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양인에 정보 요구권 있지만
친부모 동의비율 30% 못 미쳐
미동의 사유 90% 이상 '회신 없음'
"등기우편 2~3차례 보내면 끝"
부모 의사 파악 제대로 안 된 탓
“열다섯 살에 우연히 한국 드라마 대장금을 보게 됐고 이영애씨가 제 엄마일지 모른다는 막연한 기대를 품었어요. 그녀의 사진을 간직하며 언젠가 엄마를 만나길 간절히 소망했습니다.”
해외 입양인 애니킴(28)씨는 지난해 11월 친부모를 찾기 위해 한국에 왔다. 1988년 서울 마포구의 한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집안 사정이 좋지 않아 미국 캘리포니아의 일본계 미국인 부부에 입양됐다.
가장 먼저 그는 지난 3월 보건복지부 산하 중앙입양원에 입양정보공개를 신청했다. 2012년 입양특례법이 개정되며 중앙입양원으로부터 친부모의 이름과 주소 등의 정보를 받을 수 있는 권리가 생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애니킴씨는 중앙입양원으로부터 “정보를 줄 수 없다”는 답변을 들었다. “부모의 동의를 받지 못했다”는 이유였다. 입양특례법은 새로운 삶을 꾸린 친부모가 입양아와의 만남을 원하지 않는 경우를 대비해, 친부모의 동의를 받아 정보를 주도록 규정하고 있다.
자신의 뿌리에 대해 뭐라도 알고 싶었던 애니킴씨는 지난 7월 직접 중앙입양원에 찾아가 “태어난 시간과 몸무게라도 알려 달라”고 요청했다. 그런데 중앙입양원 직원이 건넨 파일에는 실수로 친부모의 현주소가 적혀 있었다. 애니킴씨는 한참을 고민한 끝에 친부모 주소로 용기를 내어 찾아갔다. 그는 “엄마가 나를 만나기 싫어하면 어떨지 한참을 고민했지만 입양도 내 선택이 아니었는데 부모님을 찾는 것은 내 의지대로 하고 싶었다”고 회고했다.
거기서 극적 반전이 일어났다. 어머니는 “입양기관이 보낸 편지에 (애니의) 본명이 잘못 적혀 있어 확인을 부탁했지만 답변을 받지 못해 기다리고 있던 중이었다”는 뜻밖의 반응을 보였다. 이에 대해 중앙입양원 측은 “애니씨의 부모로부터 정확한 답변을 받지 못해 애니씨에게 답변을 주지 못했던 것”이라고 다소 다른 입장을 밝히고 있다.
우여곡절을 거쳤지만 애니킴씨 경우는 그래도 사정이 나은 편이다. 친부모 찾기에 나서는 해외 입양인은 늘고 있지만, 입양기관의 소극적 대응으로 친부모의 정보제공 의사표시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 사례가 많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26일 국회 보건복지위 소속 최동익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에 따르면 친부모를 찾기 위해 입양정보공개를 청구한 입양인은 2012년 258명에서 지난해 1,626명으로 급증했다. 그런데 2014년 이후 친부모가 입양정보 제공에 동의하지 않은 비율은 69%(1,009건)나 됐다. 정보제공 미동의 사유를 살펴봤더니, 친부모가 상봉을 원치 않아 정보 제공을 거부한 경우는 87건(9%)에 불과했다. 나머지 922건(91%)은 연락은 됐지만 회신이 없는 경우였다. 이에 대해 중앙입양원 측은 “배우자의 과거 입양 사실을 알고 친부모의 새 가정이 파탄 나는 등의 문제로 부모의 의사를 묻는 데 적극적으로 나서기 힘든 어려움이 있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입양기관이 우편에만 의존해 친부모의 의사를 묻기 때문에 회신율이 매우 떨어지고, 외국처럼 친부모의 거절 의사를 보다 명백히 전달해줄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진실과 화해를 위한 해외입양인 모임의 제인 정 트렌카 대표는 “입양기관은 부모의 동의를 얻기 위해 두세 차례 등기우편을 보내는 것이 전부”라며 “우편이 잘못 전달됐을 수도 있고, 부모가 투병 중이거나 사망했을 가능성도 있는데 입양기관은 ‘동의를 받지 못했다’며 일절 정보를 주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해외 입양인들을 돕고 있는 공익법무법인 공감의 소라미 변호사는 “미국이나 프랑스는 부모가 명시적으로 ‘반대’ 의사 표시를 하지 않으면 일정 기간 후 입양기록을 공개한다”며 “친부모가 만남을 거절하면 녹음이나 필체 등의 증거를 보여줘 입양인들이 마음의 정리를 할 수 있도록 하고, 응답이 없을 경우 입양 기록을 공개하도록 입양특례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회 보건복지위 소속 최동익ㆍ신경림 의원은 2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입양특례법 개정 필요성을 주제로 토론회를 열 예정이다.
정지용기자 cdragon25@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