에 오른다.
첫 손님부터 별스럽다. 젊은 남자는 최근 지인의 자동차 바퀴를 누군가 훔쳐갔다며 그런 좀도둑은 사형으로 다스려야 한다고 극언한다. 합승한 여자 승객이 얼마나 살기 힘들었으면 그랬겠냐며 좀도둑을 두둔하자 두 승객 사이에 뜨거운 설전이 펼쳐진다. 본보기로 일벌백계해야한다는 남자, 사형 무용론을 펼치는 여자가 다투다가 남자가 여자에게 직업을 묻는다. 여자가 교사라고 답하자 남자는 세상물정을 모를 수밖에 없다며 면박을 준다. 약이 오른 여자가 남자의 직업을 묻자 남자는 내리며 한마디 한다. “노상강도.”
이어 탄 손님은 택시기사가 된 감독을 알아본다. 그의 휴대폰 벨소리는 고전영화 ‘빠삐용’(1973)의 영화음악. 불법복제 CD 판매상이다. 감독도 자기를 통해 해외 예술영화를 봤을 거라며 너스레를 떨던 판매상은 감독을 동업자 취급한다. 감독이 살짝 불쾌감을 드러내자 CD 판매상은 볼멘 소리를 한다. “제가 없으면 (미국의 유명 영화감독) 우디 앨런도 없어요!” 불법복제물을 파는 음지의 일이지만 이란 국민의 문화 활동에 적지 않은 기여를 하고 있다는 항변이다. 이후 승객은 이어진다. 교통사고를 당한 한 남자와 그의 아내, 감독을 응원하는 인권 변호사, 감독의 조카 등이 승객이 된다.
형식은 다큐멘터리인데 극적인 장면이 이어지다 보니 의심이 갈 수밖에. 역시나 영화 ‘택시’는 다큐멘터리 흉내를 낸 허구다. 자파르 파나히 감독은 당초 이란의 수도 테헤란 시민들을 택시에 태워 날 것 그대로 그들의 모습을 촬영하려고 했으나 곧 벽에 부딪혔다. 승객들이 신분 노출을 우려해 카메라 전원을 끄길 원했기 때문이다. 파나히 감독은 지인들을 동원해 각자의 직업에 맞춰 연기하도록 했다.
영화는 신랄하다. 권위적인 이슬람 정권의 억압과 통제가 드리워진 이란 사회의 현실을 통렬하게 비판한다. 영화감독이 꿈인 파나히 감독의 조카가 학교에서 배웠다는 영화 배급 원칙은 블랙코미디나 다름 없다. ‘두건을 준비하라’ ‘남녀 접촉을 삼가라’ ‘정치적 경제적 이슈를 만들지 마라’ ‘추악한 리얼리즘을 피하라’ 등의 원칙은 표현의 자유가 억압된 이란 사회의 현재를 반영한다. 아는 사람에게 강도를 당하고도 그 사람의 생활고를 잘 알고 가혹할 형벌을 당할까봐 신고하지 않는 파나히 감독의 친구가 밝히는 사연은 폭정이 개인에게 미치는 영향을 가늠케 한다.
영화 속엔 파나히 감독의 곤경이 숨겨져 있다. 이란 정부에 의해 반정부 영화감독으로 낙인 찍힌 그는 2010년 체포돼 1심에서 징역 6년에 출국금지 20년, 영화제작 금지 20년 선고를 받았다. 최종 판결이 내려지지 않은 틈을 타 그는 ‘이것은 영화가 아니다’(2011)와 ‘닫힌 커튼’(2013), ‘택시’를 잇달아 만들었다. ‘이것은 영화가 아니다’의 파일이 담긴 메모리를 케이크에 숨겨 서구로 반출해 칸영화제에서 첫 상영하는 극적인 순간을 연출하기도 했다. 공개적으로 영화를 촬영할 수 없는 파나히 감독의 처지가 택시 카메라를 통한 이란 사회 엿보기라는 독특한 형식으로 이어졌다.
택시에 설치된 블랙박스로 이란 사회를 훔쳐보는 듯한 느낌이다. 형식도 내용도 새롭다. 이란 당국에는 추악한 리얼리즘, 그 밖의 관객에겐 리얼리즘의 새로운 경지다. 지난 2월 제65회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최고상인 황금곰상을 수상했다. 5일 개봉, 전체관람가.
라제기기자 wenders@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