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로부터 싸움이 난 현장에 꼭 있었는데 지금은 찾아 볼 수 없는 것이 바로 ‘말리는 이’입니다. 정부도 기업도 법과 제도를 앞세워 밀어붙이면, 일은 추진될지 모르지만 약자들의 불신, 분노, 증오, 원망, 실망, 좌절이 수북이 쌓이기 마련이죠.”(대한불교조계종 화쟁위원장 도법 스님)
말리는 이 없는 여러 분쟁 현장에서 중재자 역할을 자처해 온 대한불교조계종의 화쟁위원회가 출범 5년을 맞았다. 2010년 6월 설립 이후 여러 현장에서 화쟁(和諍), 즉 문제의 조화로운 해결을 호소해온 화쟁위는 지난 5년간의 활동 결산 작업과 향후 과제 설계에 한창이다. 최근 관련 배포용 안내서 ‘화쟁, 인류의 미래를 여는 아름다운 몸짓’을 펴내기도 했다. 저자인 정웅기 붓다로살자 연구위원은 “지난 5년간 한국사회에서 화쟁의 실험을 통해 얻은 실마리를 쉽게 소개하려 했다”고 말했다.
원효의 대표 사상인 화쟁은 ‘세상의 온갖 다툼을 그치게 하고 조화를 이루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진실을 드러내고 진리를 불러냄에 있다’는 가치관을 기본전제로 한다. 즉 소통, 진실추구, 문제해결, 화합의 과정을 뜻하는 것. 특히 해악적인 괴변은 물리치면서도 대상을 증오하기보다는 ‘그 어떤 것이든 저마다 유효성이 있으며, 부분적 타당성을 지니고 있다’(개시개비ㆍ皆是皆非)는 원효의 인간관을 중시한다.
이 같은 가치관에 기반해 4대강 찬반으로 여론이 들끓던 2010년에는 종교계와 정부, 여야, 시민사회 등이 참여하는 ‘국민적 논의기구’를 공식 제안했다. 2011년에는 쌍용차 평택 공장을 찾아 끈질기게 경영진을 설득해 해고자 문제를 처음 대화 의제로 포함시키고, 이웃 종교와 ‘종교계 33인 원탁회의’를 결성해 중재에 나서기도 했다. 지난해 밀양 송전탑 사태 현장에서는 송전탑에 반대하며 음독을 한 밀양의 한 어르신의 장례와 관련한 협상을 진행해 몇 개월간 지지부진하던 장례의 합의안을 마련했다.
가톨릭 등 여타 종교계와 시민사회에서 “약자를 도와야 할 상황에 대화를 시도하는 것은 강자에게 면죄부를 주는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기도 했는데, 기계적 중립만을 고수한 것은 아니다. 도법 스님은 “화쟁은 진실에 주목하기 때문에 다툼을 맹목적으로 화해시키거나, 이해득실을 조정하는 것에 초점을 두지 않았다”며 “진실을 둘러싼 정황이 명백하거나 약한 측이 극한에 몰렸을 때는 소신 있게 개입해야 한다는 기준이 있다”고 말했다.
2011년 한진중공업 사태가 대표적이다. 크레인 위에서 고공농성을 이어가던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을 구하기 위해 도법 스님은 8월 기자회견을 시작으로 직접 노동부, 전경련, 대한상의, 민주노총을 찾아 108배로 각계에 관심을 호소했다. 시민들의 희망버스 행렬에도 좀처럼 해결 기미가 보이지 않자, 화쟁위는 11월 초 “총무원장이 직접 참여하는 범 불교계 집회를 한진중공업 본사 앞에서 11월 19일 열겠다”는 내부 입장을 청와대에 전했고, 그 덕분인지 직후에 노사간 협상이 극적으로 타결되기도 했다. 2013년 철도노조 사태 당시에도 화쟁위가 나서 노사면담을 적극 중재해 “농성을 풀기 전에는 대화할 수 없다”고 버티던 사측과 노조의 최초 양자대화가 조계사에 마련됐다.
5년간 고군분투했지만, 굳이 성적을 매긴다면 결과는 썩 좋은 편이 아니다. 정부와 여당의 예산 강행처리로 마무리 된 4대강 사업이 그랬고, 여전히 해결이 요원해 보이는 쌍용차 사태도 마찬가지다. 해군기지 찬반으로 양분된 강정마을에서도 주민들의 요청으로 마을공동체 복원을 시도했지만 쉽지 않았다.
정부의 강행처리 등 불가항력적인 외부 요인이 적지 않지만 도법 스님은 “실력의 부족 탓”이라고 몸을 낮췄다. 또“화쟁에 대해 회의적인 분들이 있다는 것도 알지만, 무조건 투쟁해 이기겠다는 자세보다 당사자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가치 정립을 시도할 때 해결의 실마리가 더 잘 보인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고 했다.
특히 화쟁 정신의 강조가 조계종 종단 내부 문제의 해결에서는 적잖은 성과를 내고 있다. 화쟁위의 상급기관으로 2011년 발족한 자정과쇄신결사추진본부는 바람직한 종단 문화 정립을 위한 대중공사(대토론회) 등을 추진했고, 조계종은 올 들어 매월 말 열리는 이 소통의 장에서 각종 혁신안을 쏟아내고 있다. 대형 사찰의 재정을 공개해야 한다는 제안도, 승단 추방자(서의현 전 총무원장)에 대한 밀실 복권 판결을 내린 호계원의 수장 사퇴 권고도 이 자리에서 나왔고 종단은 이를 모두 존중했다.
도법 스님은 “사회에 보다 근본적인 공론장이 필요하다는 판단 하에 지난해부터는 보수 진보 중도가 참여하는 ‘진실과 화해를 위한 대화모임’을 진행하고 있다”며 “올해 안으로 이념갈등의 뿌리라 할 수 있는 종북문제에 대한 공동선언문을 내놓는 것이 목표”라고 설명했다.
“이기려고만 하기보다는 서로 다듬고 견책하는 친구의 은혜가 스승을 능가한다는 탁마상성 붕우지은(琢磨相成 朋友之恩) 정신, 불교답게 해보자는 뜻이 우리 사회 분쟁 해소에 작은 도움이라도 되길 간절히 바랄 뿐입니다.”
김혜영기자 shin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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