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근처 야산을 산책하고 있었다. 산 둘레를 한 바퀴 돌고는 산책로를 따라 하산할 무렵이었다. 정면에서 개가 한 마리 어슬렁거리며 나타났다. 몸집이 꽤 컸다. 진돗개 같았으나, 순종은 아닌 듯했다. 늠름해 보이는 풍채와 달리 어딘가 추레하고 그늘진 인상이었다. 낡은 목줄이 매어져 있는 걸 봐서 야생견은 아닌 듯했다. 순간, 움찔했다. 이편을 끈질기게 쳐다보고 있는 기세가 심상치 않았다. 숨소리가 거칠었고 눈빛이 몽롱해 보였다. 피해야겠다고 직감했지만 멀찍이 거리를 두고 돌아가기엔 길이 너무 좁았다. 양 측면으론 나무들이 우거진 비탈이었다. 어설프게 그쪽으로 튀었다간 놈을 자극해 더 위태로워질 것 같았다. 한동안 대치상태가 이어졌다. 놈은 지쳐 보이기도, 화나 보이기도, 슬퍼 보이기도 했다. 마치 뭔가 잔뜩 억누르고 있다 술에 취해 독이 오른 사람 같았다. 문득, 술만 취하면 악동으로 표변하는 한 시인이 떠올랐다. 소외와 고독과 미망의 굴레 속에서 스스로에게 불을 지르는 사람. 그렇게 세상에게 버려진 사람. 그러자 개가 불쌍하게 여겨졌다. 연민이 공포를 슬슬 지우고 있었다. 그게 전해진 걸까. 핏대 선 시선이 순순해지면서 녀석이 얌전히 내 옆을 스쳐 지나갔다. 이때다 싶어 걸음을 재게 놀려 산책로 끝까지 내려왔다. 주택가로 내려오는 산의 초입. 유기견을 조심하라는 경고 문구를 그제야 봤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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