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년 생산량 54만톤, 11월부터 고스란히 묵은 쌀
정부는 “가공시장 규모 키우겠다”는 말만 되풀이
“묵은 쌀을 바다에 수장(水葬)하는 방법은 어떤가.”(A 국회의원)
“반대 여론이 엄청날 텐데 의원님이 책임질 수 있나요?”(정부 관계자)
수확한 지 1년 이상 지난 묵은 쌀이 매년 급증하고 있어 정부가 골머리를 앓고 있다. 햅쌀 소비마저 축소되고 있는 마당에 묵은 쌀은 더더욱 수요처가 마땅찮아 매년 천문학적 규모의 보관 비용만 발생시키는 상황이다. 국민 정서를 감안해 결국 없던 일이 됐지만 국회에서 묵은 쌀을 바다에 버리겠다는 극단적 방법까지 거론됐을 정도라고 한다.
27일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올해 예상되는 국산 쌀 재고량은 약 85만톤. 생산 연도별 재고 규모는 각각 2014년분 54만톤(63.5%), 2013년분 21만톤(24.7%), 2012년분 10만톤(11.7%) 가량이다. 특히 새로운 ‘양곡연도’가 시작되는 내달 1일부터 2014년 생산분이 햅쌀에서 묵은 쌀로 전환되면서 정부 곳간에 국산 묵은 쌀만 85톤이 쌓이게 된다.
묵은 쌀이 늘어나는 것은 쌀 생산 감소보다 소비 감소 속도가 더 빠르기 때문이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쌀 재배면적은 1990년 이후 매년 1.8%씩 줄어든 반면, 1인당 쌀 소비량 감소율은 같은 기간 2.5%씩 감소했다.
묵은 쌀은 햅쌀에 비해 수요처가 마땅치 않아 처치가 더 곤란하다. 정부가 사들인 쌀은 가공용과 주정용(소주), 사회복지용, 해외원조용, 군ㆍ관수용(군ㆍ교도소) 등으로 쓰이는데, 묵은 쌀은 이중 가공용이나 교도소 급식용 정도로만 쓰인다.
기초수급대상자와 차상위 계층을 대상으로 정부가 쌀 값의 50%를 지원해 반 값에 판매하는 사회복지용 쌀은 원칙적으로 햅쌀만 사용하고, 묵은 쌀의 주요 수요처였던 군에서도 수년 전부터 사기 진작 차원에서 햅쌀만 공급 받고 있다. 그나마 묵은 쌀이 쓰일 수 있는 곳이 가공용인데, 이마저도 수입 쌀에 비해 경쟁력이 크게 밀린다. 정부는 묵은 쌀의 경우 햅쌀보다 생산 연도별로 10%씩 할인된 가격에 판매하고 있지만 수입 쌀은 국산 쌀에 비해 값이 4분의 1에 불과하다. 많게는 연간 40만톤(2002년)까지 지원됐던 대북 쌀 지원도 2010년 5.24조치 이후 끊긴 상태이고, 해외 원조도 국제기구와 협의가 필요해 물량을 늘리기 쉽지 않다는 게 정부의 설명이다.
묵은 쌀이 창고에 쌓여 가면서 보관 비용은 천문학적으로 불어나고 있다. 농촌경제연구원은 쌀 재고 10만톤을 관리하는 데 드는 비용을 연간 316억원 정도로 추산하는데, 올해 기준으로 국산 쌀 보관 비용만 최대 2,686억원에 달한다.
쌀 유통업계에서는 묵은 쌀을 가축 사료용으로 쓰는 것을 그나마 현실적인 방안으로 꼽는다. 한 업계 관계자는 “묵은 쌀이 매년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불어나는 현실을 감안하면 쌀을 사료용으로 쓰면 안 된다는 주장은 너무 감정적”이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정부는 시기상조라는 입장이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사료용 사용은 아직 국민적 공감대가 충분하지 않아 쉽지 않다”면서 “쌀 가공시장 규모를 키워 묵은 쌀 소비를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세종=이성택기자 highno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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