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26일은 안중근 의사가 중국 하얼빈역에서 히토 히로부미 일본 추밀원 의장을 저격한지 106년이 된 날이다. 안중근은 우리 국민들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 중 한 명으로, 나라와 민족을 위해 목숨을 바친 의사(義士)로 추앙받고 있다. 저격 상대가 정한론(征韓論)의 선두주자인 요시다 쇼인의 제자이자 조선 침탈의 선봉에 선 이토 히로부미라는 상징성도 없지는 않을게다. 하지만 죽음을 앞두고도 초연했던 정신력, 불의에 굴하지 않도록 가르친 어머니 조마리아의 일화 등을 통해 우리는 그의 인간적인 면모에 감동받았고, 그가 남긴 동양평화론을 통해 시대를 뛰어넘는 통찰력을 배웠다.
반면 스가 요시히데 일본 관방장관은 “안중근은 테러리스트”로 칭한 것도 모자라, “안중근은 이토를 살해해 사형당한 인물”이라는 내용을 정부 공식 견해로 채택했다. 과거사를 둘러싸고 한일 양국간 견해가 엇갈리는 부분이 한둘이 아니겠지만 조선의 젊은 청년이 일본 초대 총리, 대한제국 초대 통감을 거친 당대 일본의 최고의 정치 거물을 쓰러뜨린 이 사건을 바라보는 시각은 이처럼 극명하게 갈린다.
도쿄특파원 시절 취재 과정에서 안중근을 보는 일본의 시선이 스가 장관의 말처럼 획일화한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큰 다행이었다. 도쿄에 있는 이토 히로부미의 묘지 안내문은 안중근을 테러리스트가 아닌 ‘조선의 독립운동가’라고 소개하고 있고, ‘특수한 목적으로 총을 쏘았다’는 의미의 저격이라는 표현을 사용, 사건을 둘러싼 다양한 시대적 상황을 돌이켜볼 여백을 남겼다. 작가 이치카와 마사아키는 안중근의 저격을 “민족주의에 입각한 투쟁의 한 형태”라고 정의했고, 나카노 야스오는 “안중근은 자객이나 폭도가 아니라 조선 독립 의병운동을 주도한 인물”로 평가했다.
하지만 안중근에 대한 다양한 평가를 일본사회에서 더 이상 기대할 수 없을 것 같아 걱정이다. 아베 신조 총리가 상대국을 배려하는 차원에서 쓰여진 교과서를 일본에 유리하도록 획일적 역사관을 주입하려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베 총리는 “일본인으로서 긍지와 자신을 갖는 것이 교육의 기본”이라며 ‘일본의 전통과 문화’ ‘애국심과 향토애’를 강조하는 교과서 검정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문제는 아베 총리의 이런 취지의 배경에는 부끄러운 일본의 역사를 지우려는 의도가 담겨있고, 이런 시도가 일본 사회에서 생각보다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후쿠오카현 이즈카시 공동묘지에 설치된 조선인 징용 추모비에서 ‘강제연행’ 문구를 수정하라는 주민들의 요구가 있었고, 올 7월 유네스코세계유산으로 등록된 미이케 탄광의 조선인 강제징용 희생자 위령비가 우익 추정세력으로부터 스프레이 테러를 당했다.
이웃 일본만의 문제로 여겨지던 역사관 논란이 최근 국내에서 재현되고 있어 씁쓸하다. 정부는 기존 역사 교과서 상당수가 좌편향 시각에서 쓰여졌다며 이를 바로 잡기 위해서는 국정교과서를 만드는 것만이 대안이라고 역설하고 있다. 하지만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겠다며 획일적 관점에서 역사 교과서를 다시 쓰겠다는 것은 아무래도 수긍하기 어렵다. 애당초 승자의 입장에서 쓰여진 역사를 다양한 측면에서 해석하는 일은 당연한 일이다. 만약 일선 학교에서 왜곡된 교육을 시키는 사례가 있다면 이는 행정적인 차원에서 충분히 거를 수 있는 사안이다.
그런데도 박근혜 대통령은 27일 국정연설에서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국정교과서화 작업을 ‘역사교육 정상화’로 지칭했다. “미래의 주역인 우리 아이들이 우리 역사를 올바르게 인식하고,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자긍심을 갖고 자라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는 것이다. 아베 총리의 편향적 역사관을 늘 질책했던 박 대통령의 발언치고는 아베 총리의 발언과 너무나 흡사해 놀랍다. 부디 이 발언이 우리 사회 우편향화의 시작이 되지 않기를.
한창만 전국부장 cmha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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