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작업에 몸은 녹초" 회고
생산부터 배달까지 직접 뛰어
즉석식품이라 보관에 큰 애로
비위생적 꼬리표에 마음 고생
단속 걸려 경찰서 드나들기도
반갑기만한 어묵의 부활
최근 2, 3년새 기적같은 회생
신선·위생·맛 3박자가 원동력
숙련공 줄어드는 게 아쉽기만
대표적인 영세사업으로 비위생적이라는 낙인이 찍혔던 어묵의 달라진 위상은 상전벽해(桑田碧海)를 실감케 한다. 반세기 가까이 어묵업계에 몸 담았던 원로들에게도 최근 2, 3년에 이뤄진 급격한 변화는 반가우면서도 놀랍기만 하다. 고집스럽게 외길을 걸으며 심신에 스며든 애환과 보람이 교차했기 때문이다. 어묵 본고장인 부산에서 ‘어묵 장인’ ‘어묵 감별사’로 통하는 부산어묵 지킴이 3인은 어묵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이면에 관해 생생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부산의 대표업체인 영진어묵 박경수(73) 대표, 대원어묵 김이균(68) 대표, 미도어묵 정호진(61) 대표는 각각 1966년과 67년, 76년부터 뛰어들어 지금까지 현장을 지키고 있다.
어묵공장은 생활터전이지만, 어렸을 땐 부끄러워 말도 주변에 못 꺼냈다. “학교 다닐 때 어묵 공장 한다고 하면 놀림 받던 시절이라 아버지 직업을 말하기도 싫었고 친구들을 집에 데려오지도 않았다”는 게 정 대표의 기억이다.
1950, 60년대는 위생관념도 없었거니와 ‘원시적 방법’으로 어묵을 만들어 팔았다. 그렇지만 생계를 잇기 위해 아버지 사업을 이어받은 경우도 있고, 직접 창업하기도 했다. 김 대표는 “군 제대 후 곧바로 뛰어들었다. 냉동보관시설이 없어 시장근처에 아주 조그만 공장을 차려놓았다”고 말했다. 박 대표는 “기계가 어디 있었겠나. 모두 수작업이었다. 공동어시장에서 사람을 써서 생선 머리랑 지느러미, 꼬리, 내장을 잘라내고 살만 골라내 가져왔다”고 전했다. 이들은 공장으로 갖고 온 생선 살을 돌절구에 넣은 뒤 밀가루를 섞어 갈았다. 정 대표의 말이 이어진다. “다져진 생선 살을 널따란 판에 부은 뒤 나무틀로 사각 삼각 원하는 모양을 만들어 기름 섞인 가마솥에 넣어 튀겼다. 사람이 일일이 손으로 건져내 기름을 빼다 보니 손이 성한 데가 없었다.” 튀겨진 어묵을 선풍기로 식힌 뒤 포장해 열차로 재래시장에 보냈다. 박 대표는 “즉석식품이라 보관이 힘들었다. 어떻게든 하루 만에 다 팔아야 했다”고 회고했다. 새벽 4시부터 온 가족이 매달려 어묵을 만들고 배달하다 보면 녹초가 되기 일쑤였다. 김 대표는 “수작업으로 어묵을 만들다 보니 이따금 생선 뼈도 씹히고 비린내도 났다. 그래도 맛은 있지 않았느냐”고 되물었다.
어묵 공장 하면 떠오르는 위생문제. 박 대표는 “옛날에는 어묵업자 중에 식품위생법 위반으로 조사를 받지 않은 사람이 없었을 정도였다. 여기 있는 3명 모두 경찰서에 끌려간 적도 있다”고 했다. 공장규모도 작고 설비도 제대로 갖춰 있지 않아 당국의 단속을 피할 재간이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일정 규모 이상으로 공장을 지어야 운영허가를 내주고 식품위해요소중점관리기준(HACCP) 적용 등 관리가 엄격해지면서 위생문제는 자연스럽게 해결됐다.
화제는 자연히 현재로 넘어왔다. 불과 2,3년 전만 해도 침체됐던 어묵산업의 기사회생을 이들은 천우신조라고 생각했다. 정 대표는 “시장확대는 좋은 일이지만 변하지 않으면 모두 도산한다. 국내에서 고기가 안 잡히고 외국에서 수입하다 보니 갈수록 단가는 올라가고 직원들 급료도 뛰었다. 일부 업체만 돈을 벌고 있지 전반적으로 업계가 매우 어렵다”고 진단했다. 박 대표도 “시설투자와 마케팅 등 대기업 위주의 자본력이 갈수록 중요해지고 있다. 무한경쟁 속에서 이윤이 줄어들다 보니 영세업체들은 점점 도태될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이들의 가장 큰 걱정은 장인이 사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김 대표는 “모처럼 어묵산업이 활기를 띠고 있는데 숙련공들이 줄어들고 있다. 자동화가 많이 진행되고 있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수제어묵을 많이 찾는다. 그런데 웬만한 어묵기업 직원들의 평균 연령이 50대 중반이니 걱정이 안 되겠느냐”고 했다.
이들이 생각하는 발전방안은 대동소이 했다. 김 대표는 “어묵 고로케나 베이커리형 매장이 히트를 쳤듯이 항상 다양한 제품개발에 신경 써야 한다. 겨울식품이라는 한계를 극복하고 사계절 식품으로 거듭나는 것도 과제”라고 강조했다.
왜 부산어묵이 어묵의 대명사가 됐는지 물었더니 장인들은 할 말이 많았다. 박 대표는 “좋은 어장과 경매장이 갖춰진 상태에서 경부고속도로가 개통되면서 날개를 달아줬다”고 설명했다. 새벽에 경매로 구입한 생선이 오전 중에 어묵제품으로 나와 고속도로로 운반이 됐기 때문에 타 지역 제품과는 신선도와 맛에서 비교가 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정 대표의 설명이 이어진다. “부산에서 잡힌 고기는 신선도가 높아 밀가루를 조금만 넣어도 찰기가 생겨 생선함량을 95% 이상까지 높일 수 있다. 다른 지역은 밀가루를 많이 넣지 않으면 제품이 제대로 안 나왔다.” 김 대표도 거들었다. “신선한 재료를 듬뿍 써도 퍼지지 않았다. 어묵은 그래야 되는 줄 알았고 그렇게 안 만들면 어묵이 아닌 걸로 배웠다. 그런 우직함이 자연스럽게 몸에 뱄고 자부심이 됐다.”
최근에는 어묵 생선이 국내에서 거의 안 잡히다 보니 대부분 수입한다. 알래스카산 명태, 태국 및 베트남산 돔, 중국산 갈치 등이다. 몸은 불편해졌지만 장인들이 아직도 손을 놓지 않는 작업은 수입된 생선을 직접 고르는 일이다. 박 대표는 “눈으로 보고 만져 보고 소금 대충 쳐보면 수분과 탄력이 얼추 나온다. 기계로 측정할 필요도 없다”고 자신했다. 실제로 이들이 직접 감별한 수치와 기계측정치의 차이는 1% 내외라고 한다.
부산=강철원기자 stro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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