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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 드라마 '우주 전쟁' 피난 소동, 오손 웰스 전설의 시작

입력
2015.10.30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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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손 웰스(Orson Wells, 1915~1985) 의 명성은 영화 ‘시민 케인(1941)’으로 절정이었지만 그의 전설은 라디오 드라마 ‘우주 전쟁’에서 시작됐을 것이다. 23살이던 1938년 그는 CBS 라디오 단막극 시리즈 ‘생방송 머큐리 극장(The Mercury Theatre on the Air)’의 4번째 극으로 허버트 조지 웰스 원작의 ‘우주 전쟁(The War of the Worlds)’을 준비했다.

오손 웰스가 직접 제작ㆍ감독하고 내레이터로 출연한 그 극은 시간ㆍ공간 배경을 원작의 19세기 영국에서 20세기 미국 뉴저지 웨스트 윈저의 실재하는 지명으로 각색했다. 방송은 10월 30일 저녁 8시 시작됐다. 차이코프스키 피아노 콘체르토 작품 1번이 흐르는 가운데 아나운서가 드라마의 배경을 설명한 뒤 웰스를 소개했고, 배역들의 대사 연기도 순조롭게 이어졌다. 중간에 진행자의 안내 멘트도 삽입됐다. “여러분은 지금 H.G 웰스의 ‘우주 전쟁’을 각색한 오손 웰스의 드라마를 듣고 계십니다.”

오손 웰스가 연출한 라디오 드라마 '우주 전쟁'이 가져온 간밤의 소동을 보도했던 다음날 뉴욕타임스의 1면 톱 기사.
오손 웰스가 연출한 라디오 드라마 '우주 전쟁'이 가져온 간밤의 소동을 보도했던 다음날 뉴욕타임스의 1면 톱 기사.

하지만 ‘비극’은 그 시간대까지 다른 채널의 인기 프로그램 때문에 청취자가 거의 없었고, ‘화성인의 지구 침공’이 시작된 드라마 2/3 지점에서야 청취자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는 점이었다. 채널을 옮기자 마자 느닷없이 뉴스 속보 멘트가 끼어 들고 ‘침공’ ‘실제 상황’같은 살벌한 단어들이 폭발음 같은 실감나는 효과음들과 함께 다급한 어조로 들려오자 청취자들은 패닉에 빠졌다. 당시로선 생소했을 오손 웰스의 연출에 ‘수많은’ 청취자들이 드라마를 실제 뉴스로 착각한 거였다. 피난 짐을 싸는 사람, 총을 들고 거리로 달려 나온 사람…. 방송국은 문의ㆍ항의 전화로 마비됐고, 스튜디오는 경찰들로 북적거렸다. 다음날 뉴욕타임스(사진)도 1면 톱뉴스로 간밤의 소동 소식을 전했다.

31일 오후, 오손 웰스는 사과 기자회견을 했다.

-공포감이 조성될 걸 몰랐나?

“몰랐다. 그 기법이 독창적인 것도 아니고, 새로운 것도 아니다.”

-왜 지명을 미국 도시와 관공서로 바꿨나?

“H.G 웰스도 실제 유럽 도시명을 쓰지 않았나. 사실감을 높이기 위해서였다. 정말 미안하다.”

관련 뉴스는 이후로도 무려 3주 동안, 1만2,500여 건이 이어졌고, 무명의 오손 웰스는 유명해졌다. 하지만 근년 언론학자들은 당시 신문이 ‘패닉’을 과장했고, 방송을 듣지 않은 이들조차 그 소동의 희생자인 양 생각하게 만들었다는 연구 결과를 잇달아 발표했다.

어쨌거나 3년 뒤 ‘시민 케인’이 개봉될 무렵 시민들은 감독이 문제의 그라는 걸 기억하고 있었고, 그의 영화라서 본 이들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최윤필기자 proos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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