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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메라 분장'한 고려무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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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메라 분장'한 고려무사라고?

입력
2015.10.29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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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월화드라마 '육룡이 나르샤' 속 박혁권. 고려말 최고의 무사인 길태미의 취미는 손톱 손질이다. 방송화면 캡처
SBS 월화드라마 '육룡이 나르샤' 속 박혁권. 고려말 최고의 무사인 길태미의 취미는 손톱 손질이다. 방송화면 캡처

파란색의 짙은 눈 화장이 요염하다. 양 귀에 매단 귀걸이는 화려함의 끝판왕이다. “아니, 이거 뭐예요? 정말 맛있네.” 한복을 입고 애교 섞인 목소리로 호들갑을 떠는 모습이 교태를 떠는 기생 같지만 웬걸, 한반도 최고의 무사란다.

배우 박혁권이 5일 첫 방송된 SBS 월화드라마 ‘육룡이 나르샤’에서 요란한 화장으로 화제다. 삼한 제1검이라 불리는 무사 길태미의 이름을 따 ‘길태미 화장법’이란 동영상이 온라인에 올라왔고, 그의 화장법을 공유하는 글도 굴비 엮이듯 이어졌다.

‘육룡이 나르샤’는 이성계(천호진 분), 이방원(유아인 분), 정도전(김명민 분) 등 조선 건국 주역들의 이야기다. 하지만 허구가 많고 캐릭터 설정도 파격적이다. 사극의 무사가 여성성을 강조하고 있으니 말 다했다. ‘육룡이 나르샤’의 박상연 작가는 29일 한국일보와 전화통화에서 “무사 하면 진중하고 고독한 이미지가 강한데 이를 배반해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반전은 성공적이다.

하지만 파격도 역사적 사실에 뿌리를 두고 있어야 통한다. ‘육룡이 나르샤’를 공동 집필한 김영현·박상연 작가는 옛 사료를 뒤졌다. 박 작가는 “조선왕조실록에 임진왜란 당시 명나라 군사들이 왜구를 무찌른 전공을 위해 무고한 백성의 목까지 잘라 조정에서 문제가 됐었다. 왜구와 백성의 목을 어떻게 구분하냐고 묻자 조선 백성은 다 귀걸이를 하고 있다는 내용이 나온다”고 설명했다. 이를 실마리 삼아 두 작가는 고려 말 중신 이인임의 최측근인 무신 임견미 캐릭터에 살을 붙였다. 임견미는 공민왕 때 뛰어난 무장이었으나 공민왕 사후 탐욕스런 정치인으로 변한 인물이다. 두 작가는 이런 이중성을 극적으로 부각시키기 위해 길태미 역에 남성성과 여성성을 함께 녹였다. 박 작가는 “고려말 귀족들은 부정부패가 심했는데 이런 귀족의 탐욕을 보여주기 위해 길태미란 캐릭터가 필요했다”고 덧붙였다.

작가의 의도를 전해 듣고 고민에 빠진 건 배우와 분장 스태프다. 박혁권은 “사극에선 참고할 캐릭터가 없다”며 “게이 연기를 하면 되는 거냐?”며 혼란스러워했다. ‘화려한 장신구와 화장을 한 길태미’라는 대본을 받은 분장팀은 여배우보다 박혁권의 화장에 더 많은 신경을 쓴다. “박혁권의 화장에만 두 시간이 든다”는 분장팀 강희웅 실장은 “여성성을 살려야 하지만 남자 무사라 블루톤 아이섀도우를 써 화려함과 동시에 차가움을 주려 했다”고 말했다. 드라마평론가인 윤석진 충남대 국문과 교수는 “지금은 남성성과 여성성의 공존으로 성 담론이 달라지고 있어 사극 속 여성성이 강조된 무사 캐릭터가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봤다.

양승준기자 come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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