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의 미국 방문 이후 워싱턴에서는 다시 한국 전문가 그룹 확대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중국 경사론, 남중국해 문제 등 한미 동맹 앞에 놓여 있는 크고 작은 문제들에서 한국의 목소리를 대변해 줄 전문가가 부족하다는 인식 때문이다. 트럼프를 비롯한 미국 대선 주자들이 한국에 대해 왜곡된 의견 내놓는 것을 보면서 한국 목소리를 전해 줄 전문가가 늘어나야 하는 것 아니냐는 생각이 더욱 강해지는 것도 같다. 외교적으로 유리한 환경 조성을 위해서는 정부 사이의 외교 활동을 넘어서는 공공외교 강화가 필요하고, 그 과정에서 한국 전문가 그룹 확대가 매번 떠오른다.
물론, 공공외교에는 한계가 있다. 애초에 정책 자체에서 상대국과 의견이 충돌한다면 제아무리 훌륭한 공공외교를 펴도 상대국의 정책을 바꾸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공외교는 단기적으로 잘못된 부분의 충격을 완화하고, 잘 된 부분을 강화해 우리 국익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하려는 데 유효하다.
워싱턴에서 공공외교에 관해 많은 논객들은 싱크탱크의 한국 전문가 그룹 확대가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보는 듯 하다. 워싱턴의 싱크탱크는 돈과 직결되어 있다. 소수의 기관을 제외한 대부분의 연구자들은 본인이 급여를 포함한 연구 자금을 획득해야 한다. 대학교에서 학생을 가르치고 연구 활동을 하는 교수처럼 월급이 나오는 것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본인의 연구가 얼마나 훌륭한지, 실제 정책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끊임없이 홍보해야 한다. 그러한 자료를 가지고 각종 재단 및 정부, 기업 등에 연구 자금을 신청한다.
반면, 재단들은 연구 자금 형식으로 내놓은 돈이 가장 의미 있게 쓰이길 바란다. 재단이 생각하기에 특정 연구가 의미 있다고 생각되면 연구비를 지원한다. 이러한 구조는 워싱턴의 한국 전문가들에게 똑같이 적용된다. 본인이 연구하고자 하는 주제, 다시 말해 한국에 관한 특정 연구가 가치가 있다는 것을 설득하여 급여를 포함한 연구비를 획득해야 삶을 꾸릴 수 있다.
문제는 미국의 재단들이 생각하기에 한국이라는 주제가 그다지 우선 순위가 높지 않다는 데에 있다. 더군다나 우리에게 장기적으로 큰 영향이 있는 주제들, 예를 들어 통일과 같은 주제는 미국의 재단들에게 그다지 흥미로운 주제가 아니다. 외교안보 정책 분야에 연구 자금을 지원하는 미국의 재단들에게는 미국의 국익에 우선되는 주제들이 주된 관심 사항이다. 다시 말하면 워싱턴의 한국 전문가들은 미국의 재단, 정부, 기업에서 나오는 돈에 의존하는 워싱턴 싱크탱크 구조 하에서 한국 연구만을 가지고 살아갈 수 없다. 이 대목에서 한국의 국제교류재단 같은 곳이 해야 할 역할이 생긴다. 한국 전문가들에게 연구 자금을 대고, 비한국 전문가들에게도 한국 관련 연구를 하도록 지원하는 것이다.
여기까지는 구조가 어느 나라나 비슷하다. 특히 우리가 비교하는 일본의 재단들과 유사하다. 문제는 우리의 경우 ‘실탄’이 부족하다는 데에 있다. 국제교류재단이 정책 분야에 지원할 수 있는 예산은 15억원 정도이다. 15억원으로 전 세계의 정책 분야 연구를 지원해야 한다. 워싱턴에는 직원 한 명이 고군분투하고 있다. 단기적으로 이러한 예산이 증가할 방법이 마땅하지 않다. 예산 증가는 장기적으로 고려할 문제이고, 또 그렇게 증가할 수 있을지 확신할 수도 없다.
그럼 단기적으로는 방법이 없을까? 워싱턴을 잘 살펴보면 우리 정부의 돈,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기관들이 꽤 있다. 이들의 운영비는 국제교류재단 정책 분야 지원 예산 15억원을 넘는다. 우선, 이들 기관들이 설립 목적에 맞게 운영되는지, 우리 세금이 들어가는 만큼 공공외교의 성과를 거두고 있는지 세밀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현재 나가는 이런 돈만 잘 관리해도 더 많은 성과를 거둘 수 있다.
우정엽 아산정책연구원 워싱턴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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