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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의 길 위의 이야기] 낡은 것의 미래

입력
2015.10.22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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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윳돈만 생기면 CD를 사 모으곤 했었다. 불과 5년 전만 해도 그랬다. MP3 파일이나 인터넷 서비스로 음악을 듣는 건 왠지 찝찝했다. 음질도 마음에 안 들었다. 소리도 소리지만, 케이스를 열고 재킷 디자인을 음미하며 속지를 뒤적이는 재미 또한 빼놓을 수 없다. 음원 파일은 오리지널이 아니라 카피 밴드가 그럴싸하게 모사한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그러다가 편리함의 독에 중독돼 버리고 말았다. 컴퓨터 하드디스크에 음원 파일이 쌓여갔고, 급기야 가지고 있던 CD 수백 여 장을 후배에게 떠넘겨버리고 말았다. 그 후론 음악의 물성이 사라진 기분이 들었다. 그 자체의 밀도나 중량감이 사라지는 듯했고, 예전만큼 귀가 쫑긋 서지 않았다. 음악이란 게 내 삶에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게 돼버린 느낌이었다. 그러다 후배가 이사 간다면서 CD를 다시 택배로 보내왔다. 처음엔 처치곤란이었으나 이것저것 만지작거리다 보니 일일이 다시 듣고 싶어졌다. 대뜸 CD 플레이어를 새로 장만했다. 음원 파일로 바꿔 컴퓨터에 저장해둔 것도 많았지만, CD로 들으니 다른 음악 같았다. 데면데면하게 매일 보던 사람이 불현듯 정색하며 손을 꽉 부여잡는 느낌이었다. 반가웠다. 문득 낡은 것들이 새로 눈 뜨게 하는 미래의 다른 시간을 생각했다. “세상은 나아간다, 세상은 왜 돌아오지 않을까” 랭보의 시구가 떠올랐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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