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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걷니? 나는 굴린다… 바퀴 신은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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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걷니? 나는 굴린다… 바퀴 신은 사람들

입력
2015.10.27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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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발 전동휠을 타고 출퇴근 하는 김종엽씨가 한발타기 회전을 보여주고 있다. 신상순 선임기자ssshin@hankookilbo.com
외발 전동휠을 타고 출퇴근 하는 김종엽씨가 한발타기 회전을 보여주고 있다. 신상순 선임기자ssshin@hankookilbo.com

스산한 가을 바람이 부는 서울역 횡단보도 앞. 머플러 사이로 긴 생머리를 흩날리며 세련된 옷차림의 젊은 여성이 커피 한 잔을 손에 쥐고 있다. 초록불로 신호가 바뀌자 출근인파를 헤치고 춤추듯 미끄러지며 길을 건너는 그녀. 다리 사이에 끼워진 저 동그란 원반 같은 것은 뭐지? 바퀴를 신은 인어공주 같기도, 사이보그와 인간의 혼혈종 같기도 했던 그녀는 외발 전동휠을 타고 있었다. 어느 오피스 빌딩 안으로 유유히 미끄러져 들어갈 때까지 사람들은 그녀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바퀴 신은 사람들이 나타났다. 자동차도, 자전거도 아니다. 그저 바퀴다. 일인용 전동 기구를 뜻하는 ‘스마트 모빌리티’가 단순한 레저용 놀이기구에서 출퇴근용 이동수단으로 진화하고 있다. 외발과 양발로 구분되는 전동휠, 손잡이 달린 성인용 ‘스카이 씽씽’ 전동 킥보드, 전동 기능을 추가한 자전거까지, 1인용 전동 탈것이 붐이다. 온라인 쇼핑몰 G마켓에 따르면, 8월 스마트 모빌리티 제품 판매량은 전년 동기 대비 260% 증가했다. 1인용 교통수단의 새로운 시대가 열리는 걸까.

휴먼웍스의 외발 전동휠 '나인봇 원'. 휴먼웍스 제공
휴먼웍스의 외발 전동휠 '나인봇 원'. 휴먼웍스 제공

진화하는 스마트 모빌리티

직장인 김종엽(31ㆍ부평시)씨는 6개월 전 외발 전동휠에 입문한 후 출퇴근용으로도 타고 다니는 열혈 마니아다. 주말에는 공원 등지에서 한발로 타기, 점프하기, 회전하기, 계단 내려가기 등 레저 활동을 즐기고, 평일에는 출퇴근용으로 얌전하게 주행하는 ‘이중생활’을 하고 있다. 자동차와 달리 기름값도, 주차비도, 보험료도 걱정할 필요 없고, 콩나물시루 같은 버스와 지하철에 시달릴 필요도 없다. “처음엔 레저용으로 산 건데 전동휠 덕분에 출근길이 더없이 편해졌어요.”

스마트 모빌리티의 역사는 2000년대 초반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가장 핫한 이동수단으로 각광받았던 전동 스쿠터, 세그웨이로 거슬러 올라간다.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이 타고 다니다 전복사고로 크게 다쳤던 세그웨이는 비싼 가격 탓에 전 세계적 유행으로까지 퍼져나가지는 못했지만 수많은 후손들을 낳았다. 외발 전동휠은 그 중에서도 가장 고난도의 기술을 요하는 스마트 모빌리티. 커다란 바퀴 양쪽에 수평으로 뻗어나온 발판이 장치의 전부로 그 위에 올라서서 균형을 잡고 움직여야 하는 일종의 ‘서서 타는 자전거’다. 몸의 중심이 앞으로 쏠리면 전진하고, 뒤로 쏠리면 정지한다. 균형잡기가 상당히 어렵지만 가장 작고 가벼워 휴대가 용이하다는 장점이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가장 힙하다. 최근 출시된 제품들은 자가 평형을 이룰 수 있는 자이로 센서가 탑재돼 있어 보다 안정적인 주행이 가능해졌다.

