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28일) 통계청발(發)로 ‘임금근로자 48%가 월급 200만원 미만’이란 기사가 나왔습니다.
임금을 받는 전체근로자 1,908만명의 급여 수준을 봤더니 100만원을 못 받는 사람이 227만명(11.9%), 100만~200만원을 받는 사람이 693만명(36.4%)에 이르더라는 기사입니다. 근로자 태반이 월 200만원을 채 못 번다는 얘기입니다. 400만원 이상을 받는 사람은 247만명(13.0%)에 불과했습니다.
이 기사를 쓰면서 떠오른 통계가 있었습니다. 바로 며칠 전(26일) 전국의 사용자 대표기구인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에서 낸 ‘2015년 임금조정 실태조사’라는 조사 결과(▶ 자세히 보기)인데요.
경총 조사 결과를 요약하자면 이렇습니다. 전국 414개 기업을 대상으로 대졸 신입사원이 얼마의 급여를 받는지 알아봤더니, 월 290만 9,000원(상여금 포함)을 받더라는 겁니다. 직급별 초임을 봤더니, 부장 640만 5,000원, 차장 547만 9,000원, 과장 481만 6,000원, 대리 392만 4,000원이었습니다. 기업들의 작년 평균 임금인상률은 8.2%였고, 올해 평균 인상률은 5.0%였다는 결과도 덧붙였습니다.
과연 같은 나라에서 조사한 게 맞나 싶을 정도로 통계청 조사와 큰 차이를 보이는군요. 경총 조사의 대졸 초임은 통계청 조사 결과로 가면 상위 20%에 해당하는 수준입니다. 경총이 작년에 실시한 같은 조사에선 대졸 초임이 278만 4,000원으로 나왔고, 올해와 비슷한 상승률을 적용할 경우 내년엔 ‘대졸 초임 300만원 넘었다’는 조사 결과(그리고 기사)가 나올 수도 있을 듯 합니다.
경총은 어떻게 이런 조사 결과를 내놓은 것일까요? 경총은 이번 조사에서 종업원 100인 이상 사업체 중 6,000곳을 대상으로 삼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실제 응답을 한 기업은 그 중 7%가 채 안 되는 414개에 불과합니다. 보고서 말미에는 경총 스스로가 “임금수준이 높고 대규모 채용과 승진이 이루어지는 고임 대기업 초임급 수준의 가중치가 많이 반영되었다”며 “사업체별로 가중치를 동일하게 부여하는 사업체 단순 평균값보다 그 수준이 높게 나타날 수 있으므로 유의하여 이용하기 바란다”고 밝혔습니다. 단순 평균치가 아니라 대기업 쪽에 비중이 더 주어진 가중 평균치라는 애기군요.
이에 비해 통계청 조사는 올해 4월 전국 19만 9,000개 가구의 15세 이상 취업자를 대상으로 이뤄졌습니다. 표본의 규모가 경총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광범위합니다.
다시 경총의 얘기로 돌아와서, 경총은 왜 이런 조사 결과를 내놓은 걸까요? 무턱대고 의혹을 제기하긴 어렵지만, 경총이란 단체의 특성과 평소 하던 얘기를 짚어보면 어느 정도 경위를 파악할 수 있겠습니다. 우선 경총은 매년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최저임금위원회에 사용자 단체를 대신해 ‘사용자 위원’을 파견하는 단체입니다. 올해 있었던 내년 최저임금 결정 과정에서도 사용자 단체는 ‘동결’을 주장했었지요. 매년 정하는 최저임금을 앞으론 3년마다 정해야 한다는 주장을 낸 것으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또 경총은 대졸 초임이 너무 높으니 삭감해야 한다는 주장을 낸 곳이기도 합니다. 아무래도 임금근로자 급여 수준이 높다는 통계가 나오는 것이 자신들의 논리를 내세우기에 더 유리하겠군요.
대졸 신입사원이 월 290만원을 받는다고 하는 경총, 월 290만원을 받으면 상위 20% 수준이라 말하는 통계청…
경총 자료가 그리는 ‘유토피아’와 통계청 조사가 말하는 ‘디스토피아’ 중, 여러분은 어떤 세상에 살고 계십니까? 저는 개인적으로 통계청 조사 결과 쪽에 손을 들어주고 싶습니다. 한국이 대졸초임을 평균 290만원이나 주는 나라였다면, 지금처럼 ‘헬(hell) 조선’이라는 표현이 나올 만큼 청년층이 분노하거나 낙담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덧붙이자면, 이렇게 실제와 동떨어진 자료를 매년 낼 거라면 조사 자체를 재고해 보거나 조사방식을 바꾸는 방안을 진지하게 고려해 봐야 할 것입니다. 통계를 자기 논리에 맞게 어느 정도 ‘이용’하는 것까지야 그렇다 쳐도, 이렇게 매년 현실에 맞지 않는 통계를 내놓는다면 기관 자체의 신뢰성마저 의심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세종=이영창기자 anti092@j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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