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육 퇴행 희귀 난치병 배재국군
마라톤 조직위 참가 신청 거부에
각계서 탄원서 보내줘 허가 받고
척수장애인協, 경주용 휠체어 기증
“하나님 제가 뉴욕 마라톤에 꼭 참가할 수 있게 도와주세요.”
근이영양증이라는 희귀 질환을 앓고 있는 배재국(20ㆍ대전고2)군의 꿈이 현실로 이뤄지게 됐다. 배 군은 1일 미국에서 열리는 2016 뉴욕마라톤에 아버지와 함께 참가한다.
배군은 열 살 때 근이영양증 판정을 받았다. 근이영양증은 근육섬유가 괴사와 재생을 반복해 근육이 점점 퇴행하는 희귀 난치병이다. 심할 경우 심장과 호흡기 근육이 저하돼 사망에 이를 수도 있다.
산소호흡기에 의지해야 하는 시간이 점점 길어지고 있지만 배군은 늘 ‘나는 일어설 수 있다’는 주문을 마음속으로 외웠다. 지난 10년간 아버지와 함께 다섯 차례나 국토 종단을 마쳤고 지난 25일에는 춘천마라톤 대회에 참가해 풀 코스를 완주하기도 했다. 이번 뉴욕마라톤 대회 참가도 “몸이 더 나빠지기 전에 더 넓은 세상을 많이 보고 싶다”는 배군의 소망이 담겼다.
하지만 간절한 소원이 현실로 이어지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배 군의 아버지가 아들의 꿈을 이뤄주기 위해 뉴욕마라톤 대회에 참가신청서를 제출했지만 주최측은 ‘장애인이 혼자 휠체어를 탄 상태가 아니라면 참가할 수 없다’며 허락하지 않았다. 배군의 안타까운 사연을 접한 대전지역 국회의원들과 탁구선수 출신 이에리사 의원, 국민체육진흥공단 관계자 등이 뉴욕마라톤 조직위에 서한을 전달하며 설득에 나섰고 주최 측은 논의 끝에 보호자와 함께 뛰는 듀오 팀을 신설, 배 군의 참가를 허가했다.
다만 주최측은 일반 휠체어가 아닌 경주용 휠체어를 타야 한다는 조건을 붙였다. 그간 일반 휠체어를 타고 국내 마라톤에 참가했던 배 군의 가정형편에 고가의 경주용 휠체어를 마련하기란 쉽지 않았다. 마침 전 국가대표 체조 선수 김소영 한국척수장애인협회 척수장애인재활지원센터장이 이 사연을 접했고 서원밸리와 한국캘러웨이가 후원하고 있는 휠체어지원사업인 ‘사랑의 휠체어’ 대상자로 배군의 사례를 소개했다.
29일 서울 여의도에 위치한 척수장애인협회에서 경주용 휠체어를 전달받은 배 군은 “굉장히 좋고 감사하다”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해외로 나가는 것이 처음이라는 그의 표정은 매우 들떠 있었다. 배 군의 아버지 배종훈(50)씨도 “눈앞이 캄캄하기만 했는데 많은 분들의 도움으로 재국이의 소원을 이룰 수 있게 돼 감사하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김소영 센터장과 이에리사 의원은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재국이의 소원을 이뤄줄 수 있어 기쁘다”며 배 군을 응원했다.
5만여 명이 참가하는 이번 뉴욕마라톤 대회에서 배 군은 완주를 목표로 하고 있다. 다만 안전상의 문제로 일반부와 다른 출발선에서 따로 달리게 된다.
허경주기자 fairyhk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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