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화가 10명의 야외 스케치
“그림을 그리는 동안 하늘 색깔이 정말 많이 변했어요. 이렇게 색깔의 변화를 직접 볼 수 있으니까 집안에서 사진만 보고 그릴 때와 달리 살아 있는 색을 쓸 수 있어요.” 지난 26일 서울 구로구 푸른수목원에서 아담한 오솔길 풍경을 그리던 문은주(58ㆍ여, 지체장애 1급)씨가 상기된 얼굴로 말했다. 휠체어에 앉은 채로 캔버스와 그 너머 자연을 번갈아 살펴보던 문씨는 “살다가 힘든 순간이 오면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지고, 국내든 해외든 여행을 다녀오면 다시 에너지가 생기잖아요. 우리 같은 장애인 작가들에겐 야외에서 그림을 그리는 것 자체가 곧 충전이자 힐링이에요.”라며 밝게 웃었다.
혼자선 움직이기 힘들어
사진 보고 그렸지만
이날 문씨와 함께 수목원을 찾은 화가는 총 10명, 모두 혼자서는 움직이기 힘든 지체장애인들이다. 화가들 옆에서 작업 모습을 촬영하고 있던 청각장애인 사진작가 장종근(45ㆍ남)씨는 “평소 풍경사진을 좋아하는데 오늘은 풍경 그리는 작가들을 찍으니까 더욱 신이 난다”고 말했다. 가을날의 동화보다 아름다웠던 야외 스케치 행사는 평소 이동에 어려움을 겪는 장애인 작가들에게 야외 활동의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중외학술복지재단이 마련했다. 중외학술복지재단은 오래전부터 장애인들에 대한 물질적 지원보다 예술적 재능을 발굴하고 육성하는 데 초점을 맞춰 나눔 활동을 전개해 왔다.
함께 모여 세상 이야기
나누니 즐거워
오전 11시부터 활동 보조원의 도움을 받아 수목원을 둘러본 참가자들은 그리고 싶은 풍경 앞에 자리를 잡고 스케치를 시작했다. 갈대 숲 초입에서 그림을 그리던 족필화가 김경아(41ㆍ여, 뇌병변 1급)씨는 “약간 춥기는 하지만 오랜만에 나오니까 공기도 깨끗하고 사람들도 볼 수 있어서 기분이 좋다” 라며 활짝 웃었다. 손 대신 발가락으로 붓을 잡고 갈대의 세밀한 부분까지 표현하는 모습을 보기 위해 주변을 지나던 사람들은 걸음을 멈췄다.
기업의 작은 관심이
한 사람의 생명 살릴 수 있어요
점심시간이 되자 흩어졌던 참가자들이 한 곳에 모였다. 도시락을 먹으며 그림 이야기, 세상사는 이야기, 야외에 나온 감회 등을 서로 나눈다. 최지현(37ㆍ여, 지체장애 1급)씨는 “여러 사람이 함께 모여 그림도 그리고 밥도 먹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우리에겐 큰 의미”라며 “오늘 행사가 장애인 작가들이 야외에서 마음껏 작품활동을 할 수 있는 시발점이 되었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대학에서 한국무용을 전공한 최씨는 10여년 전 불의의 사고로 장애를 얻었다. 절망에 빠져 있을 때 그를 치유한 것이 바로 그림이다. 행사 내내 최씨를 보살핀 남편 조남현(40)씨는 “그림을 그리면서 삶의 의욕을 찾을 수 있었죠. 오늘 행사처럼 기업의 작은 관심이 한 사람의 생명을 살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 이날 참가자들이 그린 작품과 사진은 28일 서울 종로구 인사동 아라 아트센터에서 개막한 ‘2015 JW 아트 어워드’의 특별전 형태로 전시 중이다. 전시는 다음달 3일까지 계속된다.
[장애인 예술가 위한 종합 미술대전 2015 JW 아트 어워드]
장애인 작가들의 꿈과 열정
담긴 작품들 감상하러 오세요
장애인 예술가들을 위한 특별한 종합미술대전 ‘2015 JW 아트 어워드’ 시상식이 29일 서울 종로구 인사동 아라 아트센터에서 열렸다. 이 날 대상을 수상한 시각장애 서양화가 박미씨의 큐빅 오브제 작품 ‘기억담기’를 비롯해 독특한 소재와 참신한 표현 기법이 돋보이는 수상작과 입선작 60여 점은 다음달 3일까지 같은 장소에서 전시된다.
전시 기간 동안 ‘장애인 종합미술 대축제’라는 부제에 걸맞게 수상작 외에 특별한 이벤트도 이어진다. 먼저, 장애인과 비장애인 300여명이 협업하는 ‘크라우드소싱(Crowd sourcing)’을 통해 서울 성북천 일대를 타일블록과 트릭아트 등으로 꾸미는 한편, 혼자서 움직일 수 없는 중증 지체장애인들이 모처럼 야외에 나가 그린 풍경화와 그 장면을 담은 사진 등 30여 점의 작품도 특별전 형태로 전시한다.
아라 아트센터에서 3일까지 전시
JW중외그룹의 공익재단 중외학술복지재단이 장애인 문화 예술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개선하기 위해 마련한 이번 공모전은 정부부처나 지자체가 아닌 국내기업이나 공익재단이 장애인을 대상으로 개최한 최초의 종합 미술대전이다. ?그동안 ‘JW중외 영 아트 어워드’를 통해 신진 작가를 발굴해 왔던 중외학술복지재단은 올해 공모 대상을 장애인으로 변경하고 행사 명칭도 ‘JW 아트 어워드’로 바꿨다. 이경하 JW중외그룹 회장은 “좋은 약을 개발해 생명을 지키는 것 못지 않게 소외계층이 앓고 있는 마음의 병을 치료하는 것도 제약회사의 사명”이라며 “이번 공모전을 통해 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없애고 많은 이들에게 희망을 선사하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라고 말했다. 공모전 심사위원장을 맡은 김영빈 한국장애인미술협회 이사는 “작품의 우열을 떠나 장애인들이 재능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가 만들어졌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 앞으로 보다 많은 기업들이 장애인들의 문화 예술 발전에 관심을 가져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박서강기자 pindropper@hankookilbo.com
류효진기자 jsknight@hankookilbo.com
최민영 인턴기자(숙명여대 법학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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