자이로드론코리아의 양발 전동휠 '자이로드론'. 자이로드론코리아 제공
자이로드론코리아의 양발 전동휠 '자이로드론'. 자이로드론코리아 제공

양발 전동휠은 균형잡기가 훨씬 수월하고, 바퀴의 크기가 작아 휴대하기 좋은 장점이 있다. 몸의 기울어짐과 방향에 따라 전진 및 방향전환을 수행한다. 앞으로 몸을 숙이면 전진하고, 뒤꿈치를 누르면 브레이크가 걸린다.

이노킴의 전동 킥보드 '이노킴 퀵2'. 이노킴 제공
이노킴의 전동 킥보드 '이노킴 퀵2'. 이노킴 제공

오토바이처럼 스로틀을 당겨 주행하는 전동 킥보드는 상대적으로 무게중심이 안정적이어서 운동신경이 둔한 사람들도 쉽게 도전해볼 수 있다. 손잡이가 달려 있어 방향전환이 손쉽고, 초보자도 특별한 학습 없이 탈 수 있다. 일반 자전거처럼 브레이크가 있고 엑셀 역할을 하는 버튼이 따로 있다.

전동과 일반 기능이 모두 탑재된 삼천리자전거의 전동 자전거 '삼천리 팬텀 XC'. 삼천리자전거 제공
전동과 일반 기능이 모두 탑재된 삼천리자전거의 전동 자전거 '삼천리 팬텀 XC'. 삼천리자전거 제공

자전거에도 전동 바람은 불었다. 일반 자전거처럼 페달을 밟아 주행하는 방식과 오토바이처럼 전동으로 주행하는 방식을 모두 탑재, 주행자가 주행 공간에 맞춰 선택할 수 있게 했다.

신발 대신 바퀴를 신은 사람들은 상상도 하지 못한 자유를 누린다. 킥보드를 타는 사람들. 이노킴 제공
신발 대신 바퀴를 신은 사람들은 상상도 하지 못한 자유를 누린다. 킥보드를 타는 사람들. 이노킴 제공

넌 내게 자유를 줬어

부산에서 자영업을 하는 나범희(31)씨는 최근 전동 킥보드로 제주도를 여행했다. 중국 출장 중 ‘별 신기한 물건’이 다 있어 60만원을 주고 구매한 킥보드는 나씨에게 자동차 없이도 가능한 삶의 자유를 줬다. 차를 가져가기에는 거리가 짧고, 주차문제도 복잡한 곳에 전동 킥보드는 그야말로 안성맞춤이었다. 점차 이동 반경을 넓혀 부산 시내를 주행하는 데도 전혀 문제가 없었다. 접이식이라 버스와 지하철 어디에도 쉽게 실을 수 있어 장거리 이동이 가능했다. 무게는 16~20㎏ 정도.

“한번에 40~50㎞ 정도 가요. 서울로 치면 강남역에서 분당까지 그냥 가는 셈이죠. 시내 안에서는 지하철역 열 정거장 정도는 갈 수 있으니 출퇴근용으로 아주 좋아요.”

자동차로 해결할 수 없는 부분을 해결해주는 전동 킥보드의 장점은 제주 여행 중 특히 두드러졌다. 차로 달리면 놓치기 쉬운 경치, 좀 감상하려면 주차해야 하는 불편함이 전동 킥보드를 타고 달리는 동안 전혀 없었다. “자연의 아름다움이나 숨결을 그대로 느낄 수 있으니까 너무 좋더라고요. 주차 걱정할 필요도 없이 맘에 드는 곳에서는 사진도 찍고, 아주 색다른 여행이었어요.”

