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민 이창훈 '박정희 장군, 나를 꼭 죽여야겠소'

박정희 장군, 나를 꼭 죽여야겠소
김학민 이창훈 지음
푸른역사 발행, 412면, 2만원

‘박정희 장군, 나를 꼭 죽여야겠소’라는 제목에서 항변이 느껴진다. 여기서 ‘나’는 황태성(1906~1963), 1961년 5ㆍ16 쿠데타 직후 북한 김일성의 대남 밀사로 내려와 박정희와 김종필을 만나려고 애쓰던 중 체포돼 간첩 혐의로 처형된 인물이다. 제목의 질문은 황태성 본인의 말은 아니고 출판사가 붙인 것이다. 황태성은 박정희와는 잘 아는 사이였다. 박정희의 형 박상희의 오랜 친구이자 함께 사회주의 운동을 한 동지였다. 박상희는 황태성의 소개로 아내 조귀분을 만나 결혼했다. 박정희가 형처럼 따랐고 청년시절 멘토였다. 황태성으로서는 박정희를 원망했을 법하다.

그는 자신이 남북 협상과 통일 논의를 위해 왔다고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사형 선고를 받고 재심을 청구해 기다리던 중 1963년 12월 14일 인천 교외의 군부대에서 총살됐다. 사흘 뒤 박정희는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서울고등법원은 사형이 집행되고 10개월 후인 1964년 9월에 가서야 재심 청구를 기각한다. 그는 간첩인가, 밀사인가. 쿠데타 세력은 왜 그를 죽였을까.

황태성(1906~1963). 항일운동가, 사회주의자. 김일성의 대남 밀사로 내려왔다가 간첩 혐의로 처형됐다. 푸른 역사 제공

이 책은 한국 현대사의 미스터리로 남은 황태성 사건의 전말과 인간 황태성의 생애를 본격적으로 다룬 첫 단행본이다. 김학민 이한열기념사업회 이사장과 이창훈 4ㆍ9통일평화재단 자료실장이 관련자 증언, 재판 기록, 언론 기사 등을 토대로 썼다. 사건의 전모를 완벽하게 밝히지는 못했다. 두 저자는 당시 중앙정보부의 황태성 조사 기록에 접근이 안 됐고, 이 사건을 인지하고 개입한 미국 정보기관의 신문 기록도 아직 공개되지 않았기 때문에 한계가 있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잊혀진 인물 황태성을 종합적으로 조명한 첫 시도이자 이 사건이 한국현대사에 미친 영향을 환기시킨다는 점에서 가치 있다.

두 가지 쟁점 중 첫 번째, 밀사인가 간첩인가에 대해 책은 밀사였을 가능성을 제기한다. 재판 기록을 봐도 간첩 활동을 한 흔적이 없다고 지적한다. 두 번째 쟁점, 왜 처형됐는가에 대해서는 박정희의 레드 콤플렉스를 지목한다. 잘 알려진 대로(일부에서는 믿지 않으려 하지만) 해방 후 박정희는 남로당에 가입한 전력이 있다. 그로 인해 1948년 여순반란사건 이후 진행된 숙군 사업 당시 국군 내 남로당원으로 검거돼 이듬해 군법회의에서 무기징역을 언도받았다. 박정희는 국군 내 남로당 조직에 대한 정보를 제공한 대가로 감형되고 풀려났다.

그런데 황태성이 처형되기 두 달 전인 1963년 대통령 선거에서 야당 후보 윤보선이 박정희의 좌익 전력을 들춰내 공세를 퍼부었다. 미국도 박정희의 사상을 의심했다. 그런 상황에서 황태성의 존재는 화근이었다. 김일성이 황을 밀사로 보낸 것도 박정희의 좌익 전력과, 황태성-박상희-박정희의 친분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미군정 치하인 1946년 좌익 주도로 벌어진 10월 대구 항쟁 당시 박상희는 경찰의 총에 사살됐고, 황태성은 한 달 뒤 지명 수배를 피해 월북했다. 북에서는 무역성 부상(남한의 차관급)을 지냈다.

왜 죽였는지 짐작케 하는 정황이 당시 중앙정보부장 김형욱의 회고록에 남아 있다. 처형 직전인 12월 초, 사형 집행 승인 서류를 가져온 김형욱과 박정희가 나눈 대화다.

“아까운 사람인데 꼭 사형시켜야 하나?”

“미국과 야당에 몰리지 않으려면 사형을 집행해야 합니다.”

“아까운 사람인데 꼭 사형시켜야 하나?”

“각하, 우리가 미국과 야당에 몰리지 않으려면 사형을 집행해야 합니다.“

박정희가 여순반란사건으로 무기징역을 받은 사실을 보도한 동아일보 호외(1961년 10월 13일자)

꼭 죽여야 하느냐고 두 번 반복해 물은 것을 보면 고민스러웠던 모양이다.

이 책은 황태성의 삶을 복원하는 데도 공을 들이고 있다. 사회주의자이기 전에 그는 서울과 경북 지역에서 항일운동가로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경북 상주의 부농 집안 맏아들로 태어나 항일운동을 하다가 경성제일고보, 연희전문에서 두 번 퇴학을 당했고 광주학생운동의 서울 지역 확산을 이끌다가 투옥됐다. 사회주의자로서 그는 박상희, 임종업과 함께 경북 지역의 ‘사회주의자 3인방’으로 불렸다.

공동 저자인 김학민 이한열기념재단 이사장은 “황태성을 북한의 간첩이냐 밀사냐에만 맞춰 언급하는 것은 그를 3분의 1도 이해하지 못한 것”이라고 지적하면서, “항일운동가 황태성을 돌아봐야 한다“고 말했다. 당위성 여부를 떠나 그게 가능할까.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을 언급하기만 해도 종북좌파로 몰리기 일쑤인 지금 이 나라에서 잊혀진 인물, 황태성을 재조명하는 게 제대로 될 수 있을까 싶다. 더군다나 ‘올바른’ 역사 교과서라는 이름으로 외눈박이 역사 해석을 강요하는 작금의 상황에서 ‘빨갱이’ 황태성의 항일투쟁은 설 자리가 없어 보인다. 황태성 사건은 오늘날 ‘종북몰이’의 뿌리라 할 공안 조작사건의 원조이기도 하다. 책을 덮으면서 씁쓸해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오미환 선임기자 mh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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