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르웨이는 전기차의 천국이다. 인구 520만명의 이 북유럽 국가에는 벌써 6만6,000대가 넘는 전기차가 도로를 달리고 있다. 올해 판매된 신차의 20%가 전기차일 정도로 전기차가 일상 속에 자리잡고 있다. 노르웨이 수도 오슬로에서는 미국 테슬라 모터스의 전기차가 택시로 이용되는 모습을 쉽게 목격할 수 있을 정도다. 지난 16일 뉴욕타임스는 전기차 판매의 모델로 노르웨이를 주목하며 사람들의 일상 속에 스며든 전기차를 조명했다.
오슬로에 살며 컴퓨터 엔지니어로 일하는 베리트 노르드가든과 이빈드 텔레프센 부부는 얼마 전 테슬라 세단 모델S를 샀다. 원래 전기차인 닛산 리프를 타고 다녔지만 배터리 용량이 한번 충전하면 85마일(약136㎞)까지밖에 가지 못해 두 아이들과 함께 교외 별장으로 가는 주말 여행을 위해선 턱없이 부족했다. 고심 끝에 이들은 배터리 용량이 3배 이상 큰 테슬라 모터스의 전기차를 세컨카로 선택했다. 모델S의 최대 주행거리는 434㎞에 달한다.
가격이 8만7,000달러(약 9,800만원)에 달하는 이 고급세단을 어떻게 평범한 가정에서 선뜻 구매할 수 있었을까. 전기차 보급을 독려하는 노르웨이 정부의 파격적인 보조금과 인센티브 정책 덕분이다. 텔레프센씨는 뉴욕타임스에 “보조금정책도 없었다면 이 차를 살 형편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라며 “아마 우리는 중고 스코다(폭스바겐 그룹의 저가 자동차 브랜드) 정도나 살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 부부는 수년 동안 자가용 없이 자전거와 대중교통, 차량공유 서비스 등의 교통수단을 이용해 왔다. 이들이 2년 전 닛산 리프로 처음 자신의 차를 소유하게 된 것도 정부의 보조금 프로그램 덕분이었다. 노르드가든씨는 “우리는 이전엔 차를 소유하는 데 대해 신경 쓰지 않았지만, 전기차는 재미있다”며 “가솔린 자동차를 운전하는 건 마치 1980년대로 시간여행을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파격적 세제혜택으로 전기차 보급한 노르웨이
전기차 지지자들은 저탄소 경제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전기차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특히 기존 화석연료 차량의 연료 효율이 20%에 그치는 것과 달리 전기차는 60%를 바퀴로 전달한다.
배출가스도 거의 없어 전기차 보급은 유엔 기후변화협약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큰 역할을 한다. 노르웨이는 올해 기후변화협약에서 2030년까지 최소 40%의 온실가스를 감축하겠다는 야심 찬 계획을 밝혔다.
노르웨이의 전기차 보급 프로젝트의 배경에는 청정 에너지라는 자연의 선물이 있었다. 노르웨이는 세계적인 석유와 천연가스 생산국이지만 풍부한 하천을 바탕으로 수력발전을 통해 사용하는 전기의 약 98%를 생산한다. 여기서 비롯된 상대적으로 저렴한 전기료가 전기차 도입을 촉진한 이유이기도 하다.
노르웨이 정부가 전기차에 세제혜택을 도입한 것은 2000년대부터다. 노르웨이 ‘싱크(The Think)’사가 개발한 2인용 전기차의 시장 도입을 위해 세금 감면을 시작했다. 2011년 닛산 리프, 2013년 폭스바겐 e-골프가 출시되면서 전기차 수요는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노르웨이 전기차협회 크리스티나 부 사무총장은 “처음에 정치인들은 중소기업 지원을 원했기 대문에 인센티브를 지급으로 시작했다”며 “당시 전기차는 그저 작은 플라스틱 박스에 불과했고, 정치인들도 현재 노르웨이의 신차 판매량의 20%가 전기차가 차지하게 될 것이라고는 예상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노르웨이는 당초 2017년 말 5만대의 전기차가 다닐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나 급증한 전기차 수요에 이 목표는 올해 4월 이미 달성됐다. 지난 9월 기준으로 6만 6,000대가 순수 전기차이고 추가적인 8,000대가 도요타 프리우스와 같은 가솔린 엔진과 전기모터를 결합한 하이브리드 차량이다.
