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치마 입고 휘청이는 사다리 올라
휘영청 늘어선 감나무 가지 손 뻗다
농익어 떨어진 감 위로 철퍼덕
'자식' 택배 보내며 맛없을까 걱정
"내가 먹어도 맛있어" 아내의 위안
걱정없이는 살 수 없는 세상인가
유모차 할아버지는 "천천히 하시게"
장씨 아저씨는 "언능 일 해!"
결국 천천히 미련하게 하는 가을일
교과서, 자위대, 남침, 유관순... 포털과 SNS를 가득 채운 내용을 보다가 늦잠 끝에 도착한 농장은 전쟁터였다. 분명 어디선가 봤던 그 장면이다. 1945년 히로시마거나 한국 전쟁 때 평양 모습일 거다. 본체는 어디 가고 기둥과 휘어진 철근만 남아있던 시가지처럼, 풍성하던 콩밭엔 가녀린 콩대와 너덜너덜한 콩깍지만 남았다. 이럴 수는 없었다. 어떻게 하루 만에 이렇게 말끔하고도 처참한 꼴이 된단 말인가. 고라니가 왔다 갔을까. 아니면 까치들이 떼로 몰려와 습격을 한 것일까.
흔적이라도 찾아보려고 콩밭을 두어 바퀴 돌았다. 이미 이렇게 된 거, 뭐 어쩌겠나 생각하며 돌아서려는데 갑자기 콩밭이 진동을 했다. “푸다다닥, 꺼겅껑껑!” 놀라서 풀린 다리에 힘주고 돌아보니 독수리만한 꿩 4마리가 사방으로 흩어졌다. 군대에서도 “야 이 새끼야” 한 번 안하고 지냈는데 농사지으면서 쌍시옷이 늘었다. “이런 시방새들아!”
다른 새들 같았으면 밭 주인이 나타나자마자 날아갔을 텐데 꿩들은 달랐다. 겁도 많고 머리가 나빠 계속 깊은 곳으로 숨는다. 더 가까이 오면 대가리만 풀섶에 처박고 버티다가, 도저히 안되겠다 싶으면 그제서야 날아서 도망간다. 그래서 매번 깜짝 놀라게 한다. 유난히 더 미운 이유다. 커다란 새 덫을 만들어 볼까 생각도 해봤다. 사로잡은 다음에 싸대기 몇 대 때리고 풀어주면 지들끼리 소문 내서 발길을 끊지 않을까. 아니면 콩밭 전체를 그물로 덮어버릴까 생각도 해봤지만 콩 농사론 그물 값 대기도 벅찰 거다. 하루 종일 콩밭에 앉아 있을 수만도 없고, 새총 만들어 사냥놀이 할 시간도 없었다. 그저 ‘꿩님, 조금만 남겨주십사 부탁 드립니다’ 눈 한번 감고 내려왔다.
그럭저럭 감에 맺혔던 이슬이 말랐다. 마음이 급했다. 감 따고 고구마 정리하고 된장 담아서 박스 싸려면 숨도 깊이 쉴 새가 없다. 며칠 전 “물건 팝니다”하고 알렸는데 주문이 꽤 들어왔다. 안 팔리면 어쩌나 했는데 얼추 생산량이랑 주문량이 맞아 떨어졌다. 고구마는 창고에서 후숙 시켰고, 간장 된장은 담으면 되고, 단감이랑 대봉만 따서 같이 넣으면 됐다. 한차례 택배를 보냈지만 한 열 박스 보내자고 생각하니 서둘러야 했다.
큰 주머니가 달린 앞치마를 차고 나섰다. 일단 손에 닿는 감부터 따냈다. 휘영청 늘어졌던 가지가 조금씩 곧추 선다. 얼추 따내고 보니 조금 더 익었으면 하는 것들만 남았다. 이제는 키를 넘는 놈들을 따야 한다. 높은데 있는 것부터 따기로 했다. 귓속에선 라디오 DJ가 청취자의 사연을 읽는다. “저는 가을을 심하게 타는 편이라 요즘 너무 힘들어요. 얼마나 힘들면...” 나도 사연을 보내서 알려주고 싶다. 가을 타는 게 힘들면 사다리 타면 된다고. 한 칸에 약 30센티미터. 7단 사다리 꼭대기에 서면 시선은 3미터를 훌쩍 넘고 머리는 텅 비게 된다.
