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우리 민주사회의 일원으로서 정부가 어떤 힘을 행사하는지 알 권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국민들이 그 상황에 대해 알고, 우리가 그것을 계속 놔둘지 아닐지를 판단하도록 정보를 드리고자 했습니다. 특권을 지닌 사람뿐 아니라 힘없는 사람들도 권리를 누릴 수 있어야 자유롭고 정의로운 사회라고 생각합니다.”
미국 국가정보국(NSA)의 무차별 개인정보 수집 실태를 폭로한 에드워드 스노든(32)이 29일 오후 서울 아차산로 한 극장에서 한국 기자들을 대상으로 화상 인터뷰를 진행했다. 스노든이 한국 언론과 인터뷰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이날 인터뷰는 그의 행적을 담아 세계적으로 화제를 모은 다큐멘터리영화 ‘시티즌포(CITIZENFOUR)’ 시사 이후 이뤄졌다. ‘시티즌포’는 NSA의 통신감청 비리를 고발해 미국 사회에 큰 파문을 일으킨 전 NSA 요원 스노든의 실화를 재구성했다.
이날 스노든은 건강한 얼굴과 환한 웃음을 보여 망명자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강단 있고 여유 있는 응답에서 세계적 파장을 일으킨 내부고발자의 용기를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깜짝 폭로보다 지금까지 알려졌던 내용을 반복해서 이야기하는 정도로 수위 조절을 하려 애썼다.
스노든은 통신감청 실태를 폭로한 이유를 조리 있게 밝혀 눈길을 끌었다. 그는 “NSA에 들어갈 때 정부가 아닌 헌법을 위해 올바른 일을 한다고 선언을 했다”며 “정부가 잘못된 행동을 취한다면 헌법을 따라 올바른 행동을 해야 된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스노든은 한국과 관련된 언급도 했다. 그는 “미국이 한국을 포함해 다른 국가들과 정보 공유를 했다”며 “북한의 군사 징후에 대한 정보 공유는 타당하고 적절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영미권 미국 동맹국가에서 정보 공유는 우려한다”고 말했다. “광범위한 감청이 테러리즘 위험 방지가 아닌 경제적, 외교적, 사회적 통제를 위해서 일어나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자신의 근황과 미래에 대해서도 말했다. 그는 “현재 러시아에서 한시적으로 머물고 있는데 러시아를 여행하고 거주하는 다른 외국인들과 비슷한 지위를 누리고 있다”며 “정부간 거래에서 변화가 일어나면 (러시아)정부가 저를 협상카드로 사용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시티즌포’는 주제 의식과 작품성을 인정받아 2015년 제87회 미국 아카데미영화상 장편다큐멘터리상, 제68회 영국 아카데미영화상 다큐멘터리상 등을 수상했다.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이 꼽은 ‘올해의 영화’ 8위에 오르기도 했다. NSA 도ㆍ감청 폭로 이후 스노든이 러시아 망명 상태인 것과 마찬가지로, 이 영화를 만든 포이트라스 감독도 미국 출입국 심사 때마다 따로 조사를 받는 등 정치적인 압력을 받고 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스노든은 포이트라스가 오랫동안 정부 감시 리스트에 올라 공항 이용 때마다 심문을 당했지만 굴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자신의 NSA 폭로를 사전에 그에게 알렸고, 포이트라스는 그때 스노든에게 다큐 촬영을 제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스노든은 이날 관객들에게 작은 바람도 남겼다. 그는 “우리 모두가 선택할 권한이 있고 책임이 있고 위험을 보았을 때 무언가를 바꿀 힘이 있다는 것을 영화를 통해 알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라제기기자 wenders@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