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오후 청와대에서 이뤄진 박근혜 대통령과 여야 지도부의 5자회동이 성과 없이 끝났다. 역사교과서 국정화 논란을 둘러싼 첨예한 갈등상황에서 어렵게 성사된 소통의 자리여서 대치정국 돌파구 마련과 함께 대화정치 복원의 계기가 되리란 기대가 적지 않았다. 하지만 1시간 48분에 걸친 회동에서 서로의 이견만 확인한 채 아무런 합의도 이끌어내지 못했다. 시급한 청년 일자리 문제 등 민생현안 처리를 위해 여야의 협조가 절실한 마당에 감정의 골만 더 깊어진 형국이어서 향후 정국의 험로가 우려된다.
언론에 공개된 환담 장면은 부드러웠다. 박 대통령과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는 이산가족 상봉 정례화 필요성에 공감을 표시하기도 했다. 그러나 비공개로 전환된 뒤에는 역사교과서 문제 등을 놓고 토론 수준의 격열한 논쟁이 벌어졌다고 한다. 문 대표가 역사교과서 국정화는 친일ㆍ독재 미화라며 국정화 추진을 중단하고 경제살리기와 민생 전념을 주문하자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그만 하라”고 받아 쳐 험악한 분위기도 연출됐다.
박 대통령도 “올바른 역사교과서를 만들려는 노력이 정치적 쟁점으로 변질돼 안타깝다”면서“국민통합을 위한 올바르고 자랑스러운 역사 교과서가 필요하다”고 야당의 국정화 철회 요구를 일축했다. 정국 대치의 핵심 쟁점인 역사교과서 문제에 대해 한 치도 물러서지 않은 것이다. 여야 지도부와의 청와대 회동을 먼저 제안한 것은 박 대통령이다. 야당지도부에 대치정국을 해소하고 민생현안 처리에 협조할 수 있는 최소한의 명분을 줬어야 마땅하다. 그러한 유연한 정치력 발휘 없이 야당에 일방적인 협조를 요구하는 것은 무조건 백기를 들라고 하는 것이나 다름 없다.
이날 논의된 의제 중 유일하게 일치를 본 것은 청년 일자리 창출이 필요하다는 원론 정도였다고 한다. 문 대표의 말마따나 “한 마디로 왜 보자고 했는지 알 수 없는 회동”이었다. 모처럼 마련된 소통의 기회를 살리지 못했으니 향후 정국은 암담할 수밖에 없다. 박 대통령은 회동을 마무리 하면서 청년들에게 희망을 주는 19대 국회가 되어야 하며 헌정사에 남는 유종의 미를 거둬 달라고 당부했다지만 야당이 순순히 응할지 의문이다.
박 대통령이 역점을 두고 있는 노동개혁 입법 처리 등에서도 야당의 협력을 이끌어내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야당은 사사건건 발목을 잡으며 맞설 것이고, 여당은 강행처리로 돌파하려 할 게 뻔하다. 그간 국민들이 염증을 느껴왔던 국회의 모습이다. 부담은 결국 박 대통령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박 대통령 임기후반의 국정운영이 순탄치 않을 것이다. 박 대통령이 이런 암울한 정치상황을 어떻게 풀어가려는지 참으로 걱정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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