림태주ㆍ행성B 대표
출판사를 차리기 전까지 나는 신생 출판사들의 첫 책은 왜 하나같이 촌스러운 디자인일까 의문을 품었다. 큰 출판사에서 일을 했건 아니건, 출판 경험이 많건 적건 간에 출판사를 차린 선후배들이 보내온 첫 책을 받으면 미안스럽게도 영락없이 이 생각이 들었다. 마치 삼류 야바위 출판사에서 휴게소용으로 찍어내는 책처럼 볼품도 없고 디자인도 촌티를 벗지 못하는 까닭은 대체 뭘까? 첫 책이라는 무한정한 애정 때문에 욕심이 지나칠 대로 지나쳐서, 혹은 첫 선을 보이는 책이니만큼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에 평정심을 잃기 때문이 아닐까 혼자 추리해보곤 하였던 것이다.
나는 절대로 첫 책을 촌스럽게 만들지 않을 거라고 다짐을 하면서 창업을 했다. 출판 창업자들이 첫 책을 국내 저자의 원고로 내는 건 큰 행운에 속한다. 대부분은 외서를 번역해서 낼 여건에 놓이게 된다. 국내 저자와 출판 계약을 해도 최소 1, 2년은 집필 시간을 기다려야 하고, 괜찮은 저자들이 신생 출판사에 선뜻 자신의 옥고를 내주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 출판사도 외서를 첫 책으로 내게 되었다.
행성B는 인문교양서를 주로 내는 출판사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지만 장르별로 여섯 개의 서브 브랜드를 가지고 시작했다. 실용서 브랜드인 ‘행성B 웨이브’에서 선택한 첫 책의 원제는 ‘바운스 Bounce’였다. 나는 말콤 그래드웰의 ‘아웃라이어’를 매우 흥미롭고 재미있게 읽었는데, ‘아웃라이어’가 다양하고 광범위한 사례를 통해 ‘1만 시간의 법칙’을 증명해낸 책이라면, ‘바운스’는 스포츠 스타들이 탁월한 경지에 오르게 된 과정을 과학적으로 조명해 성공의 근원을 파헤친 책이었다. 타고난 환경이나 재능보다 더 중요한 것은 꾸준하고 체계적인 연습과 훈련이라는 오래된 명제를 스포츠 과학적으로 입증해낸 책이라 청년들과 청소년들에게 매우 유익할 것 같았다.
문제는 제목이었다. ‘바운스’가 ‘튀다’ ‘튀어오르다’는 의미라 통통 뛰는 탄력도 느껴지고 출판사가 저절로 잘 될 것 같은 희망적인 단어였지만, 직관적으로 와 닿지가 않아서 매우 고민스러웠다. 결국 ‘베스트 플레이어’로 제목을 정하고 몇 번씩이나 퇴짜를 놓으면서 표지 디자인을 의뢰해 애정이 듬뿍 들어간 첫 책을 세상에 선보였다.
‘베스트 플레이어’는 2011년 간행물윤리위원회의 청소년 권장도서로 추천되고, 국가대표 축구선수들이 서로에게 선물한 책으로, 또 이에리사 태능선수촌 촌장이 선수들에게 선물한 책으로 홍보되면서 나름대로 기대했던 만큼의 성과를 거뒀다. 그러나 이 책을 선물 받은 출판계 선후배들은 한결같이 똑같은 반응을 보였다. “그래, 너도 역시 별 수 없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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