정부의 전기차 관련 세금감면 정책은 파격적이다. 노르웨이는 세계에서 가장 자동차세를 강력하게 부과하는 것으로 유명하지만 전기차는 큰 세금혜택을 받는다. 차량 중량과 엔진 크기, 질소산화물 오염도 및 이산화탄소 배출량에 따라서 25%의 부가가치세가 면제되고 자동차 취득세도 면제다. 피요르드가 많은 노르웨이에서는 자동차를 싣고 페리를 이용하는 경우가 잦은데 이 페리 이용료도 전기차는 무료다. 고속도로 통행료도 무료다. 공용주차장에는 무료로 주차할 수 있으며 버스전용차선도 사용할 수 있다. 법인차량으로 구매할 때에는 세금의 50%를 깎아주는데다 공용 충전시설까지 무료다.
세제 혜택 덕택에 같은 자동차 브랜드의 비슷한 옵션일 경우 전기차의 가격이 더 저렴하기까지 하다. 오슬로의 한 폭스바겐 대리점에서 디젤 골프 자동차의 스탠다드 옵션의 소매가는 약33만 노르웨이 크로네로, 약4만달러(약4,500만원)에 달한다. 이와 비슷한 옵션을 갖춘 노르웨이 판매량 1위 전기차 e-골프는 약25만크로네, 단지 3만1,000달러(약3,500만원)에 판매 중이다.
이웃나라 스웨덴으로만 가도 상황은 크게 바뀐다. 노르웨이만큼의 보조금을 주지 않는 스웨덴에서 디젤 골프 자동차는 3만달러 이하에서 판매되지만 e-골프 가격은 4만달러에 육박한다.
배출가스 감축 효과 미미해 혜택에 의문도
노르웨이는 전기차 보급이 급속도로 이뤄지면서 공공충전소 부족 등 여러가지 문제도 발생하고 있다. 오슬로에는 현재 700개의 공공충전소가 있으며, 시 관계자는 올해 말까지 1,000곳으로 늘릴 예정이라고 밝혔다. 현재 대부분의 전기차 사용자들은 집에서 차량 충전을 하고 있다.
지방자치단체들은 모든 전기차를 대상으로 한 고속도로 통행료 면제 등 혜택에 대해 불만을 나타내고 있다. 노르웨이 과학기술대학의 환경경제학자 앤더스 스콘호프트는 전기차한 대당 1년에 약 1만3,500달러(약1,500만원)상당의 세제혜택이 이뤄진다고 추정했다. 스콘호프트는 “그러나 노르웨이가 실제로 감축한 이산화탄소 배출량 수준은 크지 않다”라고 말했다. 그는“만약 목적이 오염물질을 제거하는 것이라면, 디젤 엔진사용을 억제하도록 하는 게 더 효과적이겠지만, 노르웨이는 다른 유럽정부들처럼 경유에 휘발유보다 낮은 세금을 메김으로써 사실상 디젤차에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온실가스 문제에 제대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운전자에게 대기오염의 대가로 탄소세를 부과하는 것이 전기차에 과도한 세금혜택을 주는 것보다 더 효과적일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미국의 기후환경부 라스 안드레아스 룬데 차관은 “전기차에 대한 비용이 너무 비싼 것이 아니냔 논의가 있다”면서도 “그러나 도시 중심부의 깨끗한 공기의 가치는 쉽게 환산할 수 없기 때문에 전기차에 대한 세제혜택을 환경적 관점에서 비판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전기차 관심 이끈 테슬라, 전기차 중심 선언 폭스바겐
전기차에 대한 진지한 관심과 실질적인 수요로 이어지게 된 데에는 세계 최대 전기차 메이커인 테슬라 모터스의 역할이 컸다. 전기차 성능을 최상으로 끌어올려 럭셔리 자동차 구입 층을 공략하는 테슬라의 정책은 크게 성공했다.