인터넷 회사에 근무하는 이덕진(29ㆍ경기 광명시)씨는 100만원을 주고 중국산 전동 킥보드를 지난달 구입했다. 주변에선 그 돈이면 좀 더 보태 중고차를 사는 게 낫겠다고들 말했지만, 월 충전비용 5,000원이 유지비의 전부인지라 차 대신 전동 킥보드를 선택했다. 킥보드의 할부금도 교통비와 별 차이가 없어 1년만 지나면 오히려 교통비를 절약할 수 있겠다는 계산도 섰다. “출퇴근 스트레스가 거의 없다는 것, 지옥철을 타지 않아도 된다는 것, 그게 가장 큰 변화예요. 전 차를 살 생각은 없거든요. 친구랑 약속이 있을 때나 여자친구를 만날 때도 자유롭게 킥보드를 타고 나가면 되니까 너무 좋죠. 어머니도 마트 가실 때 자주 빌려달라 하시더라고요.”

올 8월 론칭한 잡지사 8min은 아예 직원 복지 차원의 이동수단으로 킥보드를 구매했다. 30명가량의 직원이 산책을 나가거나 햄버거 사러 잠깐 외출할 때 킥보드를 이용한다. 은행업무 등 간단한 업무에도 자주 사용된다. 직원들 사이에 누가 갖고 나갔는지 금세 소문이 퍼져 타고 나갔다가는 빨리 돌아오라는 전화가 쇄도할 정도라고. 심창섭 광고팀장은 “원래 관심이 없었는데, 한번 타보니까 정말 재밌더라”며 “중장거리 이동에는 자동차보다 훨씬 편리한 것 같다”고 말했다. “타고 있으면 힙한 느낌이 들어요. 타고 나가면 아주 노골적으로 사람들이 쳐다보고, 말을 걸곤 하죠. 자전거 타는 사람들이 오르막을 힘들게 올라가고 있을 때는 약간 우월감마저 느껴지고요.”(웃음)

질주하는 탈것, 거북이걸음 법규

스마트 모빌리티를 이용하는 사람들의 최대 고민은 안전법규의 미비다. 과거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신문물이니 당연히 관련된 법규도 존재하지 않는다. 현행법상 스마트 모빌리티는 오토바이와 같은 원동기장치자전거로 분류돼 인도와 자전거도로가 아닌 자동차도로, 그 중에서도 맨 오른쪽 차도로 달려야 한다. 속도 규정도 따로 없고, 헬멧도 반드시 써야 한다. 당연히 원동기장치 면허(오토바이 면허)도 필요하다.

하지만 스마트 모빌리티 이용자들은 차도 주행은 너무 위험하다고 입을 모은다. 헬멧 하나만 쓴 채 보호장비 없이 온 몸을 위험에 노출하고 자동차들 사이에서 주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인도에서 스마트 모빌리티를 타다가 사람을 칠 우려도 있지만, 사람이 많은 곳은 어차피 빠르게 못 다닌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서울경찰청 교통안전계 최현오 과장은 “인도로 다닌다고 해서 다 단속이 되는 게 아니라 위험하게 주행하는 경우만 단속 대상”이라며 “현재는 계도 위주로만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자전거도 도로교통법의 목적이 교통의 소통과 안전을 위한 것이라고 1조에 규정이 돼 있다. 위험성이 있어야 단속하지 규정에 위반된다고 다 단속하지는 않는다”며 “전동휠이나 세그웨이도 위험하게 다니거나 과도하게 속도를 내는 경우에만 단속 대상”이라고 말했다. 법규 마련이 시급하다.

이와는 별도로 스마트 모빌리티 이용자들이 초보자들에게 건네는 한결 같은 안전 수칙. 과속방지턱을 조심하라. 몸이 가벼운 사람일수록 휙 날아갈 가능성이 높다.

박선영기자 aurevoir@hankookilbo.com

박규희 인턴기자(성신여대 국문학 4년)

유해린 인턴기자(이화여대 국문학 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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