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예상되는 국산 묵은 쌀 재고량만 해도 85만톤인데 수요처가 마땅찮아 매년 천문학적 규모의 보관비만 발생시키고 있다는 본보 보도 이후 독자들은 다양한 반응을 보였습니다.
독자 반응은 정부가 쌀 재고를 활용해 저소득층에 대한 지원을 확대하거나, 해외원조 규모를 키우면 되지 않냐는 지적이 주를 이뤘습니다. 쌀 대북지원이 2010년 5ㆍ24조치 이후 끊긴 걸 안타까워 하는 목소리도 있었고, 잘 찾아보면 묵은 쌀 활용 대책이 무궁무진할 텐데 공무원들이 너무 소극적이어서 대책을 못 찾는다는 비판도 나왔습니다.
하지만 해외원조나 저소득층 지원 확대가 생각처럼 간단치 않다는 게 정부 해명인데요. 정부 논리를 짚어봤습니다.
저소득층 지원 확 늘리자?
우선 저소득층 지원과 관련해 정부는 현재 기초수급대상자와 차상위 계층을 대상으로 정부(보건복지부)가 쌀 값의 50%를 지원해 반값에 판매하는 사회복지용 쌀(나라미) 제도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 밖에 무료 급식소를 상대로는 쌀 한가마(80㎏)당 2만5,000원 수준으로 나라미를 판매합니다. 이는 시중의 14%에 불과한 가격입니다. 저소득층 등에 이렇게 공급되는 쌀은 연간 8만~9만톤 규모라고 합니다. 물론 이런 지원에는 묵은 쌀이 아닌 햅쌀이 활용됩니다.
‘50%보다 더 큰 폭으로 할인해 추가 구입을 유도하면 되지 않냐’는 지적이 나옵니다. 하지만 정부는 쌀도 엄연히 정부가 돈을 주고 농민에게 구입한 상품인만큼 무상이나, 무상에 준하는 수준으로 저소득층에 쌀을 주게 되면 결국 그만큼 정부 세금이 투입되는 결과를 낳게 된다는 것이 정부의 고민입니다. 2014년 쌀 10만톤 판매원가가 2,201억원이니 가령 50만톤을 지원한다고 하면 1조원이 훌쩍 넘는 정부 지출이 신규로 발생하는 셈입니다. 또 지금까지 쌀을 사 먹던 저소득층이 무상으로 쌀을 받게 되면, 민간에서 팔아야 할 쌀이 팔리지 않게 돼 생산자인 농민들에게 피해가 돌아간다는 것도 문제입니다.
대량의 쌀이 무상으로 풀릴 경우 시장 교란도 예상됩니다. 다른 재화에 비해 공급 확대에 따른 가격 하락폭이 큰 품목으로 분류가 됩니다. 애초에 정부가 매년 수천억원을 들여 쌀 격리를 하는 것이 공급 물량을 조절해 가격 폭락을 막기 위함인데, 그렇게 격리한 쌀을 도로 푼다면 쌀 격리의 의미가 퇴색하게 되는 것도 문제입니다.
쌀을 학교 무상급식에 쓰면 되지 않냐는 시각도 있습니다. 그런데 요새 학교들은 급식용 쌀로 보통 유기농 등 친환경 농산물을 사용해 ‘나라미’는 인기가 별로 없다고 합니다. 일선 학교들에 나라미 사용을 강제하는 것도 부작용이 만만치 않습니다. 나라미 재고가 줄어드는 대신 그만큼 민간에서 판매하는 일반미 재고가 늘어나는 셈이니까요.
종합적으로 살펴보면 쌀 재고를 통해 저소득층 지원을 확대할 경우 이런저런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는 정부 해명이 일리가 없지는 않아 보입니다.
해외원조 확대?
쌀이 그렇게 남아돌면 해외원조를 확대하면 되지 않냐는 목소리도 높습니다. 아프리카에선 한 해에도 수천~수만 명씩 기아가 생기는데 한국에선 멀쩡한 쌀을 바다에 버리자는 얘기가 나오는 게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겁니다.
하지만 해외원조는 무료 지원인 만큼 돈을 벌 수 없는 건 당연하고, 오히려 지출해야 할 돈이 상당합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쌀 10만톤을 국제기구를 통해 해외원조를 할 경우 쌀값(2,201억원) 무상공급과 국내작업비 132억원, 국외운송비 43억원, 국제기구 간접비 56억원 등 총 2,432억원의 신규 정부 지출이 발생합니다. 해외원조가 단순히 옆집 이웃과 음식을 나눠먹는 차원과는 다르다는 겁니다.
또 해외원조를 늘리면 수혜국 뿐 아니라 수혜국과 무역을 하는 제3국들의 눈치도 봐야 합니다. 한국이 가입한 세계농업기구(FAO) 규정에 따르면 ‘식량원조국이 원조 요청을 받으면 계약 체결 및 물품 선적에 앞서 이를 수혜국에 식량을 수출하고 있는 제3국에 통지하고 양자간 협의를 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빈국이라고 해도 다른 나라로부터 식량을 사들이는데, 한국이 공짜 쌀을 퍼 주면 빈국에 곡물을 수출하던 나라는 손해를 볼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또 아프리카 빈국 가운데 독재국가에 쌀을 지원하면 독재정권 유지를 위한 군량미로 쓰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또 해외원조 대상국인 아프리카 국가들은 밀이나 장립종쌀(일명 안남미)를 주식으로 하기 때문에 한국에서 생산되는 단립종 쌀은 선호하지 않을 수 있다고 합니다.
요컨대, 해외원조는 세금이 꽤 많이 들고 수혜국 외 제3국 눈치도 봐야 하는 다소 번거로운 절차를 거쳐야 합니다.
남는 쌀로 대북지원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옵니다. 대북 쌀 지원은 가장 활발했던 2002년부터 2005년까지 4년간 40만톤의 국내산 쌀이 지원됐으니, 괜찮은 쌀 재고 해소 방안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특히 남북 관계 개선에 도움이 될 수 있어 결과적으로 이익이 될 수 있습니다. 다만 지원한 쌀이 군량미로 쓰일 가능성이 있는 등 복잡한 정치적 변수가 얽혀 있어 당장 시행이 어렵다는 게 단점입니다.
정부 대책은
저소득층 지원 확대도 어렵고, 해외원조도 어렵다는 정부의 대안은 과연 뭘까요. 정부는 가공식품 산업 확대와 쌀 소비 촉진 등을 통해 쌀 소비를 늘리겠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런 대책이 나온 지도 벌써 상당한 시간이 흘렀는데 아직까지 뚜렷한 성과가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물론 밥 말고도 먹을 것이 많아진 상황에서 쌀 소비를 대폭 늘리는 게 쉬운 일은 아니라고는 해도 부진한 성과에 대한 질타가 나오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어느 문제나 그렇듯 ‘되는 이유’보다 ‘안 되는 이유’를 찾는 것이 훨씬 쉬운데요. 정부가 안 되는 이유를 자꾸 대기 보다는 좀더 적극적이고 창의적인 자세로 대안을 마련해봤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세종=이성택기자 highno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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