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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열의 과학책 읽기] 유전자 같아도 삶이 달라지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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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열의 과학책 읽기] 유전자 같아도 삶이 달라지는 이유

입력
2015.10.30 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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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자는 네가 한 일을 알고 있다

네사 캐리 지음, 이충호 옮김, 해나무 발행

사람들과 과학 얘기를 나누다 보면 과학에 대한 반감이 적지 않아 놀랄 때가 있다. 나름 과학을 잘 안다고 자부하는 사람조차 핀볼기계에서 튕겨낸 쇠구슬이 결국 구멍 속으로 빠져들어가듯 한결같은 결론으로 빠져든다. 생물학은 DNA가 모든 걸 결정하는 유전자 결정론이 핵심이기에 틀렸고, 그런 생물학에 기반을 둔 진화론은 문제투성이라는 것이다.

DNA에 대한 부실한 이해가 그런 오해를 부추긴 걸까? 진지한 연구자라면 누구도 값싼 결정론적 사고에 빠져들지 않을 것이다. 유전자가 완벽하게 일치하는 일란성 쌍둥이조차 똑같은 유전적 질병에 100% 함께 걸리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의 생물학, 특히 DNA를 중심으로 연구하는 분자생물학은 소위 ‘본성 대 양육’이라는 프레임에서 본성을 규명하는 데 우선 초점을 두어온 게 사실이다. 인간 유전자 염기서열 전체를 판독하는 휴먼 게놈 프로젝트가 끝나면 모든 질병과 인간의 노화 문제까지 말끔하게 규명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가 “알 게 된 것보다 알아야 할 것이 더 많다”는 결론으로 반전된 데 대한 실망감 탓인지도 모른다.

인간 세포에는 2만 2,000개 정도의 유전자가 들어있는데 이 모든 유전자가 활성화되는 것은 아니다. 후성유전학은 환경이나 경험이 유전자의 발현 스위치를 끄거나 켬으로써 유전자가 발현되는 방식에 눈을 돌리는 생물학 연구의 새로운 진전이다. 저자 네사 캐리는 “유전적으로 동일한 두 개체가 우리가 측정할 수 있는 어떤 방식으로 동일하지 않다면 그것은 후성유전학이 적용된 결과이며, 환경의 변화가 어떤 생물학적 결과를 낳는다면 우리는 후성유전학적 효과가 작용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연극에 비유하자면 대본(DNA)이 같아도 연출자의 해석(후성유전의 작용)에 따라 최종 작품이 달라지는 이치와 같다. 대본 자체가 연극을 결정하는 것은 아니듯 유전학과 후성유전학이 서로 긴밀하게 협력하여 기적을 만들어내는데 그 기적의 결과가 바로 우리 자신과 우리 주변의 모든 생물이다.

후성유전학의 선도적 연구자로서 네사 캐리는 20년간의 연구 경험에 기초해 개미와 꿀벌, 일란성 쌍둥이와 얼룩고양이, 아구티 생쥐, 추운 계절을 넘겨야만 꽃을 피우는 식물의 사례 등 풍부하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바탕으로 후성유전학의 신기한 작동방식을 설명해준다. 또한 생물학적 연구를 넘어서 어린 시절 경험한 트라우마가 삶에 끼치는 영향이나 중독의 문제, 영양 과잉, 기근 등으로 인한 결핍이 세대를 넘어서 영향을 미치는 문제 등에 대한 후성유전학 차원의 연구 성과를 자세하게 알려준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후성유전학의 핵심 개념인 DNA의 메틸화와 히스톤 변형을 배우게 되는데 “DNA 메틸화가 연극 대본에 추가된 반영구적 메모라면 히스톤 변형은 그보다 더 일시적인 메모”다.

후성유전학은 치료약 개발이나 인간 삶의 질을 개선하는 데 없어서는 안될 연구 분야로 자리잡고 있다. 후성유전학에 대한 쉽고 체계적인 안내서로서 이 책은 생물학을 결정론에 가두었던 사람들이 읽고 오해를 풀기에 적합하다.

‘과학책 읽는 보통사람들’ 운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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