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스포츠경제 박종민] 리디아 고(18•뉴질랜드)가 '골프 여제'의 자리를 되찾았다.
리디아 고는 26일(한국시간) 발표된 세계랭킹에서 12.98점을 받아 박인비(27ㆍKB금융그룹)를 2위(12.68점)로 끌어내리고 1위로 올라섰다. 지난 6월 이후 약 4개월 만의 정상 탈환이다. 그는 25일 대만 타이베이에서 열린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푸본 타이완 챔피언십에서 20언더파 268타로 우승을 차지하며 세계랭킹에서도 맨 꼭대기에 자신의 이름을 올렸다.
리디아 고의 승전보가 전해질 때마다 국내에서는 그의 국적이 부각되곤 한다. 그는 한국에서 출생해 어린 시절 고보경이라는 이름으로 살았다. 리디아 고가 어렸을 때 아버지 고길홍씨는 딸과 동네 골프연습장을 찾았다가 '골프 여건이 좋은 나라에서 아이를 키우는 게 낫지 않겠느냐'는 코치의 권유를 받고 뉴질랜드 이민을 결심했다. 리디아 고가 천재적인 골퍼가 되는 시발점이었다.
뉴질랜드 국적을 지니게 된 리디아 고는 한국 국적 취득에 관한 언급이 나왔을 때 "선수생활을 하면서 뉴질랜드에서 많은 도움을 받았다. 국적을 바꿀 생각은 없다"고 말했다. 한국인의 피가 흐르고 있지만, 엄밀히 국적만 따지면 리디아 고는 '외국인'이다. 일각에서 그가 우승할 때 '한국계'라는 사실을 굳이 강조할 필요가 있느냐고 주장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국내 언론은 대개 리디아 고를 두고 '한국계' 또는 '뉴질랜드 동포'라고 표현한다. 사전적 정의에 의하면 '동포'는 '같은 나라 또는 같은 민족의 사람을 다정하게 이르는 말'이다. 반면 해외에서는 리디아 고에게 '한국계'라는 의미의 표현을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외신에서는 '키위(Kiwiㆍ뉴질랜드인의 애칭)'나 '뉴질랜드 골퍼(New Zealand Golfer)'라는 수식어를 붙인다. 현지 언론인 뉴질랜드 헤럴드는 25일 리디아 고의 우승 소식을 전하면서 '18세 뉴질랜드인(The 18-year-old New Zealander)'이라고 명시했다.
'한국계'나 '뉴질랜드 동포'라는 표현에는 혈연 등 출신을 중시하는 한국 특유의 정서가 묻어 있다. 서양권 국가들과 문화가 다른 만큼 이 같은 표기에 대해서는 크게 잘못됐다고 할 수 없다. 물론 '우리 선수', '우리 팀', '우리 국가' 응원에만 지나치게 집착하고 '다름'을 배척하면 그것은 곧 스포츠내셔널리즘(Sports Nationalismㆍ스포츠민족주의)의 다른 이름이 될 수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리디아 고를 어떻게 부르느냐가 아닐 수 있다. 객관적인 기록이 스포츠 역사에 어떻게 남느냐이다.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역대 '한국인'의 우승횟수와 '한국계'의 우승 횟수는 확실히 구분돼야 한다. '한국계'의 성과를 '한국인'의 성과와 동일시하면 안 된다는 뜻이다.
리디아 고는 올 시즌 LPGA 투어 상금(271만 달러)과 평균 타수(69.282타), 톱텐 피니시율(68%ㆍ15/22), 그린정확도(77.6%), 올해의 선수 포인트(273점) 등 각 부문에서 1위를 휩쓸고 있다. 명실상부 세계 최고의 선수다. 하지만 LPGA 홈페이지에 게재돼 있는 그의 사진 옆에는 엄연히 뉴질랜드 국기가 그려져 있다. 내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서 리디아 고가 금메달을 따도 한국의 메달 횟수는 달라지지 않는다. 국내에서 리디아 고의 승승장구를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에 여러 의견이 엇갈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사진=리디아 고(KLPGA 제공).
박종민 기자 mini@sporbiz.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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