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기술자격시험 도중 응시자의 화장실 사용을 제한해 시험장에서 그대로 용변을 보게 한 것은 명백한 인권 침해라는 국가인권위원회의 결정이 나왔다.
29일 인권위에 따르면 박모(54)씨는 2014년 10월 5일 국가기술자격시험(기사)을 보던 중 용변이 급해 감독관에게 화장실을 가게 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당시 감독관은 규정상의 이유로 박씨의 요청을 거절했다. 한국산업인력공단은 국가기술자격시험의 공정한 관리를 이유로 시험 중 화장실 이용을 제한하고 있었기 때문. 한국산업인력공단의 방침에 따르면 배탈ㆍ설사 등 용변이 매우 급한 상황이거나 시험 시간의 절반 이상이 지난 후에야 화장실 출입이 가능하다. 하지만 이럴 경우에도 재입실은 불가해 퇴실할 때까지 작성한 답안만 인정하고 있다.
용변이 급했던 박씨는 감독관에게 시험장 안에서라도 용변을 볼 수 있게끔 해 달라 재차 요구했고 감독관은 다른 응시자들의 양해를 구한 뒤 박씨에게 시험장 뒤편 쓰레기통에 용변을 보도록 했다. 당시 시험장에 있던 응시자들은 모두 박씨와 같은 남성이었으나 여성 감독관 1명도 있었다. 박씨는 “시험장에서 용변 문제로 수치심과 굴욕감을 느꼈다”며 인권위에 진정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인권위는 “한국산업인력공단이 국가기술자격시험을 총괄ㆍ관리하는 주체로서 부정행위를 방지해야 하는 책임은 있다”면서도 “화장실 출입 후 재입실 금지 원칙을 고집해 응시자를 시험장 뒤편에서 소변 보게 한 것은 헌법 제10조에서 보장하는 인격권 침해”라고 판단했다. 인권위는 한국산업인력공단 이사장에게 이 같은 제도를 개선할 것을 권고했다.
이번 인권위의 결정이 다른 국가시험 제도에 영향을 줄지 주목된다. 현재 인사혁신처가 주관하는 국가공무원시험의 경우도 시험 도중 화장실 출입이 불가능하고, 부득이한 경우에 화장실을 갈 수 있지만 재입실을 할 수 없다는 규정을 두고 있다. 반대로 교육부가 주관하는 대학수학능력시험의 경우 시험 도중이라도 동성의 감독관이 동행한 상태에서는 화장실 출입이 가능하다.
김현빈기자 hb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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