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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보다 사회의 일원이라는 정체성이 중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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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보다 사회의 일원이라는 정체성이 중요”

입력
2015.10.27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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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순규씨는 "경험이 남달라서 세상 보는 가치관이 다른 사람의 이야기로 봐달라"고 말했다. 판미동 제공
신순규씨는 "경험이 남달라서 세상 보는 가치관이 다른 사람의 이야기로 봐달라"고 말했다. 판미동 제공

“볼 수 없다는 건 축복입니다. 시력이 항상 우리를 도와주진 않거든요. 애널리스트란 직업도 오히려 시각장애인에게 이상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쏟아지는 정보를 다 볼 수 없는 대신 불필요한 정보나 소문에 흔들리지 않으니까요.”

세계최초의 시각장애인 공인재무분석사(CFA) 신순규(48)씨는 27일 서울 무교동의 한 식당에서 마련된 에세이 ‘눈 감으면 보이는 것들’ 출간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15세에 홀로 미국 유학을 떠나 하버드에서 심리학을, MIT에서 경영학과 조직학을 공부한 그는 애널리스트로 진로를 바꿔 21년째 월스트리트에서 일하고 있다. 시각장애인 애널리스트가 거의 없다는 걸 알고 “내가 첫 성공사례가 되자”고 마음 먹고 1994년 JP모건에 들어간 뒤 1998년부터 브라운 브라더스 해리먼에서 근무하고 있다. 그는 “컴퓨터 스크린에 담긴 정보를 귀로 듣고 손으로 읽을 수 있기 때문에 불편을 느끼지 못한다”고 말했다.

신씨는 녹내장과 망막박리로 9세에 시력을 완전히 잃었다. 아들을 음악교사로 키우고 싶었던 어머니의 영향으로 일찍이 피아노를 배웠고 음악 유학을 떠났으나 “음악적 소질이 뛰어난 아이들과 같은 시간 연습해도 경쟁이 되지 않는다”는 걸 깨닫고 방향을 틀었다. 1987년 하버드와 프린스턴, MIT, 펜실베이니아대에 동시 합격한 그는 “그땐 내가 진짜 대단한 사람인 줄 알았다”며 “한국 최초 노벨상 물리학자가 되자는 허황된 꿈도 꿨지만 대학 수준의 수학을 11세에 마친 학생들과 상대가 되지 않았다”고 회고했다. 정신과 의사가 되고 싶었으나 타인의 도움 없이 환자를 진단할 수 있어야 한다는 규정 때문에 좌절했고 교수가 될까 하다가 결국 회사원이 됐다. 그는 “길을 잘못 들어섰을 때 내비게이션이 말하듯 내 인생은 경로를 재탐색하는 과정이었다”고 말했다.

신씨는 장애인이 감당해야 할 장벽을 허물기 위해선 정부의 정책이나 특수교육의 역할보다 장애인 자신의 마음가짐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장애인이라는 정체성보다 사회의 일원이라는 정체성을 가져야 하며, 목표를 위해 타인을 괴롭히면서 싸울 게 아니라 그 목표에 지혜롭게 도달하려는 의지와 결심이 필요합니다.” 30일 모교인 서울맹학교를 30여년 만에 찾아가서도 후배들에게 이런 말을 해줄 생각이라고 한다.

고경석기자 kav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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