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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장 내몰린 아이들 렌즈에 담아, 아동노동 제한 법 이끌어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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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장 내몰린 아이들 렌즈에 담아, 아동노동 제한 법 이끌어내

입력
2015.10.25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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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회학자에서 사진가로

사회학 연구 수단으로 사진 촬영

철강 노동자의 삶과 얼굴 찍으며

사회현실 개조하는 실천가로 거듭나

▲ 노동자 계급 향한 애정

소년 시절 가구 공장서 일한 경험

용기·기술·상상력 가진 노동자 찬양

궁핍한 환경에서도 존엄성 보여줘

▲ 사회적 진실 담아 여론 형성

고층빌딩 건설 노동자 찍을 땐

바구니 타고 같은 높이에서 작업

피사체 직접 만나 실체 기록 노력

20세기 초 미국에 젊은 사회학자가 있었다. 시카고대와 컬럼비아대에서 사회학을 배운 루이스 하인(Lewis Wickes Hineㆍ1874~1940)은 20세기 초 미국 ‘진보주의 운동’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던 뉴욕 ‘윤리문화학교’의 선생이 되었다. 이 학교는 듀이의 “하면서 배운다(실천에 의한 학습)”는 실용주의적 교육관을 실행하였다. 루이스 하인은 학생들을 데리고 뉴욕 엘리스섬으로 가서 이민자들의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그는 “단지 교실에서 세상으로 내 교육을 위한 노력의 방향만 바꾸었을 뿐이다”라고 말했다.

앨리스 섬은 미국 입국하는 관문으로, 이민자들이 뉴욕으로 들어가거나 아니면 본국으로 송환되는 결정적 운명의 장소였다. 검색 관료에게 배에서 내린 이민자들은 검사해야 할 대상에 불과했다. 이민자들의 인권이나 개체성은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루이스 하인은 엘리스섬에 발을 내디디는 이민자들을 당당한 주체로 바라보았다.

루이스 하인은 전문 사진가가 아니었다. 그의 사진찍기는 현장의 데이터를 모으고 그가 관찰한 것을 토대로 결론을 끌어내려는 사회학적 조사방법에서 출발했다. 그러나 그의 사진찍기는 데이터를 모으는 수준에 머물지 않았다. 그는 사진을 이용한 ‘사회적 증언’을 통해 사회현실을 개조하는 실천가로 거듭 나게 된다.

궁핍한 속에서 빛나는 개체성 포착

하인은 1907년 러셀 세이지 재단의 스태프로 참여한 ‘피츠버그 서베이’를 통해 피츠버그 철강 노동자들의 삶과 얼굴을 찍는다. 이것은 사회사진가로서 그의 생을 시작하는 전기가 된다. 그는 사회활동과 사진찍기를 결합한 새로운 유형의 실천을 전개한다. 그는 관찰노트와 사진을 결합하면서 사회조직 안에 처한 개인의 모습을 드러내면서 사회적 환부를 수술하는 실천현장의 활동가로 자라난다. 그는 ‘나는 새로운 작업을 하였다. 이를 무엇이라 부를까’라고 생각하다가 이를 “사진학습(photo-study)”이라 불렀다. 그는 이런 활동을 통해 지적인 작업과 감성적인 체험을 결합하였다.

루이스 하인은 1908년 국립아동위원회(NCLC)의 사진가로 일하면서 교직을 떠난다. 당시 미국 독점자본주의는 수많은 사회적 불의와 모순을 낳고 있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사회운동이 기독교적 자선주의에서 노동운동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부분에서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던 시기다. 미국의 자본주의가 독점 단계에 이르던 1890~1920년에는 정치적 개혁과 사회적 행동주의가 활성화되던 이른바 ‘진보의 시대’이기도 했다. 가난을 자선을 통해 개선하자는 기독교 복음주의자들은 가난한 노동자들의 자존감과 자신감을 고려하지 않는다. 한편 당시의 사진은 가난한 자의 개인적 차원을 제거한 채 그 대상에서 빛과 그림자로 된 형태만을 빼내었다.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 보는 시각이 여전히 대세였다.

하인은 어른들의 노동현장에 투입된 아동들의 모습을 찍었다. 그는 아동노동이 아이들을 해칠 뿐만 아니라 사회를 해치고, 그것은 결국 다음 세대의 노동자를 해치고, 종국에는 노동의 위엄을 해칠 것이라 보았다. 그는 아동노동을 악으로 보았다. 그는 때로는 소방감독관이나 성경 판매원, 기계를 전문적으로 찍는 사진사로 위장해 노동하는 어린 아이들의 모습을 사진으로 남겼다. 그가 찍은 공장과 농장, 거리의 아이들 사진에서 우리는 현장의 슬픔과 개체의 활기를 동시에 본다. 그의 사진 속에서라면 궁핍한 환경에 처한 인간일지라도 그의 개체성마저 궁핍하지는 않다. 어떻게 이게 가능할까? 궁핍한 환경은 인간의 존엄성과 개체성과 독립성을 훼손한다. 그러나 환경이 인간을 만들지만 그를 완전히 굴복시키지는 못한다. 그의 사진에는 개체의 자유와 독립과 존엄에 대한 철학이 묻어있다. 그의 이러한 노동은 결국 아동노동을 금지하는 법안의 채택으로 이어졌다.

