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이 역사를 판단하는 게 아니라 역사가 정권을 평가하는 것입니다. 역사의 저작권을 정부가 갖겠다는 생각은 오만입니다. 우리는 역사 앞에서 겸손해야합니다.”
주진오(58) 상명대 교수는 29일 서울 관철동 보신각 앞에서 열린 ‘길거리 역사 특강’에서 이렇게 말했다. 주 교수는 한국근현대사 교과서 필자협의회 대표, 한국사 교과서 집필자협의회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주 교수는 새정치민주연합이 마련한 강연에서 “우리나라 역사를 세계에 알리고 잘못 쓰인 한국 역사를 바로잡기 위해 오랫동안 노력해왔는데 교과서를 썼다는 이유만으로 온갖 험한 소리를 들어야 하는 현재 상황이 참담하다”고 토로했다. 그는 정부와 여권의 주장대로 ‘좌편향’이라면 집필자가 아닌 교육부 장관이 책임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교과서가 주체사상을 찬양하고 있다고 하는데 그게 맞는 말이라면 그런 교과서를 쓰도록 한 장관을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처벌하고 그런 교과서가 쓰이도록 방치한 책임자들을 문책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주 교수는 역사 교과서 집필진 중 전교조 소속 교사가 많기 때문에 좌편향이라는 주장에 대해서도 “교수는 전교조에 들어갈 수 없기 때문에 전교조 소속일 수가 없고 교사 중에서도 확인해 보니 전교조 소속이 절반 정도 되더라”며 “집필진 중에는 보수적 의견을 내는 필자도 있어서 균형 있는 교과서를 만들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가 서둘러 국정교과서 전환을 결정한 데 대해서도 “2018년 2월 임기가 끝나는 박근혜정부가 정권 교체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무리하게 일정을 앞당겨 2017년 3월부터 적용하려는 듯하다”며 강한 의구심을 표시했다.
주 교수는 “우리나라에 좌편향 교과서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단언했다. “친일을 친일이라고 쓰고 독재를 독재라고 쓰는 게 좌편향이라면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는 것도 좌편향이다. 우리나라는 단기간에 산업화를 이뤘고 독재체제를 무너뜨리고 민주화를 이룬 나라다. 저는 학생들이 이런 내용이 담긴 교과서를 보고 자부심을 느낄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정부는 민주주의 대신 자유민주주의라고 쓰라고 강요했다. 어느 자유민주주의 국가가 교과서를 국정으로 돌려놓나. 정부가 말하는 자유민주주의는 오직 반공뿐이다. 국민이 주인이 되는 민주주의를 말하는 게 아니다. 민주주의를 유린한 독재자들을 자유민주주의라고 보는 거다.”
주 교수는 “역사는 권력이 기록하는 게 아니라 역사학자들이 기록하는 것이고 아무리 정부와 여권이 함부로 권력을 휘둘러 교과서를 바꾼다 해도 결국 후유증은 남게 될 것이고 역사에 기록될 것”이라며 이날 강연을 마쳤다.
‘길거리 역사 특강’은 같은 장소에서 30일 조광 고려대 사학과 교수, 31일 심용환 역사강사, 11월 1일 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이 이어서 한다.
글ㆍ사진 고경석기자 kav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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