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이 상고법원 추진 대신, 상고 특별재판부를 대법원에 설치하는 방안을 마련했다. 상고법원 설치를 위한 법원조직법 등 관련 6개 법 개정안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안1소위 심의대상에서 제외돼 19대 국회 임기 내 입법화가 사실상 불가능해진 데 따른 것이다.
대법원 내 상고 특별재판부는 배당 사건을 대법원 소부나 전원합의체로 보낼 수 있고, 대법원 소부나 전원합의체가 특별재판부의 선고 전 사건을 가져올 수도 있다. 또 지역 원심 재판부에 상고 이유서나 답변서를 내면 특별재판부가 지역순회 재판을 연다는 계획이다. 상고 특별재판부 법관은 추천위원회를 거쳐 임명하되 법원 외부에도 개방할 방침이다.
대법원이 상고 특별재판부 설치로 입장을 선회하면서 그 동안 상고법원에 올인했던 사법부의 체면은 말이 아니게 됐다. 양승태 대법원장의 상고법원 설치 의지에 따라 전국 법원이 일사불란하게 상고법원 홍보와 여론몰이에 나섰던 행태는 두고두고 입에 오르내릴 일이다. 대법원이 상고심 사건 과부하와 그로 인한 재판지체 현상을 제대로 풀려 했다면 다양한 해결 방안을 제시한 뒤 각계 의견을 들어 처리하는 것이 순리였다. 그럼에도 대법원은 법조계 내부에서조차 찬반이 맞서고 관점에 따라 장단점도 갈리는 상고법원을 유일한 해결책인양 밀어붙였다. 새삼 대법원의 과오와 시간ㆍ예산 낭비의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어떻든 현재 대법원의 상고심 과부하와 재판 지체 현상은 심각한 수준이다. 대법원에 접수된 상고사건은 2005년 2만2,587건에서 2014년 3만7652건으로 10년 만에 67%나 증가했다. 올해는 4만2,000건 이상 접수될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렇게 되면 대법관 12명(대법원장, 법원행정처장 제외)이 1인당 한해 평균 3,500건의 사건을 처리해야 한다. 대법관 보좌 인력이 사전 검토를 하고 심리불속행 기각 사건이 전체의 50%를 넘는다고는 하지만 민사ㆍ행정소송이나 형사사건 가릴 것 없이 사건 처리 기간이 계속 늘어나는 추세다. 신속한 판결을 원하는 국민들로서는 제대로 된 사법서비스를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인 것이다.
그런 점에서 대법원 내 상고 특별재판부 설치는 검토해볼 만하다. 상고법원과 달리 3심제를 규정한 헌법에 위배되지 않는데다 대법관들의 재판 부담을 줄이고 좀 더 신속하게 재판을 끝낼 수 있다는 점이 긍정적이다. 물론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다. 대법관의 재판 부담을 줄이고 판결에 시대 변화와 사회의 다양한 요구를 제대로 담아내기 위해선 역시 대법관 수를 늘리고 구성도 다양화하는 것이 우선임을 대법원은 염두에 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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