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교회 세계 주교 대의원회의(주교 시노드)가 이혼ㆍ재혼한 신자들에게 ‘조건부 포용’을 하기로 결정했다. 외신들은 지난 24일 열린 시노드 총회에서 가톨릭 교회가 이혼ㆍ재혼한 신도도 각 사례별로 영성체 참여를 할 수 있는 길을 열어놓았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또 다른 이슈였던 동성 결혼에 대해서는 인정하지 않는 기존의 원칙을 유지했다.
이번 시노드는 기존 가톨릭 교회가 급변한 사회의 모습을 포용하지 못해 신도수가 줄어들고 응집력을 잃고 있다는 문제의식 아래 교회 개혁을 추진하기 위해 열린 것이다. 지난 3주간 바티칸에서는 이혼ㆍ재혼 인정, 동성 결혼 인정 등을 주장하는 진보파 사제들과 전통적인 교회의 가치관을 옹호하는 보수파 사제들의 격렬한 논쟁이 벌어졌다.
결국 투표를 통해 채택된 최종 보고서에서 이혼ㆍ재혼 신자의 영성체 참여에 대해 사제들이 해당 신도의 분별력, 겸손, 교회에 대한 사랑 등의 증명을 전제로 각 사례에 따라 결정할 수 있도록 했다. 결혼을 영구적인 것으로 보는 가톨릭 교회의 전통에서 원칙적으로 이혼ㆍ재혼한 신자는 간통죄를 저지른 것으로 간주돼 영성체 의식에 참여할 수 없다. 이탈리아 뉴스통신 안사는 이 항목에 대한 투표에서 통과에 필요한 전체의 3분의2인 177표보다 단 1표가 많은 178표로 간신히 확정됐다고 보도했다. 그만큼 반대의견이 강력했다는 것이다.
또 다른 이슈였던 동거 커플에 대해서는 최종 보고서에 많은 커플들이 다양한 이유에서 결혼 없이 함께 살고 있다는 점을 인정하며 이들을 “결혼과 가족의 충만으로” 이끈다는 목적으로 “건설적인 방법으로” 대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그러나 최종 보고서는 동성 결혼이 이성 사이의 결혼과 비교할 수 있는 근거가 전혀 없다고 강조하면서 기존 원칙을 고수했다. 다만 개인의 성적취향과 관계없이 모든 사람은 존중 받아야 하며 이로 인한 차별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재확인하는데 그쳤다.
결국 이번 시노드 최종보고서에서 기존 교리를 고수하려는 보수파의 저항이 강력해 개혁을 추진하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한발 물러섰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이혼ㆍ재혼 신자들에 대해 진보파는 첫 번째 결혼의 실패를 뉘우치는 일종의 ‘참회의식’을 거친 신자들에게 영성체 참여를 허용하자고 주장했으나 보수파의 반대로 보고서에 반영되지 않았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독일의 발터 카스퍼 추기경 등이 제시한 이 방안을 지지했다. 영국 가디언은 “결코 진보의 승리라고 할 수 없는 결과”라며 “교황이 가톨릭 보수 세력과 힘겨운 전투를 치렀으나 패배했다”고 보도했다.
프란치스코 교황도 24일 연설에서 이번 시노드를 통해 “교회의 가르침과 선한 의도 뒤에 숨어 어려운 문제와 상처받은 가족들을 우월의식에 갇힌 채 피상적으로 판단하려는 닫힌 마음들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프란치스코 교황이 오랫동안 교회의 금기로 간주됐던 문제들을 공론화 하는데 성공함으로써 향후 교회 개혁에 더 박차를 가할 수 있게 됐다는 분석도 있다. 시노드는 자문기구로, 교회의 원칙을 변경할 수는 없으며 교황이 최종 결정권을 갖는다. 제라드 오코넬 미국 예수회 잡지의 바티칸 특파원은 뉴욕타임스에 “교황이 내세운 ‘관용’라는 기본적인 사명은 폭넓은 지지를 받았다”라며 “최종보고서는 교황에게 앞으로 나갈 자유로운 손을 줬다”고 말했다.
박소영기자 sosyou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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