앞치마 주머니는 감 몇 개 안 넣었는데 벌써 불룩하다. 감 땜에 그런 건지 내 배 땜에 그런 건지 모르겠다. 사다리에서 내려와 꽉 찬 주머니를 비우고 다시 올라갔다. 밑에서 잘 조준하고 올라갔는데 올라가보면 감은 손끝보다 멀어져 있다. 도로 내려와 다시 조준하고 다시 올라오기 귀찮아 몸을 뒤틀고 짧은 팔을 쭉 뻗었다. 한 손으로 감을 잡고 가위를 잡은 다른 손으로 가지를 잘라야 하니 넓은 어깨와 짧은 팔의 조합은 그리 좋지 않았다. 결국 감은 따냈지만 그 순간 옆구리에 쥐가 났다. 반대편 허리 살들의 저항이 심했다는 증거다. 몸을 반대편으로 틀고 비비 꼬며 겨우 달랬다.
하나만 더 따보자 하고 쳐다보는데 가지가 움직였다. 바람 탓이 아니었다. 가지가 점점 멀어졌다. 하늘도 멀어졌다. 사다리가 쓰러지고 있었다. 가까워지는 땅을 언뜻 보니 나뭇가지는 없었다. 맘 비우고 푹신한 땅에 널브러졌다. 적당히 푹신한 흙과 풀이 그나마 안전하게 살덩어리를 받아냈다. 하나도 안 아프다면 거짓말이지만 맨땅에 비교하면 매트리스다. 일단 내 꼴을 본 사람이 있는지 살펴보고 일어나는데 옆구리가 시원하다. 농익어 미리 떨어져 있던 감이 나한테 깔린 거다. 터지고 문드러져 옷에서 뚝뚝 떨어졌다. 그 느낌 참 그렇다. 똥이 아니고 감이니 다행이다 생각했지만, 한동안 마르지 않았고 내내 유쾌하지 못했다.
벌써 오후 2시. 나머지 물품 포장해서 택배시간 맞추려면 여유가 없었다. 숨 몰아 쉬며 감을 차에 싣는데 유모차 할아버지가 지나가다가 먼저 인사하셨다. 모든 운송을 유모차 한 대로 해결하시는 분이다. “감 땄나 보네이. 서울로 부치는가?” “예 어르신. 마음만 급하네요.” 할아버지는 특유의 비 대칭 미소를 지으시며 한 말씀 하셨다. “가을 곡식은 재촉하는 거 아니라네. 천천히 허시게.” 가을에는 서두르지 말고 적기에 수확하는 게 좋다는 말씀인데 이상하게 그 말씀을 들으니 한숨이 나오면서 마음이 편해졌다. ‘그래, 억지로 어떻게 일하겠어. 그냥 하는 대로 하다가 안되면 어쩔 수 없지 뭐.’
그 때 장씨아저씨가 지나가셨다. 그냥 눈인사만 하고 가려고 하시기에 “차 한잔 하고 가시죠” 했다. 아저씨가 나무라셨다. “올려 보낼 거 많다믄서 언능 일 해!. 가을일은 미련한 놈이 잘하는 벱이여.” 그래 맞다. 가을 일은 이것저것 잴 것 없이 닥치는 대로 해 나가야 겨우 해 낼 수 있다. 그러면 어쩌라는 건가. 가을엔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하되 쉬지 말고 미련하게 일해야 된다는 건가. 마음은 다시 급해졌다.
집에 와서 창고로 들어가 우선 고구마를 양파 망에 넣었다. 5kg씩 쌌는데 양이 예상보다 한참 모자랐다. 수확할 때 250kg 정도 돼서 여유 있게 잡아도 40개는 되겠다 생각하고 주문을 받았다. 헌데 전날 20개 보낸걸 합쳐서 35개밖에 안됐고 다섯 개나 모자랐다. 후숙 과정을 거치면서 무게가 확 줄어버린 거다. 그렇게 손해를 보게 되니 누구는 캐자마자 보내는 게 낫다고 했지만 “일주일 후숙해서 드세요” 메모를 넣어도 받는 사람은 그날로 먹어보고 맛 없다고 하는 탓에 그럴 수는 없었다. 별 수 없이 나중에 주문한 사람들에게 문자를 날리고 환불을 해야 했다. 속이 쓰렸다. 돈 때문이 아니라 바쁜 사람들 번거롭게 해 미안하고 좋은 사람들에게 맛 보여주지 못해 아쉬웠다.
박스에 고구마를 넣고, 된장 단지 넣고, 간장 병에 뽁뽁이 말아 넣고 있는데 서울 아버지한테 전화가 왔다. “별일 없냐?” “예. 지금 포장하고 있어요. 편찮으신데 없으세요?” “어. 농사꾼이라 일요일도 읍쟈?” 그러고 보니 일요일이었다. 올해는 가급적 주중에 일을 몰아서 하고 일요일은 좀 쉬자 했는데 가을엔 별 무소용이었다. 택배도 요맘때 일요일은 발송업무를 하다 보니 날짜와 요일을 헷갈리게 마련이다. 솔직히 요즘 같으면 하루가 서른 시간이었으면 좋겠고, 일주일이 아흐레였으면 좋겠다. 해 떨어지는 게 무섭고, 다가오는 다음주가 무겁다. 누군가 여행을 얘기하며 ‘익숙해질 때쯤 떠나야 하는 게 인생과 비슷하다’고 했지만, 난 떠나기 전에 익숙해질 수나 있을는지 모르겠다.
