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집밥을 그리워한다. 오래 동안 집을 떠나 타지에서 하숙이나 자취생활을 하는 사람이라면 더 그렇고, 하루 종일 직장에서 시간을 보내는 사람도 집밥을 그리워한다. 집밥이란 엄마가 해 준 밥일 게다. 그런데 우리들의 집이 더 이상 엄마의 따스한 손길이 배어 있는 공간이 아니라 철저히 기계화된 곳이라 해도 여전히 집밥이 그리울까? 댓돌을 걸어 올라가는 대신 엘리베이터를 타야 대문에 접근할 수 있고 그 대문은 나무로 된 것이 아니라 번호를 누르는 도어락이고 집 안에 들어가면 전자회로가 내장된 전기밥솥이 프로그램에 따라 밥을 해주는 세상에서 사람들이 그리워하는 밥의 형태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패스트푸드를 먹는 이유는 단지 값이 싸거나 빠르고 편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손맛이 아닌 기계적인 맛이 그리울 때
엄마가 감으로 밥을 한다면 패스트푸드는 데이터에 의해 만들어진다. 재료의 성분과 양은 철저히 계산되고, 그것을 담는 손동작도 철저히 훈련된 것이다. 채소는 정확한 양을 넣을 수 있는 손 모양으로 집어서 놓고, 소스와 드레싱도 정확한 양을 짜 넣는다. 햄버거를 만들기 위해 패티와 번을 굽는 시간과 온도는 최적화된 상태로 유지된다. 저녁을 차렸다가 식구들이 안 들어오면 식어빠진 음식을 데우고 또 데우는 집밥과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만들어진다. 엄마는 손맛으로 적당히 간을 맞추고, 남는 음식은 이리저리 뒤섞어 비빔밥을 만드는, 다분히 주관적인 요리사다. 패스트푸드 식당의 음식은 객관적이다. 롯데리아에는 홀딩 타임이라는 것이 있는데, 준비된 음식을 서빙할 때까지 놔둘 수 있는 시간을 말한다. 햄버거의 홀딩 타임은 10분, 치킨은 한 시간이다. 그 시간이 지나면 음식은 식고 말라서 식감이 떨어진다. 홀딩 타임을 벗어난 음식은 가차 없이 폐기된다. 집에서는 엄마가 밥도 하고 반찬도 하고 청소도 빨래도 하지만 패스트푸드 식당에서는 조리하는 사람, 손님 응대 하는 사람, 매니저 등으로 철저히 역할이 나눠져 있다.
패스트푸드는 집밥이 그리운 사람이 시간과 돈이 없어서 할 수 없이 먹는 음식이 아니라 기계를 이용해서 기계적인 절차에 따라서 만들어진 맛이 그리운 사람이 먹는 음식이다. 그것은 밥과 국과 김치와 생선구이로 된 집밥과 존재론적으로 다른 음식이다. 사실 우리는 패스트푸드 하면 햄버거만 생각하지만 식당에는 닭, 게, 새우, 쌀 등 수 많은 재료로 된 음식들이 있다. 다양성에서도 패스트푸드 식당은 엄마를 능가하고 있다.
회로에서 매뉴얼에 따라 조립되는 음식
기계로 만들어지는 음식답게, 롯데리아에서는 재료들을 모아서 햄버거를 만드는 것을 ‘조립’한다고 한다. 과정에 개입하는 기계들은 회로를 이루고 있어서 식재료들이 그 회로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완성품이 돼 있다. 주방은 총 세 개의 스테이션으로 돼 있다. 각종 프라이를 튀기는 조리대, 패티를 굽는 그릴, 그리고 음식을 서빙하는 곳이다. 주방에 들어섰을 때 맨 처음 반겨주는 곳은 프라이를 튀기는 스테이션이다. 프라이는 튀기고 난 후 눅눅해지기 전에 서빙해야 하기 때문에 계산대 옆에 위치해 있다. 벽에 붙은 표에는 재료 별로 튀기는 시간과 온도가 표시돼 있다. 포테이토, 양념감자, 해쉬포테이토는 172도로, 치즈스틱, 새우, 치킨은 182도로 튀긴다. 감자는 3분, 치즈스틱은 1분40초, 오징어는 2분20초(2분 30초 튀기면 어떻게 될까? 맛이 확 떨어져서 안 팔리게 될까?), 크런치는 3분, 치킨은 9분, 크리스피 패티는 5분을 튀긴다. 사실 튀기는 음식은 속까지 깊이 익어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걸린다. 엄밀히 말해서 튀기는데 9분이 걸리는 치킨은 패스트푸드가 아니다. 정확히 말하면 패스트푸드 계열의 음식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최대 쿠킹량도 정해져 있다. 감자는 680g, 치즈스틱은 12개, 오징어는 18개, 홍게는 5개, 치킨은 9조각…. 아주 세세하다. 튀긴 후 흔드는 방법도 명시돼 있는데, “30초 후 알람이 울리면 유조 내에서 바스켓을 좌우상하로 2,3회 흔들어 준다”고 돼 있고, 다 흔든 다음에는 감자는 “즉시 바스켓을 들어올려 좌 또는 우로 약 5초간 기울인 후 상하로 4,5회 흔들어” 주며, 다른 것들은 “바스켓 홀더에 걸어 30초 놔둔다.”
