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어린이집 연차 투쟁 첫날
대부분 정상 운영… 파장 크지 않아
예산 편성 때마다 반복되는 갈등
"부처간 떠넘기기 부모들만 불안… 어린이집만 탓할 문제 아니다"
28일 오전 서울 마포구 북아현동의 A어린이집. 전국 어린이집들이 연차 동시사용 등의 방법으로 집단 행동을 시작한 첫 날이었지만, 풍경은 여느 날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오전 8시쯤 정장을 차려 입은 한 직장맘이 네 살 된 아들의 손을 잡고 도착한 것을 시작으로, 아이들은 보호자들과 함께 속속 등원했다. 어린이집 원장은 “20년 간 한 곳에서 어린이집을 운영해 왔지만 이처럼 어려웠던 적이 없다”면서도 “전체가 다 같이 집단행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부담스러워 집단행동에는 불참했다”고 말했다.
같은 시각 구로구 고척동 B어린이집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통상 보육교사 2명이 오전 7시 30분에 출근해 일찍 오는 아이들을 맞이했지만 오늘은 원장이 직접 아이들을 맞이한 것 외에는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오전 10시 이후 교사 10명이 모두 출근해 아이들을 돌봤다. 이 어린이집 원장은 “보육교사들은 법정 근로시간인 8시간을 훌쩍 넘겨 일할 수밖에 없는 조건에 놓여있다”며 “학부모들에게 가는 피해를 최소화하면서도 열악한 현실을 알리는 차원에서 오전 10시부터 오후6시까지 근무하는‘8시간 근무 투쟁’을 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이날 오후 5시 현재 전국의 민간 어린이집 총 14만616곳 가운데 완전히 휴원을 한 곳은 없고, 당직 교사만 출근해 근무한 곳은 1,989곳으로 13.6%인 것으로 집계됐다. 집단행동을 주도한 한국민간어린이집연합회(한민련) 측이 맞벌이 가정 등 어른이 아이를 돌볼 수 없는 가정의 자녀들은 원하면 아이를 맡길 수 있도록 지침을 내렸기 때문에 ‘보육대란’은 일어나지 않았다.
다행히 이날 혼란은 없었지만 정부가 보육예산을 제대로 편성하지 않아 매년 이 같은 집단 행동이 되풀이되자 학부모들의 불만은 폭발 직전이다. 한민련은 올해 1인당 22만원으로 책정된 누리과정(만3~5세) 보육료 지원을 정부가 발표한 30만원으로 올리고, 영아반(만0~2세) 보육료를 10% 인상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중앙정부와 시ㆍ도 교육청은 아이들을 볼모로 서로 누리과정 예산을 편성하라며 떠넘기기를 하고 있다. 한 살 된 아들을 둔 허모(29)씨는 “무상보육은 대선공약이었는데 이제와 중앙정부와 지방교육청이 서로 예산 떠넘기기를 하면서 혼란을 초래하고 있다”며 “정부가 책임지고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두 살 된 딸을 둔 오모(29)씨도 “정부의 보육료 지원을 전제로 출산과 육아 계획을 세운 것인데 정부가 서로 떠넘기고 있어 짜증스럽다”며 “보육료 지원이 안 된다면 가정경제는 큰 타격을 입을 것”이라고 말했다. 네 살짜리 아들을 어린이집에 보내고 있는 채모(31)씨도 “어린이집 교사가 피곤하면 아이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집단행동을 하는 어린이집만 탓할 문제가 아닌 것 같다”며 “정부가 보육료 지원 인상을 약속했으면 어떤 방법으로든 지키는 게 맞다”고 강조했다.
이 때문에 무상보육 지원방식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효정 한국영유아보육학회 회장(중원대 사회복지학과 교수)은“국가 공약사항이기 때문에 중앙 정부가 책임지고 이행하는 게 맞다”며 “재정 문제가 있다면 지금이라도 무상보육에 대한 중간평가를 통해 재검토하는 등 대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채지선기자 letmeknow@n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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