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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걸’의 등장… 새롭게 열리는 여성 히어로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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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걸’의 등장… 새롭게 열리는 여성 히어로 시대

입력
2015.10.30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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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영웅을 대신해 스토리를 주도하는 여성 히어로의 시대를 연 미국 드라마 '슈퍼걸'의 한 장면.
남자 영웅을 대신해 스토리를 주도하는 여성 히어로의 시대를 연 미국 드라마 '슈퍼걸'의 한 장면.

영화 ‘어벤져스(Avengers)’시리즈에서 헐크로 분한 영화배우 마크 러팔로는 얼마 전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내 딸과 조카들에게 선물할 ‘블랙 위도우’장난감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헐크와 아이언맨 등 ‘어벤져스’ 속 다른 남성 히어로들과 달리 여성 히어로인 블랙위도우 캐릭터를 이용해 출시된 장난감이나 상품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뜻이다. 그만큼 할리우드 주변 ‘슈퍼히어로’업계의 남성 편향은 여전히 두드러진다. 실제 ‘원더우먼(1975년)’을 제외하면 대다수 슈퍼히어로 영화와 TV물에서 여성 히어로는 블랙위도우와 영화 ‘배트맨(Batman)’의 ‘캣우먼’처럼 남성 히어로의 그림자와 같은 존재에 머물렀다. 독자적인 스토리를 배경으로 줄거리를 쥐락펴락하는 역할은 헐크와 슈퍼맨, 배트맨들에 내준 채였다. 영웅물의 주도권은 수십 년 동안 남성 히어로의 손을 떠난 적이 없단 얘기이다.

이러한 남성 편향 ‘영웅물’중심의 트렌드에 최근 심상치 않은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미 방송사 CBS가 26일부터 방영을 시작한 드라마 ‘슈퍼걸(Supergirl)’의 등장이다.

'슈퍼걸'의 주연배우 멜리사 비노이스트가 26일 미 뉴욕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에서 진행된 '슈퍼걸'관련 행사에 참여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뉴욕=AP연합뉴스
'슈퍼걸'의 주연배우 멜리사 비노이스트가 26일 미 뉴욕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에서 진행된 '슈퍼걸'관련 행사에 참여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뉴욕=AP연합뉴스

‘슈퍼걸’ 여성 히어로물 새 시대 열어

‘슈퍼걸’의 여성 히어로는 ‘홈랜드(Homeland)’, ‘글리(Glee)’ 등 최근 인기 미국 드라마에 자주 등장해 국내 시청자들에게도 익숙한 멜리사 비노이스트가 연기하는 슈퍼걸(극중 카라 조엘)이다. 스토리 자체는 매우 친숙하다. 슈퍼걸은 배트맨, 슈퍼맨, 플래시맨 등 대체로 경쟁사인 마블과 대비되는 음울한 우주의 히어로들을 구현해낸 DC코믹스의 원작 캐릭터로 바로 슈퍼맨의 사촌누나이다. 원작에서 슈퍼맨과 함께 크립톤 행성을 빠져나온 10대 소녀 슈퍼걸은 항해 도중 시간이 뒤틀린 공간에 붙잡힌 덕분에 사촌동생 슈퍼맨보다 훨씬 늦게 지구에 도착한다. 출발은 늦지만 슈퍼맨과 유사한 성장과정을 밟는다. 우연히 인연을 맺은 양부모의 손에서 자라고, 성장한 후 기자로 활동하는 슈퍼맨과 비슷하게 언론사 조수로 사회생활을 한다. 불현듯 자신의 초능력을 깨닫고 우주 악당에게 맞서는 과정은 영화 ‘슈퍼맨’, 드라마 ‘스몰빌’등에서 지겹도록 익혔던 바로 그 이야기이다.