이런 식으로 패스트푸드 식당에서는 모든 것이 철저히 매뉴얼화 돼 있다. 벽에 붙어 있는 ‘후라잉오일산가(酸價)체크매뉴얼’을 보면 “산가측정시험지를 2초간 침지하며 이때 4개의 밴드가 반드시 기름에 침지될 수 있도록 합니다. 산가측정한 시험지를 꺼내 상온에서 1분간 방치하며 색상의 변화를 확인합니다. 산가 1.0 이하는 프레시 오일, 2.0이면 교체, 2.5 이상이면 사용불가”다. 온갖 사건사고의 배후에 잘 지켜지지 않는 매뉴얼에 대한 논란이 있었던 것을 상기하면 이 매뉴얼은 음식의 생명이자 직원과 손님의 안전의 문제다.
아침 메뉴는 얼마나 정확한지 보자. 햄치즈라이스는 무게가 138g이다(왜 140g이면 안 될까?). 거기 들어가는 슬라이스(원래는 슬라이스드ㆍsliced라고 써야 한다) 치즈는 12.3g(12.5g 들어가면 어떻게 될까?), 본레스 햄은 16g, 야채라이스번스 크라운은 106.7g이 들어간다. 햄에그머핀은 무게가 133.3g, 거기 들어가는 재료도 소수점 아래까지 무게가 정해져 있다. 이 세상 어떤 엄마가 이렇게 엄격할 정도로 정확하고 세분화해서 음식을 준비할까. 엄마에게 사랑은 있을지 몰라도 정확도는 없을 것이다. 패스트푸드 식당은 엄마보다 정확하고 강력하다. 패스트푸드 식당은 “오늘 저녁은 뭘 할까?” 하다가 시장에서 손 가는 대로 사오는 엄마와 다르다. 프라이에 쓸 감자는 전부 수입산인데 국산 감자로는 1,300개에 달하는 전국 매장의 수요를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 업체에서 감자를 공급받으면 만일의 사태에 물량이 부족할 수도 있어서 여러 업체의 감자를 쓰고 있다. 주식투자에서 흔히 말하는, ‘한 바구니에 계란을 다 담지 말아라’라는 격언이 생각나는 대목이다. 패스트푸드 식당의 격언은 ‘모든 감자를 한 업체에서 받아다 쓰지 마라’가 될 것이다. 다른 재료들도 여러 공급원으로부터 받는다.
