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 봉사와 박정희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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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 봉사와 박정희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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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22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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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년 11월21일 유신헌법에 대한 국민투표를 하고 있는 박정희 대통령과 영애 근혜양. 한국일보 자료사진

대학에서 국문학을 전공한 나는 고전문학 시간이 대체로 괴로웠다. 텍스트의 서사 구조를 용납하기 어려운 때가 많아서였다. ‘심청전’ 강독 시간, 이마를 잔뜩 찌푸린 채 앉아있는 게 거슬렸는지 교수가 갑작스레 나를 지목했다. ‘심청전’의 어떤 대목에 대한 해석을 물었는데, 따박따박 말대답하며 질문자를 도발했던 기억만 명료하다. “제 눈 뜨겠다고 자식을 바닷물에 밀어 넣는 아비는 부모가 아니다. 희생의 미화는 강자의 착취 이데올로기이므로 찬성하지 않는다. 희생이 그렇게 아름다운 것이면 심 봉사가 먼저 했어야 하는 것 아닌가.”(자못 책상이라도 내리칠 기세로!) 잠시 분위기가 싸늘해졌으나 교수는 뜻밖에 너그러웠다. 이 패륜학생의 반인륜적 시각을 그저 웃어넘겼다.

근 20년이 지나 두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 되돌아보니, 심 봉사의 심정이 이해가 가기는커녕 진정으로 그는 나쁜 사람이다. 내 부모에게 받았던 지극한 사랑에 비추어볼 때 도무지 납득이 안 갔던 심 봉사의 행태는 부모가 되어 자식을 키워보니 거의 용서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효(孝)란 무엇인가. 두말할 나위 없이, 그것은 사랑이다. 피와 뼈를 나눈 존재들간의 뜨거운 사랑이다. 네가 웃으면 그저 좋고, 네가 행복하면 그로 족한, 지나치게 ‘너’에 경도된 바보 같은 사랑이다.

지난해 일곱 살이었던 첫째는 자연관찰 시리즈의 ‘호랑이’편을 읽어달라고 들고 왔다가 혼돈의 소용돌이에 빠져들었다. 지극정성으로 어미의 보살핌을 받던 새끼 호랑이가 한 살이 돼 마침내 첫 사냥을 떠나는 대목. ‘이제 새끼 호랑이는 다시 엄마를 만나지 못합니다’라는 서술에 아이가 격렬하게 이의를 제기했다. “왜 못 만나, 엄마?” “다 컸으니까.” “다 컸다고 왜 못 만나?” “이제 자기 새끼 낳아 키우며 자기 인생을 살아야 하니까.” 아이는 공포가 잔뜩 서린 눈망울로 끊임없이 “왜?”를 이어나갔다. 떠나는 새끼를 보며 어미 호랑이의 가슴 속에 피어 올랐을 벅찬 행복 같은 것은 아직 아이가 상상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박근혜 대통령이 15일 새벽(한국시간) 미국 메릴랜드 NASA 고다드 우주센터 위성로봇연구동에서 설명을 듣고 있다. 오른쪽은 박 대통령 선친인 박정희 전 대통령이 1965년 5월 미국을 방문했을 때 케네디 우주센터를 방문한 모습. 국가기록원 제공

내리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은 없다는 말은 참으로 슬픈 진리다. 효를 강조하는, 그것도 지나치게 강조하는 유교문화는 윤리 강령이라는 장치로 이 슬픈 공포를 해소하려 했다. 하지만 효도는 돌려받아야 할 채권도, 훗날을 기약해 발행한 어음도 아니다. 부모에게 받은 사랑은 부모에게 반납하는 것이 아니라 자식에게 대물림 하는 것이며, 이것이 종을 유지하기 위한 유전자의 설계다.

“저는 아버지에 대해선 그리운 마음으로 꽉 차 있고, 억울하게 그동안 당하셨는데 이걸 어떻게 벗겨드려야 되나 그런 생각으로 꽉 차 있다.”(1997년 인터뷰) “아버지에 대한 매도가 계속되었다. 나는 가만히 그렇게 있을 수만은 없었다. […]잘못된 것을 바로잡고 아버지의 오명을 벗겨드려야 한다는 일념으로 남기고 가신 것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2007년 자서전) 박근혜 대통령이 무섭게 밀어붙이고 있는 국정교과서가 사실은 ‘효도교과서’라는 합리적 의구심을 제기하기 위해 무언가를 더 증명할 필요는 없겠다. 아버지를 향한 대통령의 효성은 어미와의 결별을 도무지 이해하지 못하던 우리 아들의 심정과 똑같이 순수하고 진정한 것 같다. 하지만 아버지의 입장에서도 그럴까. 온라인쇼핑몰에서 보세 티셔츠 하나를 사도 360도 회전샷을 보여주는 시대, 이 자리에서 이쪽 방향으로 이것만 보라는 국정교과서로 딸이 지속가능한 퇴보의 상징이 되는 걸 아버지가 원할까. 나 때문에 딸이 욕 먹고 곤경을 겪는 걸 과연 아버지가 바랄까. 올해로 아버지보다 더 긴 인생을 살게 된 딸이 아직도 사부곡을 부르며 복수서사의 여주인공으로 살아가는 모습이 정녕 보시기에 좋을까. “저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이고, 제 아버지는 박 전 대통령이다. 천륜을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도 박 대통령은 말했다. 하지만 간과한 게 있다. 내 자식이 행복하게 자신의 인생을 살아가는 것, 부모에게는 그것이 천륜이고 효도다. 아버지가 원하는 건 국정교과서가 아니다. 딸이 행복한, 성공한 대통령이 되는 것이다.

박선영 문화부 기자 aurevoi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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