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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억여원 투자했는데 이젠 7,000원 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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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억여원 투자했는데 이젠 7,000원 뿐… ”

입력
2015.10.27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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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경기 용인의 한 아파트 19층에서 정모(45)씨 부부가 자녀 두 명과 함께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 조사 결과 이날 오전 이모(54ㆍ여)씨 등 4명이 200억여원을 투자했다가 돌려 받지 못했다며 정씨 부부를 상대로 용인 서부경찰서에 고소장을 접수한 것으로 확인됐다. 온라인 상에선 투자에 실패해 빚 독촉을 받다 자살한 것으로 추정돼 정씨 가족에 대한 동정론이 일었다.

일가족의 죽음은 분명 비극이지만, 이들에게 투자했던 이씨 등 피해자의 사연은 상대적으로 덜 알려졌다. 이들은 빚까지 내 거액을 투자하고도 정씨 부부가 사망해 한 푼도 돌려 받지 못하게 됐다. 이씨는 27일 “50억여원을 투자했는데 지금 수중엔 7,000원밖에 없다”며 “앞으로 어떻게 살지 막막하다”고 망연자실했다.

이씨가 정씨 부부를 알게 된 건 2010년 친한 지인을 통해서다. S증권 과장으로 소개받은 정씨는 임직원들만 투자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있다며 투자를 권유했다. 100만원을 넣으면 한 달 뒤 20만원의 이자를 주는 조건이었다. 미심쩍었지만 본인도 십여년 이같이 돈을 벌었다는 지인의 말을 믿고 정씨 명의의 계좌로 100만원을 넣었다.

한 달 뒤 ‘S증권’은 이씨의 통장으로 120만원을 입금했다. 그 후 정씨의 부인 박모(44)가 계속해서 투자를 권유했다. 100만원을 넣으면 1분 뒤 105만원이 입금되는 것부터 1년을 넣어두면 달마다 6.8%의 이자가 들어오고 1년 뒤 원금과 이자가 입금되는 것까지 종류는 다양했다.

3년 전 정씨가 이사로 승진했다고 한 뒤에는 억대로 투자 규모가 커지기 시작했다. 이씨는 신용카드 대출, 마이너스 통장을 동원하고 집 담보로 대출까지 받아 입금하는 것도 모자라 친구와 친척 등 주변 지인 10여명의 돈까지 빌려 50여억원을 쏟아 부었다. 이씨는 “돈을 받기 무섭게 계속해서 투자정보를 줘서 실제로 돈은 한 번도 만져보지 못하고 계속해서 돈을 보태 넣었다”며 “몇 년만 바짝 모아서 목돈을 만들려는 욕심에…”라고 울먹였다.

꼬박꼬박 나오던 이자는 지난해 6월 25일부터 끊겼다. 해외 투자에 문제가 생겨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정씨가 미국으로 갔다고 했다. 곧 해결된다던 문제는 연말 석유 파동에 따른 여파와 해외 금융감독기관의 제재가 심해졌다는 등의 이유 때문에 처리되지 않았고 차일피일 지급이 미뤄졌다.

1년여 돈이 나오지 않으면서 이씨의 생활은 피폐해졌다. 몰고 다니던 국산 승용차는 감당이 안 돼 연말에 폐차했다. 10여년 쓰던 구형 냉장고가 고장 났지만 부품이 없어 수리를 못해 냉장고 없이 생활해야 했다. 돈을 빌려 준 주변 지인들의 빚 독촉도 점점 심해졌다. 이러한 사정을 뻔히 아는 박씨는 “언니, 미안해요. 우리는 S기업 직원이라 할인 특가로 살 수 있으니까 돈 나오면 내가 제일 먼저 그거 알아봐줄게”라고 입에 발린 소리를 했다.

박씨는 이달 19일 오후 “드디어 입금 완료. 20일 오전 10시에는 하늘이 두 쪽 나고 천재지변이 나도 입금됨”이라고 문자를 보내 이씨를 안심시켰다. 하지만 돈은 입금되지 않았고, 박씨의 휴대폰은 꺼져버렸다. 급한 마음에 찾아간 정씨의 집 앞에서 만난 피해자들과 얘기해보니 정씨의 신분은 K증권사 임원, 휴대폰 부품 납품업체 대표 등 제각각이었다.

정씨 부부의 집에서 3년 전부터 가사도우미로 일한 A(58ㆍ여)씨는 박씨의 꼬임에 넘어가 올해 4월부터 투자해 같은 방식으로 7억여원을 투자했다. A씨는 “결혼을 앞둔 아들 앞으로 빚까지 내서 넣었는데 죽어버렸으니 어떡하냐”며 “아들을 어떻게 결혼시키냐”고 울음을 터트렸다.

이들은 논의 끝에 22일 고소장을 접수했지만 정씨 부부는 이날 저녁 늦게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은 폐쇄회로(CC)TV 분석 결과 정씨 부부가 20일 오후 8시27분 귀가한 이후 외출한 흔적이 없다고 밝혔다. 죽기 직전까지 이들은 피해자들에게 끝내 미안하다는 사과의 말 한 마디 남기지 않았다.

용인 서부경찰서 관계자는 “피소된 정씨가 사망해 공소권 없음으로 수사를 마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안아람기자 onesho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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