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가사채무 연대책임 인정 안해
내연녀에게 빌린 돈을 부부 공동생활을 위해 사용해도 부인에겐 배상책임이 없다는 법원 판결이 처음으로 나왔다.
서울중앙지법 민사27단독 이현복 판사는 A씨가 내연남 B씨와 부인 C씨를 상대로 낸 대여금청구소송에서 “B씨가 대여금 4,000만원 전부를 반환해야 하며, C씨에게는 책임이 없다”고 판결했다고 23일 밝혔다.
유부녀인 A씨는 불륜관계의 내연남 B씨의 요청으로 4,000만원을 빌려줬다. 유부남인 B씨는 이 돈을 부인 C씨와 함께 살 집의 계약금과 보증금으로 사용했다. 하지만 A씨의 남편이 아내의 불륜을 알게 돼 B씨에게 손해배상 소송을 내면서 C씨 역시 남편의 불륜 사실을 알게 됐다. 이후 C씨가 A씨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하자, A씨는 B씨와 C씨 부부를 상대로 “빌려간 돈을 갚으라”며 소송을 냈다.
재판부는 “B씨가 부인 C씨를 대리해 A씨에게 돈을 빌린 것이라고 인정할 증거가 없다”며 일상가사대리에 의한 대여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이어 B씨가 빌린 돈이 부부가 공동으로 생활하는 주택 보증금에 쓰여 일상가사채무에 해당한다 해도 부인에게 책임을 지울 수 없다고 판시했다. 우리 민법은 부부평등의 원칙에 따라 부부는 서로 일상적인 가사(家事)에 대해 대리권과 그에 따른 연대책임을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일상가사채무의 연대책임’은 채권자의 신뢰를 보호하고 거래의 안전을 보장하려는 것이지 A씨의 주장처럼 부부에게 무조건적인 책임을 부과하려는 게 아니라는 게 재판부의 설명이다. 재판부는 “C씨는 A씨와 남편 B씨의 내연관계를 모른 상태에서 대여금 중 일부가 포함된 돈을 주택 임차보증금으로 사용했다”며 “A씨는 사회통념상 내연남에게 돈을 빌려준 상황에서 C씨가 일상가사채무를 공동으로 갚을 것을 기대하거나 신뢰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김관진기자 spiri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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