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한국스포츠경제 김주희] "지금은 전쟁이지만, 나중에 생각하면 정말 좋은 추억이지 않을까요."
삼성과 두산은 우승 트로피를 두고 물러설 수 없는 싸움을 벌이고 있다. 승부의 세계는 냉정하지만 이 속에서 피어나는 우정은 더욱 진하다.
삼성 김상수(25)와 두산 정수빈(25), 허경민(25)은 소문난 단짝 친구이다. 이들은 2008년 캐나다 에드먼턴에서 열린 세계청소년선수권대회에서 함께 우승을 일궈낸 인연을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이제는 각 팀의 주축 선수로 성장해 한국시리즈에서 '에드먼턴 키즈'의 존재감을 발휘하는 중이다.
정규시즌 우승을 하고 한국시리즈를 기다렸던 김상수의 감회가 남달랐던 이유다. 삼성과 두산은 지난 2013년에도 한국시리즈에서 만났지만 당시에는 김상수가 손바닥 뼈 골절로 수술을 받아 '절친들과의' 만남이 성사되지 못했다.
지난 26일 대구구장에서 열린 한국시리즈 1차전을 앞두고 만난 김상수는 "준플레이오프 때부터 수빈이와 경민이가 '대구 간다'고 연락이 왔는데 진짜 올 줄 몰랐다. 설마 설마 했는데 정말 왔다"며 웃었다. 정수빈과 허경민은 준플레이오프 때부터 플레이오프까지 팀의 테이블세터를 맡아 맹활약했다. 김상수는 "정말 잘 하더라. 내 동기들은 다 야구를 잘 하는 것 같다. 경민이는 원래 잘 했지만 올해는 더 잘 하는 것 같다"며 "좋은 경기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허경민은 '에드민턴 키즈' 중 가장 늦게 빛을 본 경우다. 김상수와 정수빈, 오지환(LG), 안치홍(경찰 야구단)이 프로 데뷔 직후 주전으로 자리를 잡았지만 허경민은 백업에 머물다가 올 시즌 주전으로 도약했다. 하지만 준플레이오프와 플레이오프 9경기에서 타율 0.400(35타수 14안타)를 때려내는 등 누구보다 뜨겁게 올 가을을 불태우고 있다. 허경민은 "준플레이오프 때까지만 해도 '상수 보고 싶다. 언제 볼 수 있을까. 겨울에나 볼 수 있나' 했는데 오늘 정말 만났다"며 싱글벙글이었다.
'출발'이 늦었지만 누구보다 열심히 뛰고 있다. 허경민은 "앞서간 친구들을 뒤쫓아 가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며 "다들 나보다 위에 있다고 생각한다. 난 항상 4등이라고 생각하고 뛰겠다"며 웃음지었다. 이어 "이런 경기에서 상수를 만나 더 의미가 있다. 상수와 나의 맞대결이기도 하지만 그 전에 두산과 삼성의 경기다. 지금은 전쟁이지만 나중에 돌이켜 생각해보면 정말 좋은 추억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정수빈 역시 "2013년에는 우리가 삼성에 졌지만, 올해는 우리가 이겨야 한다"며 승리를 향한 의지를 내보였다.
동갑내기 친구들은 1차전부터 뜨겁게 달아올랐다. 허경민은 첫 타석부터 선제 솔로포를 때려내는 등 4타수 4안타 1홈런 3타점으로 맹활약했고, 정수빈 역시 3타수 2안타 1타점을 기록했다. 김상수는 4타수 1안타 1타점을 올리며 팀 승리까지 챙겨 친구들 앞에 어깨를 더욱 당당히 폈다.
남은 시리즈도 에드먼턴 키즈의 활약에 갈릴 가능성이 크다. 정수빈은 이날 경기 6회 왼 검지에 공을 맞아 교체됐고 열상을 입어 6바늘을 꿰맸다. 톱타자로 공격을 이끌었던 정수빈의 상태에 따라 두산의 운명은 물론 시리즈의 향방이 바뀔 수 있다.
사진=삼성 김상수-두산 허경민-정수빈(왼쪽부터). /대구=임민환기자
대구=김주희 기자 juhee@sporbiz.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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