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앞 종점에서 버스를 타고 가다 깜빡 잠이 들었다. 잠결에 잠깐 눈을 떠 창 밖을 보니 종로 어디쯤. 내려야 할 곳은 광화문. 이미 지나쳤다. 서점에 들를 요량이었지만, 가을볕에 취한 탓인지 서점 따위 다른 날 들러도 좋다는 팔자 좋은 생각을 했다. 다시 눈을 감았다. 멈췄다 섰다 하는 버스의 움직임마저 리듬감이 생기면서 몸도 마음도 느슨하게 이완되는 게 기분 좋았다. 내친 김에 버스 종점까지 가보고 싶었다. 그렇게 또 잠이 들었다. 드문드문 눈을 떠보니 승객이 늘었다 줄었다 하고 있었다. 어디쯤일까. 이어폰에선 어릴 때부터 좋아했던 록음악이 반복되고 있었다. 버스 안이 꿈 속 같았다. 얼마를 더 달렸을까. 큰 커브길을 마지막으로 버스가 멈추고 사람들이 하차했다. 종점이었다. 체머리를 흔들며 버스를 내려 주위를 둘러보았다. 처음 와본 동네인 듯했지만, 왠지 낯익었다. 미몽 중에 언젠가 살아본 동네 같다고 여겼다. 천천히 정신을 차리며 버스 노선표와 동네 정경을 번갈아 훑었다. 마음속에서 뭔가 비릿한 게 올라오는 기분이었다. 기억 속에 묻어둔 필름이 촤르르 풀리는 것 같았다. 30년 전, 중학생 시절 살던 동네였다. 지금 사는 집 앞에서 탄 버스가 10대 시절 살던 동네와 끝과 끝으로 연결되고 있었다. 어느 화장품 가게 쇼윈도에 내 모습이 비쳤다. ‘그’가 ‘나’라는 걸 도무지 믿을 수 없었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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