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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끝뉴스] 사건처리 3.0? 공정위 '셀프족쇄'를 보는 눈

입력
2015.10.26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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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질 업체 감싸기냐, 피조사업체의 정당한 방어권 보장이냐.’

최근 공정거래위원회가 공정위 조사를 받는 업체(피조사업체)의 권한을 대폭 강화하기로 하는 내용의 ‘사건처리 3.0’대책을 내놓은 걸 두고 각계의 반응이 엇갈리고 있습니다. 대형 로펌 등은 “공정위의 절차적 정당성을 높여줄 혁신적 방안”이라고 높이 평가한 반면, 시민단체들은 “공정위가 피해자 권리 구제는 외면하고 ‘갑’의 눈물을 닦아주는 데만 열중한다”고 비판했습니다. 사건처리 3.0이 무엇인지, 이를 둘러싼 비판과 옹호의 논리는 각각 어떤 것인지 짚어 봤습니다.

사건처리 3.0이란

공정위가 지난 21일 발표한 사건처리 3.0대책의 주요 내용은 이렇습니다. 우선 공정위는 피조사업에 대한 현장 조사 때 공정위 조사관이 지참하는 ‘조사 공문’에 구체적인 혐의 내용과 조사대상을 특정해 적시하기로 했습니다. 적시되지 않은 혐의나 조사 대상에 없는 자회사, 공장 등은 함부로 조사하지 않겠다는 겁니다. 만약 공정위 직원이 조사 공문의 범위를 넘어서는 조사를 할 경우 피조사업체에 조사 거부를 행사할 권리를 보장하겠다는 내용도 포함됐습니다. 공정위 관계자는 “지금까지 조사 공문에 ‘공정거래법 OO조 위반 혐의’라고만 적시한 탓에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 조사가 이뤄질 여지가 있었는데, 앞으로는 조사 공문에 ‘일감 몰아주기 혐의’라는 식으로 혐의 내용을 특정해 해당 혐의에 대해서만 조사를 하겠다는 취지”라고 설명했습니다. 예컨대, 예전에는 일감 몰아주기 조사를 하러 나갔다가 담합이나 하도급법 위반 사건까지 조사할 수 있었는데 앞으로는 딱 일감 몰아주기만 조사하겠다는 의미입니다. 일감 몰아주기 혐의를 넘어선 조사가 이뤄질 경우 피조사업체가 조사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고요. 또 피조사업체들은 앞으로 현장조사를 포함한 조사 모든 과정에 변호인을 대동할 수 있게 됐습니다.

반면 공정위 조사관의 권한은 다소 축소됐습니다. 앞으로 현장조사에 나간 공정위 직원은 조사 시작과 종료시간, 업체로부터 제출 받은 자료 목록을 담은 확인서를 작성해 해당 업체의 확인 서명을 받아야 합니다. 또 현장 조사가 끝난 직후 공정위의 담당 과장이 피조사업체에 전화를 걸어 공정위 조사관이 위압적인 태도로 조사에 임했는지 등을 확인하는 ‘해피콜’제도도 본격 도입됩니다. 이 과정에서 위압적 조사를 한 것으로 드러난 공정위 조사관에게는 감봉 등 징계 조치를 내리겠다고 공정위는 밝혔습니다.

이번 대책에 피조사업체에 대한 방어권 보장 방안이 폭넓게 반영된 데는 재계 단체와 로펌 등 법조계의 입김이 적잖은 역할을 했습니다. 실제로 조사거부권 등은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지난해 규제개혁 관련 민원으로 제출한 사안입니다.

로펌은 “환영”

피조사업체의 방어권을 보장해주겠다는 대책인 만큼 재계는 이번 대책을 환영하는 분위기가 역력합니다. 피조사업체의 법률 대리인 역할을 하는 로펌들 역시 사건처리 3.0을 높이 평가하고 있습니다. 규모 면에서 국내에서 세 손가락 안에 꼽히는 법무법인 태평양은 지난 22일 고객들에게 뉴스레터를 보내 공정위 사건처리 3.0 대책을 자세히 설명하면서 “공정위 규제 대상이 되는 기업들의 입장에서도 매우 긍정적인 환경 변화로 판단된다”고 밝혔습니다. 이어 “그간 외부에서 제기되어 온 문제점들을 대부분 개선하는 내용들이 담긴 혁신적 방안”이라며 “공정거래사건의 1심 기능을 담당하는 준사법기관으로서의 위상을 확고히 하고자 하는 공정위의 강력한 의지 표명으로 판단된다”고 높이 평가했습니다. 다른 조사기관과 달리 1심 법원 기능까지 함께 담당하는 공정위가 피조사업체 방어권 보장 등을 통해 절차적 정당성을 높이겠다고 나선 점을 긍정적으로 본 겁니다.

시민단체는 “재벌ㆍ대기업 편들어주기 대책”

반면 시민단체의 반응은 싸늘합니다. 참여연대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민생경제위원회, 전국을살리기국민본부, 경제민주화네트워크는 공정위 발표 다음 날 논평을 내고 공정위 대책을 조목조목 비판하고 나섰습니다.

이들 단체는 논평에서 “공정위는 기업의 위법행위는 엄정하게 조사하되, 불필요한 기업 부담은 최소화 하기 위해서라며 사건처리 3.0을 내놨지만 발표한 내용 어디에서도 엄정한 조사를 위한 개선 방안은 찾을 수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이번 대책이 공정위 조사 권한을 위축시킬 것이란 우려도 담겼습니다. 가령 ‘해피콜’같은 대책은 대기업의 비리를 적발해야 할 공정위 조사관들을 위축시킬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피조사업체에 조사 거부권을 주겠다는 것에 대해서도 “현행 공정거래법이 피조사업체의 조사거부권을 명시하지 않은 것은 수사권과는 다른 공정위 조사 권한의 한계를 고려한 입법자의 선택으로 보아야 한다”면서 “이는 공정위 스스로 공정거래법의 규범력을 약화시킨다는 점뿐 아니라, 입법으로 규정해야 할 사항을 지침으로 규정했다는 입법권 침해 논란의 가능성이 있다”고 비판했습니다. 특히 참여연대 등은 사건처리 3.0을 ‘약자의 외침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고 재벌ㆍ대기업의 자그마한 불평에는 즉각 반응하는 실망스러운 대책’이라고 규정했습니다. 신고인(피해자)의 지위와 권리를 보장하는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올해 4월 국회에 제출 됐을 때는 강하게 반대하고 나섰던 공정위가, 재계 민원이 제기되자 재깍 반응하는 이율배반적 태도를 보였다는 겁니다.

이에 공정위 관계자는 “1심 법원 기능을 하는 공정위가 피조사업체 방어권 보장 등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면서 “1997년부터 공정위는 주기적으로 사건처리 절차를 개선해 왔고, 사건처리 3.0도 그렇게 나온 것”이라고 해명했습니다. 이 관계자는 또 “공정위는 신고인 권리를 보장하는 기관이라기보다는, 관련 법에 따라 피조사업체를 제재하는 기관이기 때문에 ‘왜 피해자 권리 보장은 소홀히 하면서 피조사 업체 방어권 보장만 열심히 하냐’고 지적하는 것은 맞지 않다. 피해자 권리는 민사소송 등을 통해 보장받을 수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공정위 사건처리 3.0을 두고 이처럼 우려와 기대가 동시에 나오고 있는데요. 결국 관건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자기 발에 족쇄를 채운 공정위가 앞으로 어떤 성과를 내놓느냐일 것 같습니다.

세종=이성택기자 highno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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