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조원에 달하는 국민연기금을 운용하는 기금운용본부장의 연임 문제를 놓고 보건복지부와 최광 국민연금공단 이사장 간에 빚어진 갈등은 결국 27일 최 이사장의 자진 사퇴로 일단락 됐다. 전날까지만 해도 사퇴 의사를 보이지 않다 돌연 사직서를 제출한 것이어서 그 배경에 관심이 쏠렸다. 최 이사장은 사퇴 하루 전 내부 직원들에게 보낸 글에서 “공단 발전을 위해 변함 없이 최선을 다하는 이사장으로 동고동락하기를 기대한다”고 썼다. 기자에게는 “절대 자진사퇴는 하지 않겠다”는 문자를 보내기도 했다. 이런 그의 갑작스런 사퇴가 공단에 대한 운영실태 점검 발표 등 복지부의 계속된 압박에 못 이겼기 때문이란 해석이 지배적인 이유다.
떠밀려 나가는 모양새도 좋지 않지만 최 이사장의 사퇴는 많은 아쉬움을 남기고 있다. 무엇보다 문제가 된 홍완선 기금운용본부장에 대한 ‘연임 불가’결정은 최 이사장의 고유 권한이었다. 또 홍 본부장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찬성 건 등으로 시민사회가 연임을 반대하는 논란의 인물이다.
복지부는 사태 초기 최 이사장의 연임불가 결정이 근거와 절차에 있어 부적절했다고 몰아세웠지만, 나중에는 “연임 여부는 이사장이 결정하는 게 맞다”고 발을 뺐다.
사실 기금운용본부 출범 이후 총 6명의 기금운용본부장 가운데 1명만 연임이 됐을 정도로 연임은 이례적인 일이다.
그런데 복지부는 여론을 뒤로 한 채 “특별한 하자가 없다”며 홍 본부장의 연임을 강행했다. 문제가 된 인사는 남겨두고 이를 문제 삼은 인사는 떠나 보낸 셈이다. 이런 복지부의 행태는 정부가 추진하는 기금운용본부의 공사화를 반대하는 최 이사장을 미리 찍어내기 위해 ‘건수’를 만들었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최 이사장의 사퇴가 정진엽 복지부 장관이 ‘기금운용본부의 공사화는 정부 안’이라고 처음으로 못 박고, 최경환 부총리가 잇달아 “기금운용본부를 공사화하는 것을 속도감 있게 추진하겠다”고 말한 직후에 나온 것이어서 더욱 그렇다. 최 이사장은 자진 사퇴하면서 “국정철학을 지원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물론 최광 이사장도 이번 사태를 초래한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하지만 국민들의 노후가 달린 문제가 정치적 논리에 휘둘리는 일은 없어야 한다. 최 이사장의 사퇴로 공단에 생긴 ‘경영 공백’도 우려되는 대목이다.
채지선 사회부 기자 letmeknow@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