노동 찬양하고 노동계급을 존경

19세기 미국 뉴욕의 빈민을 찍은 제이콥 리스(Jacob Riis)는 사진 찍히는 사람보다 그 사람이 처한 장소에 더 집중한다. 그는 사진 속의 대상과 대화하지 않는다. 그러나 루이스 하인은 사진 속의 대상과 눈을 맞추고 이야기를 건다. 루이스 하인은 인간을 향해 자신의 렌즈가 이야기하기를 바랐고, 그가 찍은 사진을 매개로 사회의 여론을 형성하려고 노력했다. 이러한 그의 사회적 실천은 해방을 향해 열려 있었다. 그는 사진의 아름다움이 사회학적 분석에 종속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그의 사진 자체가 진실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에 필름을 조작해 만들어낸 아름다움보다 빛나고 아름답다.

그는 스티글리치의 주관주의적 예술사진이 실체를 빛과 형체로 환원하며 지나치게 해석적이라고 비판했다. 하인은 사진이 보는 사람에게 많이 열려있으면 안 된다고 보았다. 사진은 관찰 대상에 대한 지식을 지향해야 한다. 그를 위해 자신의 관점을 분명히 하고, 그것이 보여주는 것을 보는 사람들이 나중에 검증할 수 있도록 사진을 찍는 자세가 중요하다. 그가 찍은 사진을 보는 사람이 그가 의도한 의미에 동의한다면 그의 사진은 ‘진실’에 도달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관점이 제임스의 실용주의적 지식관에 근거한 하인의 사진관이다. 그는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내러티브나 과도한 상징으로 만들어지는 주관적인 해석에 기대지 않았다.

루이스 하인은 사진 저작물 ‘일하는 사람들(Men at Work)’에서 용기와 기술과 상상력을 가진 인간의 노동을 찬양하였다. 그는 인간 노동 없이 도시와 기계시대는 존재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하인은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 공사장 300m 위에서 일하는 건설노동자들을 그들과 같은 위치에서 바구니를 타고 사진으로 남겼다. 그는 세상을 만드는 노동자의 힘을 찬양했고 노동자계급에 대한 존경심을 잃지 않았다. 그러한 그 자신은 소년 시절 가구 공장에서 노동한 경험이 있었다. 그는 단지 세상을 관찰하는 사회학이나 세상을 관망하는 예술사진을 위해 살지 않았다. 가난한 사람들을 흥미롭게 관찰하면서 그들의 매력 포인트를 예술의 소재로 삼는 예술 사진가 스트글리치와는 달랐다.

‘사회적 진실’ 담으려 문화노동자 고집

그에게 사진은 기술이자 교육의 도구였다. 지식은 관찰을 통해 얻어지고 다른 사람과 공유됨으로써 완성된다. 그것이 윌리엄 제임스의 실용주의적인 ‘근본적 경험주의’ 지식관이었다. 하인은 사진 이미지의 핵심이 관찰된 것에 대한 사진가의 감정적 반응에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듀이의 ‘경험적 학습’과 민주적 실용주의를 자신의 사진철학으로 흡수하였다. 그에게 이미지의 핵심은 ‘찍히는 주체’였다. 그는 사진을 찍는 순간에 사진가와 대상 사이에 맺어지는 일회적 관계를 중요하게 여겼다. 그의 사진은 찍는 사람과 찍히는 사람간의 일회적 순간에 만들어지는 살아있는 체험을 보여준다.

사진으로 사회적 진실에 도달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사회적 진실은 사물처럼 객관적 실체로 존재하지 않는다. 대상을 있는 그대로 포착하는 사진의 기술적 특성도 ‘객관성’을 자동으로 확보하지 못한다. 사회적 진실은 찍는 사람과 찍히는 사람, 그리고 그 사진을 보는 사람간의 순환적인 이해와 합의 과정을 통해 구성된다.

빛과 그림자가 만들어내는 추상 형태를 통해 사람을 기록하는 스티글리치의 ‘회화주의’와 달리 루이스 하인은 사람을 만나고 체험하면서 그들을 찍었다. 사람들이 그를 사회 다큐멘터리 사진의 창시자로 부르지만 그는 사진이 갖는 예술적 차원과 기록적 차원을 하나로 결합했다. 그는 사회적 진실의 순간을 잡아내려 스스로 문화노동자가 되었고 그가 찍은 사람들처럼 가난 속에서 살다 죽었다. 그 스스로 일하는 자로 살면서 산업노동자의 삶을 찍었다. 그는 이민자에게서 불안과 비참함 대신 당당함과 미래를 보았고, 산업노동자에게서 위엄 있는 인간의 모습을 찾아냈다.

백욱인 서울과학기술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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