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대통령 "국민대통합 이루겠다"
8000억대 대대적 개발 약속했지만 3년 지나도록 예산 배정 못 받아
기재부 "지역 형평성 순위서 밀려"
주민들 "선거 들러리 역할에 분노"
섬진강 유역 자치단체들이 ‘동서통합지대’ 때문에 단단히 화가 났다. 박근혜 대통령이 동서화합을 통한 국민대통합을 이루겠다며 영호남의 경계인 섬진강 유역 일대에 대한 대대적 개발을 약속했지만 정작 정부는 3년째 예산을 단 한 푼도 지원하지 않고 있어서다. 지자체들은 “정부가 국민대통합을 가로막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지만 정부는 여전히 뒷짐만 지고 있다.
국토교통부는 지난 2013년 12월 전남과 경남의 경계인 섬진강 양안(兩岸)을 영호남 지역갈등 해소와 국가발전의 신성장거점으로 육성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동서통합지대 조성사업을 확정·발표했다. 박 대통령의 대선 공약에 따른 후속 조치였다.
국토부는 이에 따라 2020년까지 국비와 지방비 등 총 8,660억원(한려대교, 철도사업 제외)을 투자해 산업육성과 문화교류, 연계교통망 확충 등 5개 분야 43개 사업을 추진키로 했다. 이중 경제파급효과와 상징성이 큰 동서통합대교 건설과 섬진강 하늘길 케이블카 설치, 남해 동서기록문화 교류단지 조성, 섬진강 뱃길 복원 및 수상레저 기반 조성 등 10개 사업을 선도사업(사업비 1,810억원)으로 지정하고 지난해부터 추진에 나섰다.
이때까지만 해도 사업 대상 지역으로 선정된 전남 광양시, 여수시, 순천시, 구례군과 경남 진주시, 사천시, 하동군, 남해군 등 영호남 8개 시·군에선 “동서통합지대조성이 지역균형발전의 의미 있는 단초가 될 것”이라는 평가와 장밋빛 전망들이 쏟아졌다.
그러나 이런 기대는 실망과 성토로 바뀐 지 오래다. 동서통합지대 조성이 지역균형발전 핵심 국정과제로 선정됐는데도 지금껏 사업 추진이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탓이다. 사업 발표 이후 동서통합대교 건설사업이 그나마 구체성을 띠는 듯 했지만 겨우 다리를 어느 곳에 세울지 위치(광양시 다압면 고사리~하동군 평사리 구간)만 선정됐을 뿐 사업은 사실상 중단된 상태다.
이처럼 사업이 지지부진한 데는 정부의 영호남화합 예산 홀대 때문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지난해 전남도와 경남도는 동서통합대교 건설 등 2개 사업을 공동 추진하겠다며 국비 15억원을 지원해줄 것을 요청했지만 기획재정부는 한 푼도 내려 보내지 않았다. 기재부는 올해도 섬진강 뱃길복원사업비(4억원)와 남해 동서기록문화교류단지 조성사업비(4억원) 등을 정부예산안에서 모두 배제했다.
기재부 관계자는 “선도사업이 모두 신규인데다 대부분 자치단체 관광 사업에 치우치고 투자비용도 1조원에 달해, 지역 형평성 등을 고려한 우선순위에서 밀려 신중하게 접근하고 있다”고 말했다.
문성필 광양참여연대 사무국장은 “지금까지 예산반영이 안 되는 것은 실천 의지가 없는 것으로, 집권 말기 1조원대 사업을 갑자기 시작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워 과거 정권처럼 선거 때 우려먹고 버릴게 뻔하다”며 “정부에 대한 주민들의 허탈감과 분노가 크다”고 했다.
실제로 섬진강 일대는 김대중 정부가 광양만·진주권 광역 개발계획(1999년), 이명박 정부가 남해안권 발전 종합계획(2010년), 박근혜 정부가 동서통합지대 조성계획(2013년) 등을 약속했지만 임기 내내 정부 정책 우선순위에서 뒷전으로 밀려나 번번이 좌절됐다.
현 정권의 약속이 선언적 공약(空約)에 그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자 섬진강 일대 9개 자치단체로 구성된 남중권발전협의회는 동서통합지대 조성의 실질적 추진을 위한 협의회 사무국을 설치, 공동 대응에 나서기로 했다.
광양시 관계자는 “박근혜 정부의 대국민통합 의미가 후퇴하지 않도록 이번 국회에서 동서가 화합하는 일부 상징성 있는 사업 예산이라도 세워지길 바란다”며 “집권 4년차인 내년도 국비지원마저 배제되면 동서통합지대는 사실상 물 건너갈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했다.
광양=하태민기자 hamo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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