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로 공 넘어가.. 유동성 위기 얼마나 버틸지 관건
정부가 국책 금융기관인 KDB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을 통해 대우조선해양에 4조원대의 신규 자금을 지원하겠다는 계획을 전면 보류했다. 부실기업에 대한 대규모 혈세(血稅) 지원에 특혜가 아니냐는 부정적인 여론이 일자 대우조선의 고강도 자구계획과 노사의 동의를 먼저 요구하기로 방침을 바꾼 것이다. 이에 따라 대우조선 정상화 계획이 상당 기간 진통을 겪을 전망이다.
22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당국과 채권단은 대규모 부실이 발생한 대우조선의 정상화를 지원하기에 앞서 대우조선이 자구 계획을 마련하고, 강도 높은 자구안에 노조가 동의하는 과정이 선행돼야 한다고 입장을 정리했다. 4조원 가량의 금융지원을 담은 정상화 지원계획의 시행을 전면 보류하겠다는 것이다.
당초 금융위와 채권단은 이날 총액 4조원 규모의 대우조선해양 지원 계획을 확정한 후 23일 주채권은행이자 대주주인 산업은행의 이사회를 거쳐 발표할 계획이었다. 대우조선이 우리나라 주력 수출산업 중 하나인 조선업계의 간판 회사인 만큼 조속한 지원을 받아 유동성 위기를 극복할 수 있도록 돕겠다는 의도였다.
하지만 이 계획은 이날 청와대에서 열린 서별관회의(경제금융점검회의)에서 사실상 거부를 당했다. 최경환 경제부총리, 안종범 청와대 경제수석, 임종룡 금융위원장, 진웅섭 금융감독원장, 홍기택 산업은행 회장이 참석한 회의에서 대규모 부실을 숨겨온 대우조선에 금융 지원부터 할 수는 없다는 목소리가 강하게 제기된 것으로 전해졌다. 대우조선해양은 현재 임원 30% 해임, 임원 연봉 35~50% 삭감, 자산 매각 등의 자구 계획을 진행 중이지만 이 정도 수준은 충분치 않다는 것이다.
금융권에서는 자금 지원 규모가 워낙 크다는 점에 정부가 부담을 느낀 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금융위 관계자는 “대우조선해양에 4조원 정도의 자금을 지원하면서 자구계획이나 이에 대한 노조 동의를 전제하지 않는 것은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지적에 대해 서별관회의 참석자들이 대부분 동감하는 분위기였다”고 전했다. 임종룡 위원장 역시 이날 기자들과 만나 “대우조선에 대한 지원은 국책은행뿐 아니라 관련 금융기관들의 손실까지 전제되는 행위”라며 “대우조선 노조도 이 같은 고통 분담에 명확히 동의하겠다는 의지가 함께 담겨야 회사가 정상화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산업은행을 비롯한 채권단 관계자들은 23일 거제 옥포조선소에서 대우조선과 노조측을 면담하고 채권단의 요구사항을 전달할 예정이다. 대우조선 관계자는 “채권단 요구사항을 전달받은 후 이에 대한 회사의 방침을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노조에서는 채권단이 임금에 대해 양보를 요구할 것에 대비해 현재 대응책을 논의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문제는 이 같은 과정이 진행되는 동안 대우조선이 유동성 위기를 얼마나 버틸 수 있느냐다. 대우조선해양은 2011년 이후 수주한 해양플랜트의 부실화로 지난 2분기 3조원 이상의 영업손실을 낸 바 있다. 산업은행이 주도한 실사 결과에 따르면 올 하반기에도 2조원 이상의 손실이 예상돼 올해 총 예상손실은 5조3,000억원에 달할 전망이다. 하반기 중에 자본잠식 상태가 될 가능성도 적지 않은 상태다. 특히 당장 기업을 운영할 자금이 부족해 지난달 월급의 경우 50%를 선지급한 후 자산을 매각한 뒤 나머지를 지급할 정도였다.
이런 가운데 채권단이 직원들의 임금 삭감이나 인력 구조조정을 요구할 경우 노조의 강한 반발로 인해 정상화 계획이 장기간 표류할 가능성도 점쳐진다. 산업은행 관계자는 “대우조선의 유동성 위기가 발생해도 적어도 2개월 이상은 버틸 수 있는 상태라고 본다”며 “그 사이 자구계획안 수립과 노조 동의 절차를 마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유환구기자 reds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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