따로 떨어진 곳에 패티를 굽는 그릴이 있다. 패티도 당연히 굽는 시간과 온도가 정해져 있다. 구운 패티는 캐비넷에 보관한다. 이 캐비넷도 일정 온도가 유지된다. 어떤 패티는 70도, 어떤 것은 90도, 또 92도로 보관된다. 물론 패티에도 홀딩 타임이 있다. 1990년대 미국의 패스트푸드 식당에서는 비위생적인 고기로 만든 패티를 충분히 익히지 않고 서빙 했다가 어린 아이가 그걸 먹고 식중독이 걸려 죽은 적이 있다. 21세기의 패스트푸드 식당에서는 패티를 철저히 관리하기 때문에 그런 일이 있을 수 없다. 이제 엄마는 완전히 기계가 됐다. 롯데리아에서는 세 가지 빵을 쓴다. 각각 4호, 5호, 7호. 빈대떡이니, 송편이니, 자연물과 구체적인 사물의 흔적을 가지고 있는 한국 음식 이름에 비하면 대단히 추상적이고 기계적인 빵 이름이다. 사실 우리는 패스트푸드 식당에서 먹거리가 엄청나게 산업화되고 기계화된 충격적인 장면을 보고, 먹고 있는 셈이다. 그러면서 아무도 그것을 불편하게 생각하고 있지 않다는 것도 놀라운 일이다. 만약 집에서 엄마를 닮은 로봇이 우주식량 같은 음식을 만들어서 로봇 목소리로 “많이 먹어라”한다면 우리는 입맛이 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현대인은 집밥을 원하지 않는다
패스트푸드 식당에는 다양한 맛 있는 음식도, 편안한 의자도 있지만 없는 게 딱 하나 있다. 보통 식당에는 음식 맛에 대해 칭찬해 주면 반색하며 엄마처럼 더 퍼주고, 손님 중에 예쁜 아기가 있으면 머리도 쓰다듬어 주는 아줌마 같은 사람이 있지만 패스트푸드 식당에서는 그런 식의 주관적인 소통은 없다. 아무도 음식 맛에 대해 칭찬하지 않는다. 왜냐면 칭찬을 들어줄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철저히 기계화된 식당에는 기능적으로 움직이는 사람들만 있을 뿐이다. 보통은 기계와 기계 사이, 기계와 사람 사이를 연결해주는 인터페이스가 있는데 철저히 기계적으로 움직이는 패스트푸드 식당에서는 기계와 기계 사이에 사람이 인터페이스로 끼어 있다.
기계화된 음식의 좋은 점은, 상당히 투명한 시스템이라는 점이다. 어떤 산업이건 영업비밀이 있겠지만 패스트푸드 식당의 모든 메뉴의 스펙은 홈페이지에 다 나와 있다. 롯데리아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메뉴인 불고기버거의 총중량은 154g, 열량은 390㎉, 단백질은 17g, 나트륨은 713㎎, 당류는 8g, 포화지방은 7.4g이다. 따라서 패스트푸드 식당에서 음식을 먹으려는 이는 미리 홈페이지에서 자기가 먹으려는 음식의 스펙을 확인하고 가면 된다. 칼로리가 높네, 포화지방이 높네 불평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한우불고기버거가 푸짐하기는 하지만 칼로리와 나트륨, 포화지방이 걱정 된다면 ‘착한 메뉴’에 있는 오징어버거를 먹으면 된다. 총중량은 140g, 열량은 347㎉, 나트륨은 575㎎밖에 안 들어 있다.
그간 패스트푸드에 대한 걱정은 칼로리가 높다거나 정크 푸드라거나 그런 것이었는데 롯데리아의 조리과정을 둘러보고 나서는 전혀 다른 것이 문제임을 알 수 있었다. 이렇게까지 산업화되고 철저히 체계화된 음식을 먹고 사는 오늘날 우리라는 존재는 도대체 무엇일까? 우리도 기계인가? 이제 음식에 대한 철학도 바뀌어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요즘 사람들이 정말 원하는 것은 집밥이 아니라 정확성과 체계성이 보장해주는 위생과 영양이다. ‘집밥’이란 상징적 표상일 뿐이다. 시골 어머니가 꾀죄죄한 행주치마로 숟가락을 쓱 닦아서 많이 먹으라고 밥상에 놔주면 요즘 어린아이들은 질겁할 것이다. 철학자 들뢰즈가 ‘엄마가 해 준 집밥’이라는 말을 들었으면 외디푸스적 구조를 가진 음식이라고 비판했을 것이다. 엄마란 ‘나’와 외디푸스적 구조로 묶인 관계 속에서 의미를 가지게 되는 사람의 호칭이기 때문이다. 기존의 가족관계와, 거기서 비롯되는 가치로부터 탈주할 것을 요구하는 철학자에게 ‘엄마가 해줬기 때문에 가치가 있는 음식’이라는 표상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모든 것을 기계로 파악하는 그가 패스트푸드 식당에서 햄버거를 먹었다면 어떻게 평가했을까? 어차피 입이란 먹는 기계인데 거기 들어갈 음식을 기계적으로 만든다고 해서 뭐가 잘못이란 말인가?
이영준 계원예술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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