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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평가 권하는 사회

입력
2015.11.02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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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에서 오디션 프로그램을 가장 열렬히 시청한 시기는 2010년 여름이 아닐까 싶다. 저 유명한 Mnet의 ‘슈퍼스타K 시즌 2’가 그것이다. 나는 원래 텔레비전은 거의 시청하지 않고 K팝에도 별 관심이 없는 인간이었다. 처음엔 우연이었다.

당시 나는 생후 50여일 쯤 된, 유난히 밤잠 없는 아기를 키우고 있었는데 밤 열한 시가 다 되어서야 간신히 아기를 재웠다. 한숨 돌리며 무의식적으로 리모컨을 눌렀을 때 마침 1회가 방송되고 있었다. 그 뒤로 나는 화요일부터 금요일 밤을 기다리는 사람이 됐다. 한번은, 요일을 착각하고는 목요일 밤에 설레는 마음으로 텔레비전 앞에 앉았다가 크게 실망한 적도 있었다. 그 무렵, 그 프로그램은 세상과 나를 연결시켜주는 생생하고 유일한 창구였는지도 모른다.

슈스케 시즌 2는 가요 오디션 프로그램의 붐을 주도했다고 할 만큼 화제를 끌었다. 실력이 뛰어난 참가자들이 유난히 많았다. 나 역시 출연자 한 명을 마음 속으로 정해두고 열심히 응원했다. 그가 생방송 무대에 진출하고 나서는 난생 처음 문자 투표라는 것도 해 보았다. 응원하던 출연자가 탈락한 후에도 금요일 밤을 기다리는 열망은 변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제는 더 객관적이고 차가운 시각으로 후보자들을 평가할 수 있게 되었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TV 앞에서 나는 가차 없이 품평했다. 일관성은 없었다. 저 참가자의 창법은 너무 대중적이며, 또 다른 참가자의 창법은 너무 비대중적이라는 식이었다. 전문심사위원들이 내가 옹호하는 참가자의 손을 들어주었을 땐 괜히 으쓱해졌고, 그와 반대일 땐 심사위원을 어떻게 뽑은 거냐며 화를 내기도 했다. 그러니까 오디션 프로그램 시청은 나에게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주었던 게 분명하다.

TV 앞에서 내가 혼자 떠들어대는 소리를 아무도 듣지 않았지만 그런 것은 개의치 않았다. 애초부터 내 목적은 거기에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다만 합법적으로, 내 마음 내키는 대로, 평가를 내릴 수 있는 어떤 대상을 찾고 있었던 것 같다. 현실에서의 내가 늘 타인의 평가를 받는 사람인 것과는 반대로 말이다. 작가로서 작품에 대해 받는 평가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슈스케1, 보이스코리아2' 등에 출연했다가 얼마전 생을 마감한 가수 김현지.
'슈스케1, 보이스코리아2' 등에 출연했다가 얼마전 생을 마감한 가수 김현지.

아기가 덜 먹고 덜 자는 게 모두 내 탓인 것만 같은 초보엄마의 정체성부터 이러다 영원히 일의 세계에 복귀하지 못할지 몰라 두려워하는 여성 직업인의 정체성까지 내 안에는 ‘내가 너무도 많았고’ 그 많은 ‘나들’은 언제나 타인의 시선 앞에 민감하게 솜털을 곤두세운 채 살아왔던 것이다. 혹시 그 피곤했던 자아들이 나만의 주관적인 잣대로 남을 평가하는 유사 심사위원 혹은 유사 면접관 노릇을 하면서 위안을 얻었던 게 아닌지, 지금에서야 조심스레 추측해본다.

어릴 때부터 사사건건 평가 받는 곳, 무수한 이력서를 내고서도 다만 심사자가 선택해주기만을 묵묵히 기다려야만 하는 수백 만 구직자 시대의 한국에서 각종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이 난립하는 건 기묘한 우연만은 아닐지도 모른다. 그 이유가 시청자들이 참가자에게 감정이입 해서라는 분석은 어쩌면 절반만 옳다. 꽤 많은 시청자들은 천신만고 끝에 생존하거나 아쉽게 탈락하는 참가자와 자신을 동일시하기보다 칼자루를 쥐고 있는 심사위원 쪽에 이입하는 편을 택한다. 실제로 개인이 던지는 한 표의 지지나 반대는 오디션 결과에 아무 영향도 끼치지 않음을 알면서도 말이다. 남을 마음껏 평가할 수 있는 그 드문 기회가 어떤 판타지와 닿아있음을 모르지 않으면서도 말이다.

얼마 전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에 참가했던 젊은 가수가 자살했다는 뉴스를 보았다.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그가 노래하던 모습을 스치듯 봤던 게 떠올랐다. 그때 내가 뭐라고 했던가? 기억이 나지 않았지만, 이 평가 권하는 시대, 가슴 속에 박힌 미묘한 죄책감은 쉽게 사라질 것 같지 않다.

정이현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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