지난 19일 외신들은 올해 3분기까지 유럽의 럭셔리 자동차 시장에서 테슬라의 모델 S는 1만600대의 판매량을 기록해 BMW 7시리즈와 아우디 A8 보다 많이 팔렸으며 메르세데스 S 클래스 판매량에 근접했다고 보도했다. 지난달 30일 테슬라는 자사의 세 번째 모델이자 첫 SUV 전기차인 7인승 ‘모델 X’를 전격 공개하며 다시 화제를 모았다.
테슬라는 중국 현지 생산으로 전기차 가격을 3분의 1로 낮출 계획이라고 발표하며 전기차 대중화의 가장 큰 걸림돌이었던 가격 문제 해결의 돌파구를 제시하기도 했다. 테슬라의 최고경영자(CEO) 일론 머스크는 올해 초에도 3년 내 중국 현지 생산이 가능하다고 밝힌 바 있다. 올해 3분기까지 중국에서는 전기차, 하이브리드차량이 지난해 같은 기간 두 배 이상인 2만8,092대 판매됐으며 테슬라는 3분기까지 중국에서 3,025대를 판매했다.
여기에 세계 디젤차 점유율의 20%를 차지하는 폭스바겐의 배출가스 저감장치 스캔들로 전기차 중심으로 자동차 산업 재편이 이뤄지는 것이 아니냔 전망이 힘을 얻고 있다.
‘디젤게이트’라고 불린 이 배출가스 저감장치 스캔들로 인한 리콜 비용과 브랜드 손해, 판매량 추락, 벌금과 법률 소송은 수십억 유로가 들어갈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로 비롯된 현재 유럽 자동차 시장의 50%를 차지하고 있는 디젤 차량에 대한 유럽 각국의 규제 강화가 폭스바겐을 더욱 궁지로 몰았다. 프랑스 파리는 2020년까지 디젤차량을 금지할 계획이라고 밝혔으며 영국 런던에는 디젤차량으론 운행하기 힘든 ‘초저배출존’을 운영할 계획이다. 까다로워지는 디젤의 배출가스 기준으로 인해 차량 가격은 더욱 높아질 수 있다.
지난 몇 년 간 디젤엔진은 환경오염을 야기하는 가솔린의 대안으로 제시됐다. 유럽은 디젤에 대해 보조금을 지급해 전기차와 하이브리드 차량으로의 전환이 둔화됐다. 유럽에서 전기차의 부상은 정부 지원을 받은 노르웨이에서만 이뤄졌다.
결국 폭스바겐은 지난 14일 연구 개발의 중심을 전기차로 옮기겠다고 선언했다. 폭스바겐 경영이사회는 디젤차 위주의 전략을 수정해 최상급 세단 페이톤을 전기차로 출시하고, 소형차에 공동 적용할 수 있는 전기차 차체를 개발해 아우디와 스코다 등에 적용하기로 했다. 미국 IT 전문매체 와이어드는 “10만달러에 달하는 테슬라와 3만달러의 e-골프로 양분화된 전기차 시장에서, 수년간의 투자 없이 폭스바겐이 흡족할 만한 주행거리와 합리적인 가격을 갖춘 전기차를 곧 출시할 것이라고는 믿기 힘들다”면서도 “훌륭한 엔지니어와 디자이너를 갖춘 거대 기업인 폭스바겐이 무엇을 내 놓을지 흥미롭다”고 기대감을 나타냈다.
박소영기자 sosyou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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