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운트 상병 잠든 부산 유엔공원
백발의 여동생 찾아와 감회 젖어
“집 나간 오빠가 어느 날 어머니 꿈에 나타났어요. 오빠가 어디론가 떨어지는 꿈이었는데 그날이 전사한 날이었어요.”
17세 때 6ㆍ25 한국전쟁에 참가했다가 전사한 호주 출신 고(故) 제임스 패트릭 도운트 상병의 유족이 23일 제70주년 유엔(UN)의 날 기념식이 열린 부산 남구 유엔기념공원을 찾았다. 국가보훈처는 지난 19일부터 25일까지 7일간 일정으로 도운트 상병을 포함해 영국, 캐나다, 터키 등 54개국 유엔군 전몰장병 유족 30여명을 한국으로 초청했다.
1934년 호주 뉴사우스 웨일즈에서 태어나 건축가 아버지 밑에서 자란 도운트는 15살에 집을 떠나 일을 시작했고, 16살에 본인의 나이를 21세로 속여 군에 자원했다. 가족들에게 알리지도 않고 이듬해 6ㆍ25 전쟁에 참전한 도운트는 한국에 도착한 지 13일째 되던 날 경기도 연천 전투에서 숨졌다. 17세의 꽃다운 나이로, 6ㆍ25참전 유엔군 가운데 최연소였다. 유엔군 전몰장병이 안장된 부산 유엔기념공원에는 그를 기린 110m 길이의 ‘도운트 수로(水路)’가 있다.
이날 오빠의 묘지를 찾은 도운트 상병의 여동생 에일린 필리스 라이언(사진)씨는 1999년 개인 자격으로 유엔기념공원에 온 적이 있다.
그는 “이번 방문을 계기로 오빠가 유엔군 최연소 전사자라는 것과 유엔기념공원 내에 오빠의 이름을 딴 아름다운 수로가 있다는 것도 처음 알게 됐다”면서 “한국 정부의 초청을 받고 이 자리에 온 것을 큰 영광으로 생각하며, 오빠를 잊지 않기 위해 수로까지 만들어 준 것에 대해 정말 감사하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4남매를 두고 참전했다 두 달 만에 전사한 영국군 제임스 토머스 헤론씨의 딸 캐슬린 패트리샤 바시크씨도 이날 아버지 묘역을 참배했다. 참전 당시 겨우 5살이었던 바시크씨는 “아버지의 전사로 가정형편이 어려워진 가족들이 모두 뿔뿔이 흩어져 살아야 했지만 원망하지 않는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헤론씨의 부인은 2001년 1월 숨졌으며 ‘죽으면 남편 곁에 묻어 달라’는 유언에 따라 그 해 10월 유엔기념공원에 합장됐다.
이번에 방한한 유족들은 이날 오전 유엔기념공원에서 열린 ‘제70회 유엔의날’ 기념식에 참석한 뒤 오후 부산 앞바다에서 열린 해군 관함식을 참관했다. 24일엔 삼성이노베이션을 방문해 한국의 최첨단 정보기술(IT)을 체험하고 판문점을 찾은 뒤 25일 출국한다.
보훈청 관계자는 “유엔군의 죽음이 결코 헛되지 않았고 그 희생이 있었기에 오늘날 대한민국이 있을 수 있었다는 것을 보여드리고자 매년 전사자 유족을 초청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부산=전혜원기자 iamjh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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