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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끝뉴스] 박근혜 대통령의 의도된 실수?

입력
2015.11.02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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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1일 오후 청와대 춘추관에서 열린 한일중 정상회의 공동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홍인기기자 hongik@hankookilbo.com
박근혜 대통령이 1일 오후 청와대 춘추관에서 열린 한일중 정상회의 공동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홍인기기자 hongik@hankookilbo.com

박근혜 대통령은 1일 청와대에서 리커창(李克强) 중국 국무원 총리, 아베 신조(安培晋三) 일본 총리와 제6차 한일중 정상회의를 연 뒤 공동 기자회견을 가졌습니다. 전국에 생방송된 회견에서 박 대통령은 “3국이 북한의 비핵화 목표를 확고히 견지해야 한다는 점을 재확인했다”고 강조했습니다. 여기에서 귀 담아 들어야 할 대목은 ‘북한의 비핵화’입니다. 박 대통령이 리 총리, 아베 총리와 함께 연 공동 기자회견에서 3국이 북한의 비핵화를 촉구했다고 발표한 것은 큰 의미를 가집니다. 이는 사실상 한국이 중국과 일본을 끌어들여 북한을 압박한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중국은 그 동안 북한을 콕 집어 비핵화를 주문한 적이 없습니다. 중국은 통상 ‘북한의 비핵화’가 아니라 ‘한반도의 비핵화’를 강조했습니다. ‘한반도의 비핵화’는 사실 중립적인 용어입니다. 중국이 말하는 ‘한반도의 비핵화’는 북한 핵뿐 아니라 남한의 핵 개발 가능성 나아가 주한 미군의 핵 무기 배치 가능성까지도 염두에 둔 표현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중국이 ‘한반도의 비핵화’가 아니라 ‘북한의 비핵화’를 촉구하고 나섰다면 이는 기존의 입장을 바꾼 것으로 큰 변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중국의 태도는 달라진 것일까요? 유감스럽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2일 중국 외교부가 발표한 ‘동북아 평화 협력에 관한 공동성명’에는 “3국 정상은 한반도에서 핵 무기를 개발하는 것에 대해 단호하게 반대한다”고 돼 있습니다. 공동성명 어디에도 ‘북한’을 특정한 단어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한반도 핵 무기 개발 반대’는 ‘한반도 비핵화’를 풀어서 쓴 말입니다. 결국 중국은 북한을 압박한 것도 아니고 이전과 태도를 바꾼 것도 전혀 없습니다.

결국 3국 정상이 합의한 것은 ‘한반도의 비핵화’임에도 박 대통령은 3국이 ‘북한의 비핵화’에 합의한 것처럼 발표했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박 대통령은 마치 중국도 우리와 함께 북한의 비핵화를 촉구한 것처럼 전 국민을 오도했습니다.

박 대통령이 공동성명문을 잘못 읽는 실수를 한 것인지 아니면 사실을 알고도 의도적으로 그렇게 발표한 것인 지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물론 청와대나 우리 외교부의 입장에선 북한이 핵 도발을 하고 있는 상황임을 감안할 때 ‘한반도의 비핵화’는 문맥상 북한을 지칭하는 것으로 사실상 ‘북한의 비핵화’와 같은 것이라고 강변할 수도 있습니다. 우린 핵 무기를 개발하고 있지 않고 주한미군 또한 핵 무기를 한반도에서 모두 철수시킨 것으로 돼 있습니다. 따라서 한반도의 비핵화는 곧 북한의 비핵화로 이해될 구석도 사실 있습니다. 공동기자회견장에 함께 있던 리 총리도 아무런 이의도 제기하지 않은 만큼 문제가 없다는 항변도 가능합니다. 공동성명문엔 ‘한반도의 비핵화’였지만 우리 정부의 의지를 담아 전략적인 포석 아래 ‘북한의 비핵화’라고 발표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단어 하나 하나 치밀하게 따지면서 협상해야 하는 외교 무대에서 ‘한반도의 비핵화’와 ‘북한의 비핵화’는 똑같은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전문가들 입장에서 보면 소가 웃을 일입니다. 이치에도 맞지 않고 무엇보다 사실과도 다릅니다. 국가간의 공동성명문은 그런 식으로 대충대충 작성되지 않습니다. 다른 나라와의 신뢰에도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심하게 말하면 국민에게 거짓말을 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북한의 비핵화’를 관철시켜야 하는 상황에서 두리뭉실하게 ‘한반도의 비핵화’란 말로 할 일을 다 한 것처럼 넘어가서도 안 될 것입니다.

객관적인 사실과는 다른 이런 아전인수식의 해석이 지나치다 보면 자칫 전체 정세를 잘못 판단하는 우를 범할 수 있습니다. 북중 관계가 예전 같은 혈맹은 아니지만 최근 류윈산(劉雲山) 중국공산당 중앙정치국 상무위원이 방북해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을 만난 것처럼 우리 생각만큼 그리 나쁜 것도 아닙니다. ‘역사상 최고의 한중 관계’란 말에 취해 북중 관계를 과소평가해선 안 될 것입니다. 국제 사회에선 영원한 친구도, 영원한 적도 없습니다. 각국은 언제나 자국의 이익을 최우선시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그 첫걸음은 정확한 사실 관계에 기초로 한 정세 파악에서 출발해야 할 것입니다.

베이징=박일근특파원 ikpar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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