하지만 미 언론들은 ‘슈퍼걸’이 단순한 ‘슈퍼맨’의 스핀오프에 머물지 않는다고 본다. 최근 크리스천사이언스모니터(CSM)는 “자립적인 여성 히어로를 찾아볼 수 없었던 대중 문화 영역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고 ‘슈퍼걸’을 평가했다. CSM은 “영화 ‘어벤져스’의 블랙위도우나 ‘토르’의 레이디 시프 등 박스오피스에서 수많은 여성 슈퍼히어로 캐릭터들을 마주한다”라며 “이들 캐릭터는 여러 영화에서 거듭 등장하며 존재감을 드러내지만 온전히 자신이 주인공인 영화는 하나도 없는 실정이었다”고 덧붙였다. ‘슈퍼걸’의 스토리에서 슈퍼맨과 여러 남자 영웅들이 등장하지만 칼자루는 언제나 ‘그녀’가 쥐고 있다는 점이 기존 영웅물과 가장 큰 차이점이라는 얘기이다. 밥 톰슨 미 시라큐스대 교수는 “우리가 지금까지 이야기를 주도하는 여성 히어로를 제대로 가져본 적이 없다는 점이 놀랍지 않느냐”라며 “지금은 때가 무르익었다기 보다 지나도 한참 지나쳤다”고 말했다.

여성 히어로가 주도하는 영상물은 비단 ‘슈퍼걸’에 그치지 않는다. 내달 인터넷 주문형 비디오 서비스(VOD) 넷플릭스에서 첫 선을 보이는 ‘제시카 존스(Jessica Jones)’, 그리고 내년 개봉을 앞둔 영화 ‘원더우먼(Wonderwoman)’, 2018년의 영화 ‘앤트맨과 와스프(Ant-Man and Wasp)’등이 있다.

영화 '어벤져스'에 등장하는 여성 히어로 블랙위도우. 화려한 캐릭터를 자랑하지만 남자 히어로들에 가려 '슈퍼걸'과 같은 주도권을 보여주지 못했다.
영화 '어벤져스'에 등장하는 여성 히어로 블랙위도우. 화려한 캐릭터를 자랑하지만 남자 히어로들에 가려 '슈퍼걸'과 같은 주도권을 보여주지 못했다.
남자 영웅을 대신해 스토리를 주도하는 여성 히어로 '슈퍼걸'이 프로그램 가이드북의 표지 모델로 등장했다.
남자 영웅을 대신해 스토리를 주도하는 여성 히어로 '슈퍼걸'이 프로그램 가이드북의 표지 모델로 등장했다.

나날이 오르는 여성의 사회적 위상 반영

포브스는 이처럼 여성 주도 영웅물이 새롭게 부각되고 있는 현상에 대해 “여성 슈퍼히어로가 주도하는 영웅물은 페미니즘 쇼의 전형이다”고 표현했다. 여성의 사회적 위상이 나날이 올라가면서 현실을 반영하는 영상물도 여성 주인공을 보다 많이 ‘허용’하는 쪽으로 옮아가고 있다는 얘기이다. CSM은 “많은 히어로 영화팬들이 ‘어벤져스’처럼 여성을 부차적인 캐릭터로 못박아온 트렌드에 반감을 가져왔다”라며 “아무리 영웅물의 전형이 남성우월주의적이라지만 남성 시청자들이 여성 히어로의 활약상에 눈을 감고 외면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을 것이다”고 분석했다.

슈퍼맨보다 강력한 힘을 과시하는 슈퍼걸은 외모에 있어서도 어떤 남성 히어로보다 매력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심지어 한 명의 여성 파트너(로이스 레인)에 집착하는 슈퍼맨과 달리 슈퍼걸은 두 명의 남자와 애정의 줄다리기를 한다. 남성에 여러모로 앞서는 ‘알파걸’의 이미지가 여성 히어로들에 투영되고 있음은 당연하다.

물론 한 편에선 여성 히어로물이 여성성을 상품화한다는 비난이 일고 있다. 인터넷 공간에선 “슈퍼걸이 굳이 섹시한 스커트를 입어야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는 여론도 뜨겁다. 이 와중에 미 대선 주자 중 한 명인 젭 부시 전 플로리다 주지사는 슈퍼걸의 외모에 대한 언급으로 대중의 입길에 오르기도 했다. 그는 최근 한 TV쇼에 출연해 어떤 슈퍼영웅을 좋아하느냐는 질문에 “헬스클럽에서 운동하면서 광고로 처음 접했는데 슈퍼걸이 엄청 섹시하고 보기에 좋았다”라며 “앞으로 방송이 기대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여성 히어로 중심의 영웅물의 확산이 저급한 성 상품화 논란에 좌초되진 않을 것이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포브스는 “슈퍼걸을 선두로 한 여성 주도 히어로 영상물들은 대체로 성공을 거둘 것이며 이러한 분위기는 성적 판타지를 운운하는 한 줌 정도의 여론에 꺾이지 않을 것이다”고 보도했다.

양홍주기자 yangho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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