겨우 택배를 마치고 돌아왔다. 학교에서 글쓰기 방과후 수업을 진행하는 아내도 아이들이 쓴 글로 문집을 만드느라 정신이 없었다. 나는 움직이느라 힘들고 아내는 꼼짝없이 앉아 있느라 힘들었다. 대충 반찬을 냉장고에서 꺼내고, 급하게 달걀 부쳐서 먹는데 메시지가 왔다. “고구마 진짜 맛있어요. 5킬로만 더 보내주실래요?” 죄송하다고, 다 팔렸다고 답장 적는데 또 메시지가 왔다. “감이 너무 맛있어서 받자마자 4개나 먹었어요. 부산 언니한테 보내주고 싶은데...” 어제 보낸 택배가 이제들 도착했나 보다. “감은 따 보고 연락 드릴게요. 혹시 부족할지 몰라서요.” 답장하고 마저 답장 하는데 아내가 묻는다. “뭔데? 밥부터 먹고 하면 안돼?” 난 기분 좋아서 대답했다. “더 주문하는 거라 답장부터 해주려고. 물건 받은 사람들이 맛있다고 해주네.” 아내는 정색을 했다. “맛있다고 해주는 게 아니라 내가 먹어도 우리 꺼 맛있어. 잘 모르겠어?” “글쎄 나는 잘...”
사실 나는 자신이 없다. 내가 지은 농산물이 남들 것보다 더 맛있는지 잘 모르겠다. 며칠 전에도 아내와 고구마를 쪄 먹으면서 아내는 “진짜 달다. 맛있어”를 연발했지만, 난 맛있는 줄 몰랐다. 땅에다 나쁜 거 안 뿌리고, 작물에다 해로운 것 안쳤다고 더 맛있다는 이유는 안되기 때문이다. 크게 자라거나 모양 좋게 하는 약을 주지 않아서 그냥 본래 성격에 가까울 수 있지만, 맛 이란게 이성을 보는 눈과 같아서 제 입맛이고 제 각각이라 장담할 수 없는 것 아닌가. 대처로 내보낸 자식이 올바르게 컸어도 사람들에게 어떤 평가를 받을지 걱정되는 부모 심정이랑 비슷할 지 모르겠다.
밥상 치우고 나서 내일 작업할 계획과 택배작전을 세우고, 계산서를 뽑아봤다. 고구마만 계산해보니 모종 값, 기계사용, 포장 박스비용, 택배비 등을 제하고 30만원 정도 남았다. 고구마에 들어간 노동시간으로 나누니 시간당 6천원이 조금 넘는다. 금년 최저임금 기준이 5,580원이니 그보다는 나은 셈이다. 애써 농사 짓느니 편의점에서 알바하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장씨아저씨가 자주 하시는 말씀으로 “돈 생각하고 농사 지으면 못쓴다” 고 하시지만 아직 그만큼 생각이 자유롭지 못한가 보다.
택배는 제대로 갔나, 덜 보낸 건 없나 점검하는데 주문자 이름으로 개봉한 감 박스 사진과 함께 메시지가 떴다. ‘또 맛있다고? 그냥 드시지 뭘’ 생각하고 확인하니 “이거 단감이 맞죠? 꼭 대봉처럼 생겨서요” 주문을 입력한 엑셀파일을 열어보니 주문은 단감이 확실한데 대봉을 보낸 걸로 돼 있었다. 급히 답장을 하고 단감을 다시 보내겠다고 했지만 주문자는 홍시도 좋아하니 그냥 대봉으로 먹겠다고 고집을 부려 결국 단감 5킬로그램만 다시 보내는 것으로 합의보고 마무리 했다.
맛이나 품질에 대한 반응만 걱정했지, 정작 내가 야무지지 못해 생기는 사고는 어쩌질 못했다. 아내가 알려준 티베트 속담이 생각났다. “걱정을 해서 걱정이 없어지면 걱정이 없겠네.” 좋은 말인지 알겠다. 하지만 안 되는걸 어쩌랴. 걱정도 팔자라고 하겠지만, 걱정이 많다고 걱정하느니 그냥 걱정하면서 사는 게 낫겠다 싶다. 아무래도 이래저래 걱정 없이 살 수 없는 세상인 듯도 하고.
前 한국일보 기자 cameragag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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