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이 보건복지부와 최근 당정 협의에서 꺼낸 학제 개편 카드는 차라리 한편의 코미디였다. 정부의 제3차 저출산ㆍ고령화 기본계획 발표 이후 좀 더 심화한 안을 모색하기 위한 이 자리에서 새누리당은 만혼추세와 소모적 스펙 쌓기로 청년들이 직장생활을 시작하는 입직 연령이 계속 높아지는 게 저출산의 주요한 원인이므로 초중등 과정을 1년씩 단축시켜 청년들의 취업 연령을 낮추자고 제안했다. 이에 정부는 적극 검토하겠다고 답변했다.
사회진출이 빨라지면 결혼 출산 연령을 앞당길 수 있다는 단선적인 셈법에 국민들을 부려먹을 노예로만 보느냐는 비난이 들끓고 있다. 어린 백수만 대거 양산할 거라는 회의론부터 사교육비 지출 여력이 없는 저소득층 자녀를 비정규직 시장으로 내몰아 노예화, 즉 저임금 착취를 하려는 수작이라는 비아냥까지 역사 교과서 논란을 제외하고는 가장 뜨거운 비판의 장이 열렸다.
결국 교육부가 난색을 표하면서 당장 추진은 어렵게 됐지만 새누리당은 중장기적으로 끌고 가겠다는 방침이라 아직 불씨는 완전히 꺼진 게 아니다. 정부가 내놓은 저출산 대책이 재탕에 지나지 않는다며 호된 질타 끝에 내놓았다니 아연실색하다. 새누리당의 주장대로 ‘과감하고 획기적인 발상의 전환’이긴 하나, 굳이 이런 것까지 지적해야 하나 싶을 정도로 황당하다.
학제 개편이야 말로 2007년 참여정부 시절 검토 하다 지나치게 비용이 많이 들고, 혼란과 파장에 따른 실이 득보다 크다고 결론 나 폐기된 안이다. 당시는 저출산 극복을 위한 방안이 아니라, 저출산에 따른 결과로 급변할 교육ㆍ노동시장 대책을 마련하자는 취지였다. 이를 다시 꺼내면서 목적어만 갈아 치운다고 새 정책이 될 리 만무하다. 학제 개편 자체는 필요에 따라 논의 가능한 의제이나 애초에 출산 대책이 될 수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결혼해서 아이를 낳는 평범한 삶이 어려워진 현실은 그대로 두고 사회 진출 연령만 낮춘다고 문제가 풀리진 않는다. 취업과 결혼 출산은 하나로 맞물린 메커니즘 안에 있다. 비정규직 근로자가 600만명을 넘어섰다. 임금 근로자 3명 중 1명 꼴이다. 직업 불안정이 큰 마당에 결혼도 엄두가 안 날뿐더러, 천정부지 집값에 가정경제를 파탄 낼 정도라는 엄청난 사교육비를 고려해 아이 가질 결심을 일찌감치 접는 요즘 세태가 정녕 보이지 않는지.
현재 만 6세인 초등학교 입학 연령을 만 5세로 낮추고, 현행 6-3-3의 초중고등 교육 학제를 축소해 입직 연령을 낮추자는 것 역시 여러모로 의미가 없다. 전 세계적으로 12년 미만을 채택한 나라가 드물다. 멀쩡한 대학을 5,6년씩 다니는 젊은이들이 허다한 마당에 현실적 대안이 되지도 못한다. 취업이 안 되기 때문에 또는 학자금을 갚느라 아르바이트를 하느라 졸업을 유예하고, 어학연수나 인턴을 하며 스펙을 쌓느라 4년 만에 졸업하는 학생도 드물다.
본질은 건드리지 못한 채 변죽만 울린 당정 협의에 비판이 쏟아지는 까닭은 또 있다. 당정 협의는 집권당과 행정부의 주요 당직자들이 국가 정책을 협의하기 위한 논의의 모임이나, 주요 정책이 국회를 통과할 수 있도록 정부 부처가 여당의 협조를 구해 입법까지 추진하기 위한 성격이 강하다. 당정 주도권이 당으로 기울었다지만 학제 개편안은 명백한 월권으로 3권 분립마저 농락하는 행위다. 학제 개편 소관 부처인 교육부를 제외한 것도 황당한데 체계적인 검토도 거치지 않은 설익은 아이디어를 시행할 것처럼 으름장을 놓으니 정부 정책에 대한 불신과 반감만 커진다.
출산이 인간의 본능인데 오죽하면 그걸 기피하겠냐며 먹고 살 만한 세상부터 만들라는 네티즌들의 푸념을 흘려 들을 일이 아니다. 저출산 대안은 그저 국민들이 먹고 살 만하게 해주는 거다. 물론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럴 능력이 없다면 제발 부탁 드린다. 가뜩이나 스트레스 받을 일 투성이인데 보태지나 말길. ‘국민을 전부 화병으로 죽이려고 작정들 하셨소’라는 한 네티즌의 푸념이 서글프다.
기획취재부 기자 cj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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